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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Dec 05. 2020

수능이 끝나고...

 수능이 끝났다. 고3 아이들은 수능 이후 성적표가 나오는 날과 졸업식을 제외하고 줄곧 원격 수업으로 진행이 될 예정이라 학교에 나오는 날이 거의 없다. 사실, 아이들이 학교에 있다면 아이들과 가장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기가 수능이 끝난 지금쯤이다. 이맘 때쯤에는 수시 결과들이 무더기로 발표가 되기 시작하고,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며 아이들의 얼굴에도 웃음이나 그늘이 머문다. 합격한 아이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는 것은 너무나 쉽다. 굳이 내가 축하를 해주지 않아도 큰 상관도 없다. 하지만, 불합격한 아이에게는 다가가야 한다. 잔뜩 수심을 품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거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학교에 나온다면 지나가다 슬쩍 물어보고 다독여주기라도 했을텐데, 원하는 결과가 없는 아이들은 죄다 동굴로 들어가 버린듯 잠잠하다. 소식도 없는 아이들에게 먼저 연락을 해서 묻기도 뭐해 그저 메시지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혹시나 해서 전화기를 바라다 본다. '다 떨어졌어요'라고 말을 해 오는 아이보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할 아이의  좌절감의 무게가 훨씬 더할 것이기에, 아무런 연락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계속 신경이 쓰인다. 오늘만 해도 몇 명이 대학교 1차 합격, 최종 합격의 소식들을 전해 왔다. 대학 그까짓거라는 신조로 산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기특하고 장하다. 그 와중에 교무실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미주알 고주알 수다를 떨어대다 수능즈음해서는  연락이 전혀 없어 안부가 궁금하던 K에게 메시지가 날아 왔다. 

 

'선생님 언제 뵈러 가도 되나요?'


 이 한 줄을 놓고 10분쯤 고민했다. K의 성격에 이미 좋은 소식이 있었다면 먼저 말을 했을 터였다. 늘 농담을 주고 받던 카톡이 아니라 문자 메시지로 보냈다는 것에도 마음이 쓰였다. 합격자 발표를 한 곳들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많이 위축되어 있나보구나. 어렴풋이 짐작했다. 


'코로나 때문에 지금 전교생이 다 원격 수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출입이 가능할지 모르겠네. 확인하고 다시 연락 줄게. 그런데 무슨 일 있니?'


'그냥 선생님 보러 가고 싶어요...!ㅎㅎ'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올해 들었던 말 중 가장 고마운 말. 

코로나와 입시를 동시에 맞닥뜨린 아이들이 각자도생의 길을 택하며, 올 한 해 나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고민들이 많았다. 내 수업보다 훨씬 알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강의들이 인터넷에 널렸고, 나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와 분석력으로 원서를 넣어야 할 대학을 콕콕 찝어 주는 진학 컨설턴트들도 도처에 있는데다, 아이들은 학교에 오지를 않으니 교사로서 나는 어떤 의미를 지닌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이 일년 내내 머리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나는 나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한 해를 우왕좌왕 보내느라 그 어느때보다도 접점을 찾기 힘들었다. 

 

 그런데 다만 한 명이라도,  다시 날 찾는다니. 아이의 말이 너무 귀하게 다가온다. 


무기력해진 몸과 마음을 일으켜, 어떻게든 졸업날까지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해야겠다. 올해는 아무 것도 못해줬지만 아이들이 살아가다 힘든 순간, 맘 편이 투정부릴 수 있는 존재로 남아 있고 싶다. 교사로서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영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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