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렁거리는 성격 탓에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편이지만, 그 중에서도 늘 그 자리에 있었던 물건이 어느 샌가 사라졌을 때의 답답함이 제일 크다. 늘 서랍에 넣어두고 쓰던 손톱깎이가 보이지 않았다. 쓰고 나면 습관처럼 서랍에 넣어 두곤 했는데, 혹시나 깎고 난 손톱을 버릴 때 쓰레기통에 같이 던져 버린건가 싶어 쓰레기 봉투까지 뒤져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기념품으로 받은 손톱깎이만 여러 개라 다른 가족들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나는 '그' 손톱깎이여야했다. 손톱을 자를 때의 힘, 몇 번으로 손톱을 나누어서 잘라야 하는지, 잘린 면을 부드럽게 둥글리려면 어떤 각도로 잘라야 하는지, 나는 그 손톱깎이에 세팅되어 있어 다른 것을 써보아도 영 손에 익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며칠 간 서랍을 뒤집어 엎고 휴대폰 불빛으로 가구 틈새까지 살펴보기도 하고, 급기야는 말못하는 아이까지 의심도 해 보며 추궁도 해봤는데도 도저히 보이지 않아 인터넷으로 검색을 거듭해 비슷하게 생긴 손톱깎이를 장바구니에 넣어놓고서야 조금 위안이 되었다. 그러다 아이 옷을 갈아입히려고 옷장 서랍을 연 순간, 손톱깎이는 거기서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이를 목욕시키고 정신없이 손톱깎이를 든 채 서랍에서 옷을 빼다 거기에 내가 떨어뜨렸던 모양이다. 얼마나 반가운 재회였던지 .
오늘은 근 일주일 간 재택 근무를 마치고 출근을 하는 월요일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그동안 풀어헤쳐 집안 곳곳을 떠돌던 물건들을 핸드백에 주워 담았는데, 어라, 어항 속 돌덩이처럼 핸드백의 맨 밑에 몸을 웅크린 채 있어야 할 선글라스 케이스가 만져지지 않는다. 물건들을 도로 꺼내 핸드백을 샅샅이 수색해 보아도, 장바구니와 아이들과 집앞 놀이터에 갈 때 들고 다녔던 손가방을 뒤적여보아도 감감무소식이다. 남편이 아는 사람한테 얻어다 준 것이었는데, 값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나이 들면서 햇빛을 좀 오래 받으면 눈물이 주책도 없이 줄줄 흘러 나와 어디를 가든 가방에 넣고 다니며 꽤 요긴하게 쓰곤 했던 것이었다. 최근에는 쓴 적도 없고 더더군다나 집에서는 꺼낼 일도 없으니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평소엔 눈여겨보지도 않았던, 손때가 적당히 묻은 흰 삼각 케이스의 자태가 아침부터 눈앞에 자꾸 어른거린다.
출근을 하며 예전에 고모가 선물로 주신 선글라스를 꺼내 보았다. 안경알도 크고 생전 처음 몸에 걸쳐 보는 호피무늬의 안경 테가 내게는 영 부담스럽다. 케이스도 뚱뚱해서 얄쌍했던 이 전 선글라스보다 핸드백의 공간을 두 배는 더 잡아먹는다. 그래도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보단 나으니 아쉬운대로 가방에 챙겨 담았다. 가방에 손을 넣을 때마다 불뚝 튀어나오는 감촉이 낯설다. 당분간 선글라스를 꺼낼 때마다 밋밋하고 수더분했던 예전 선글라스가 생각날 것 같긴 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또 익숙해지겠지.
익숙함과의 작별은 참 힘이 든다.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작별의 순간으로 끝을 맺는 게 아니라 내 몸의 구석구석에 흔적이 남아 있어 꽤 오랜기간 이별을 실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이 다시 날 찾아와도 머릿 속 한켠에서는 그 익숙함과 새 것을 비교하느라 적응이 쉽지 않다.
교사는 반복해서 그런 익숙함과 작별을 고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빈자리로 남고, 어느덧 새로운 아이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다시금 새로움을 익숙함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이제는 이런 작별의 과정 또한 내게 익숙한 일인데, 그것하고마저도 또다른 '작별'을 했던 한 해였다. 텅 빈 교실이 익숙해지려고 하면 아이들이 등교를 했고,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에 익숙해지려고 하면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 아이들을 학교 밖으로 밀어내기를 반복했다. 낯섦의 투성 속에서 2020년을 보내야 했던 아이들이 새로운 세상으로 한 발짝씩 더 나아갈 용기를 갖게 하는 것. 졸업식날 내가 아이들에게 주고픈 작별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