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e was not built in a day!
기원전 6세기 로마 왕정 시대 6대왕 세르비우스에 의해 건설된 성벽이 남아 있는 테르미니 역 부근 바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낸다. 로마 시민이 아니면 다 야만족이라 여기며 야만족의 침입을 막고자 지은, 지금은 거의 허물어져 초라한 성벽 아래서 술 한잔 하다.
로마 시민을 위한 이 성벽을 거의 제국시대를 연 영웅 시저(카이사르)가 허물었다니 이것 또한 아이러니가 아닌가?
로마는 왕정, 공화정, 제정을 거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로마는 왕에게 권력이 집중된, 그렇지만 세습이 되지 않는 그런 시대를 거쳐 왕정의 폐해를 없애고자 시민과 원로원 중심의 공화정 시대를 맞는다. 귀족 중심의 공화정은 시대의 영웅 시저를 만나 주춤한다. 시저 역시 집정관을 하고 갈리아 총독을 거쳐 독제관이 되지만 여전히 공화정 시대를 살아간다. 그렇지만 루비콘 강을 건넌 이후로는 제국의 시대를 열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시저가 세르비우스의 성벽을 허문다. 왜 허물었을까? 본인이 스스로 제국을 이룰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시저는 원로원에 의해서 처참히 살해되고 제국의 시대는 안 열릴 것 같았지만 그의 양자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세습이 되는 황제의 시대가 열린다. 그리고 로마 16대 황제 아우렐리우스에 의해 성벽은 다시 세워진다.
세워지고 허물고 그리고 세상과 통하는 로만 가도가 건설되고 로마는 세상을 잇는 길의 중심에 선다. 다시 동로마/서로마로 나뉘고 콘스탄티누스의 카톨릭 인정으로 가톨릭 국가가 된다. 그리고 멸망한다.
그렇게 15세기까지 종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암흑기를 지나서 인간 본성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는 르네상스를 거쳐 그리스/로마의 정신은 재탄생한다. 거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거장들이 힘을 보탠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도 목숨 걸고 신 중심 세상을 성토하고. 이것 또한 그전에 화형 당한 부르노의 안타까운 죽음도 있었기에 가능했을지도.
1417년 재발견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도 인간 본성을 되찾는데 큰 도움이 되었겠지. 어찌 그 혼자 인간 본성을 강조한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했겠는가? 그렇지만 철학과 민주주의를 꽃피운 그리스 사상이 없었다면 어떻게 르네상스가 가능했겠는가?
철학과 사상의 힘 만으로 르네상스는 완성될 수 있었을까? 메디치 가문의 금전적 지원이 없었다면 미켈란젤로가 나올 수 있었을까? 메디치의 무시가 없었다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나올 수 있었을까?
로마,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도시다.
2019.12.24. 오후 5:18 로마 테르미니역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