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고프게 만드는 마력같은 산티아고

영화 '나의 산티아고'를 보고

by 메추리

영화 '나의 산티아고'를 보고
- 다시 가고프게 만드는 마력같은 산티아고

그래 걸었었지, 작년 10월. 비행기 이륙 직전 이메일로 사표를 던지고 갔었지. 나도 왜그랬는지 몰라. 그냥 산티아고가 불렀어. 난 그 소리에 이끌렸을 뿐.

오늘 밤 코엑스 메가박스 부띠끄M에서 영화를 봤어. 바로 '나의 산티아고' 말이야. 이런 영화는 와인을 마시면서 봐야돼. 그것도 레드와인. 왜냐면 나도 와인 마시면서 걸었거든.

영화가 시작되는데 이렇게 긴장해보긴 처음이야. 내가 걸었던 그 산티아고 순례길이 떠올랐거든. 아 운명의 장난일까? 영화에서도 순례길 첫날 비가 오더군. 나도 깜깜한 새벽 출발하는데 첫날부터 비가 와서 얼마나 고생했던지. 더군다나 아침도 거의 못먹고 출발했는데 식당은 왜 그리 안나타나던지.

가다 만나는 사람을 또 만나고. 비 피하며 사과 나눠먹던 러시아 친구도 기억나고 같이 걸었던 소떼들도. 그렇게 걸었지. 영화에선 가끔 버스도 택시도 탔더만 난 걷기만 했었지.


빈대 나온다는 말에 거기 이불 안쓰고 가져간 침낭 위에서만 자고, 아픈 다리를 이끌고 이층침대로 올라가던 심정도 기억나. 샤워하다 불이 나간 적도 있었고, 같이 묶었던 사람들끼리 벽난로에 모여 앉아 스페인 독주도 나눠마셨지.

거기 온 사람들은 다 사연이 있었어. 온화한 미소가 아름다웠던 50대 캘리포니아 Lady는 산티아고는 'fired, divorced and retired'된 사람들이 걷는 길이라고 했지. 나도 self-fired 되었다고 말하며 웃은 기억이나. 그분은 긴 지하보도가 나타나자 배낭을 내려 놓고 나직히 성가를 부르기도 했어.

극중 30대 후반 아티스트인 남자 주인공은 건강을 잃고 뭔가에 이끌리듯 산티아고로 떠나지. 그리고 걸으며 신을 찾으려고 해. 산티아고에 도달하면 신이 있을거라 믿으며. 그러면서 그 길을 계속 걷지. 그러다 '너와 나'라는 벽에 적힌 문구를 발견하고 뭔가 깨달음을 얻지. 그리고 그 다음부터 사람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더라구.

주인공은 어느 언덕길을 올라가다 갑자기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더군. 아 나도 그랬는데. 이틀 정도 함께 걷던 한 순례자와 아침을 먹은 직후 헤어지면서 혼자 언덕을 올라갈 때였어. 그 친구가 먼저 말했지. 남은 순례길은 혼자 걷고 싶다고. 영화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왔어. 공감이 많이 되었지. 근데 말야 그게 서러워서 운건 아니야. 그 친구를 보내고 혼자 와인을 한잔 하고 가방을 둘러메고 유칼립투스 나무 숲을 걸어 올라가는데 한 줄기 빛이 비치는 거야. 아 이거다 싶었지. 내가 스스로 잘 나서 현재 위치까지 온 줄 알았는데 그 빛이 나를 인도해준거였어. 사표 던진 내 앞날도 강하게 이끌어 줄거 같은 그걸 느낀거지. 그러니 눈물이 펑펑 나더라고.

영화는 마지막으로 향하고 저 멀리 산티아고 대성당 첨탑이 보여. 아 나도 멀리서 그거 보고 'Oh my God!'을 연발했었지. 그리고 성당에 도착했을 때 받은 꼼포스텔라(순례자증서)에 내 이름이 써지던 순간의 감격도 영화에서 그대로 전달해 주더라고.

산티아고 대성당은 여전했어. 그 고색찬란함이란. 엄숙해지더군. 영화에선 거대한 향로가 공중을 날라다니듯 흔들리며 지친 순례자들을 위로해 주더군. 난 성금요일에 도착하지 못해 못봤지만 영화를 보니 그 장엄함이 느껴지더군. 그리고 미사가 시작되며 주인공과 함께 걸은 두 여인은 어깨동무를 하며 웃지. 그리고 영화는 끝나.

가슴이 끓어 오르더군 다시 가고 싶어서. 작년엔 시간이 충분치 않아 완주를 못했거든. 다음번엔 꼭 프랑스 쌩장부터 800킬로를 걸을거야. 뭐 신을 찾으러 다시 가는 건 아냐. 나를 찾으러 가는 거지.

기다려 산티아고.

P.S.
이 글은 영화 본 직후 집에서 누워 아이폰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예전 내가 '산티아고 순례기' 쓸때도 그랬거든. ㅎㅎ

저의 산티아고 순례기 링크(1-9편까지) https://brunch.co.kr/@heewoo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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