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 = 술 좋아하는 남편 / 약 = 교육
2년 전 무더운 여름날 아침. 에어컨의 냉기가 교무실을 채 채우기도 전이라 땀을 뻘뻘 흘리며 급하게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 한창 집중하던 차에 스물스물 올라오는 이 냄새는 무엇? 그렇다. 너무나 익숙한 남편의 '향기'. 술을 몽땅 마시고 온 다음날 방안 곳곳에 배어 있는, 밤새 남편의 호흡기를 거쳐 온 방에 뿌려져대곤 했던 알콜 냄새, 즉 '숙취의 향기'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냄새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내 옆에 앉아 계신 선생님께 그 반 아이가 와서 몸이 아프다며 조퇴를 하겠다고 허락을 구걸하는 중이었다. 지금처럼 마스크가 일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는데도 그 더운 날 굳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조퇴를 한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협박과 감언이설을 뒤범벅해 조금이라도 학교에 더 있다 가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한 C 선생님이 웬일로 조퇴증을 아이에게 선뜻 건네신다.
"선생님, J 쟤, 왜 조퇴한대요?"
"몸이 아프다잖아. 요즘 좀 정신차리는 것 같아서 웬만하면 남기려고 했는데, 눈도 풀어지고 열도 있어 보이길래 그냥 오늘은 집에 가서 쉬라고 했어요."
"선생님, 근데."
"?"
"J에게서 제 남편의 냄새가 납니다."
"?"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술 많이 마시고 난 다음날 특유의 냄새가 나거든요. 바로 그 냄새가 났어요. 이렇게 더운데 걔가 왜 마스크까지 하고 있겠어요?"
"그래요? 나는 못 느꼈는데."
"확실합니다. 저희 아버지 때까지 합하변 도합 30년은 넘게 맡아 온 냄새에요. J는 단순히 몸이 아픈 게 아니라 숙취 때문에 집에 가고 싶어 하는 걸 거에요."
C선생님 부부는 독실한 신앙을 바탕으로 깐, 소문난 금주가다. 나에겐 익숙한 이 냄새가 그녀에겐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모양.
"안되겠다. J를 다시 불러봐야지."
C 선생님은 곧바로 J를 다시 호출하여 비어 있는 교실로 데리고 가셨다. 몇 분 후 의기양양한 표정을 나타난 C선생님.
"맞대죠?"
"아니, 얘가 처음엔 발뺌을 하지 뭐야. 너 어제 술 마셨지하고 대놓고 물어봤더니 절대 아니래. 그래서 내가 선생님의 얘기를 이용했지. '너에게서 남편의 냄새가 나는데?'이랬더니 곧장 '아, 어제 한 잔 했어요.'라고 실토를 하더라고. 따끔하게 몇 마디 해 주고 어차피 공부할 컨디션은 아닌 것 같아 보내 줬어요. 남편 분한테 감사하다고 얘기 좀 전해 줘요!"
나를 한숨 짓게만 만들던 남편의 음주가, 이렇게도 도움이 된다니!
교사라는 직업의 최고의 장점은, 어떤 경험이든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교육의 소재들은 책 속에만 있지 않다.
잠이 안 와서 불 꺼진 방에서 눈 아픈 줄도 모르고 봤던 동영상이 흥미로운 언어 자료가 될 때도 있고, 지나다가 본 우연한 풍경이 문학 작품을 설명할 때 멋진 비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다못해 짧은 회사 생활동안 내가 겪었던 온갖 성차별, 성희롱의 사례들도 아이들에게 좋은 교재가 될 때도 있다. 교사가 '우물 안의 개구리'여서는 안되는 이유다. 매해 각양각색의 아이들을 대하려면,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꼭꼭 씹어 머리 한 켠에 잘 담아 둔 뒤, 적재적소에서 그것들을 반추하고 펼쳐내야 한다. 그것이 교사가 가져야 할 역량이다.
그래서 교사 주업(主業)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교사가 해야만 하는 일은 누군가와 함께 꿈꾸고 함께 성장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