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잡착, 그리고...
18
잠이 안온다. 그 남자에게 그만 만나자고 말한 것이 자꾸 걸린다. 사실 우리는 얼마나 편하게 만나온 사이였던가. 서로 싸운 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성격 차이가 있어 불편한 관계 였던 적도 없다. 편하고 말 잘 통하고 취미도 비슷하고 배우는 분야도 비슷하고 그리고 각자 분야에서 열심히 살고. 그렇게 편한 그 남자를 그만 만나자고 선을 그은 것이 영 찜찜하다. 방금 전 그 남자가 차안에서 한 얘기가 계속 귓전을 맴돈다. 절판된 김형경의 책을 찾기 위해 청계천 중고서점가를 뒤져 책을 찾았다니. 내가 무슨 존재 이길래 내 생각을 이렇게 많이 해주는 것인가. 부끄럽다.
두렵다. 나도 이 남자를 좋아했다. 그런데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편하게 만났다. 이 남자는 예전 남자친구와 너무나 닮았다. 외모 뿐 아니라 말투와 성격 그리고 취미까지 너무 비슷하다. 그 친구랑은 3년을 만났었다. 그 친구에게 다른 여자가 생겨 헤어지기 전 까지는 우린 너무 친하게 지냈다. 친하다는 표현 보다는 서로 사랑하며 남들이 다 부러워 하는 그런 커플이었다. 그 친구가 나와 헤어지면서 마지막으로 던진 말은 아직도 생생하다.
“수미야! 나 새로운 여자 생겼어. 아마 운명인 것 같다. 그만 만나자. 넌 그 동안 나에게 너무 잘 해주었어. 그렇지만 너에게는 왠지 운명 같은 느낌이 안 들더라구. 나도 노력을 많이 했거든 근데 그게 잘 안돼. 미안해. 나 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날 거야. 날 용서해 주라고”
그것이 지난해 여름 무렵이었다. 그때 이후 난 정신적인 방황을 많이 했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다. 쉽게 그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매월 소개팅을 통해 많은 남자들을 만났다. 그 사람들을 스쳐 지나면서 편하게 만나 주었다. 밥 사준다면 한 두번 먹어주고 그리고 연락을 끊은 적도 있었고 그냥 즐기듯이 한번 만나고 더 안본 경우도 많다. 물론 그 남자는 그런 여러 남자들 중에서 확연히 눈에 띄는 사람은 아니다. 키도 작고 외모도 동안이다. 그런데 뭔가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예전 남자친구와 유사해서 그런건가? 가끔은 그 남자가 하는 말이 나를 깜짝 깜짝 놀라게 한다.
때론 내가 아직 그 친구를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남자를 만나면서도 계속 예전 친구 생각이 났었다. 그 친구는 이랬었는데 하며 비교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내가 다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 일부러 계속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친구에게서 받은 배신의 상처로 난 한동안 불을 끄고는 잠을 잘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조수미가 부른 핸델의 “울게하소서”를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들으며 울고 그랬으니까. 그때부터 난 곰 인형을 안고 자는 버릇이 생겼다. 뭔가 내가 소유하고 내것으로 만들어 품고 자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그렇게 한 6개월을 넘게 방황한 것 같았다. 휴가도 자주 내고 여행도 다녀오기도 했고 타 부서로 옮기려고 노력하기도 했었다. 투정도 많이 부리고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도 했었다. 올해 초 들어서면서 이런 것은 어느 정도 극복이 되었는데 그 남자를 만나면서 다시 그 친구 생각이 났다. 그래서 통상적인 경우라면 두 세번 만나고 아니면 바로 끝냈는데 그 남자는 한달 가까이 만나온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판단을 못하겠다. 그 남자는 나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니 책을 구하려고 청계전을 뒤지고 나와 만난 얘기를 소설로 쓰고 그러겠지. 그런데, 과연 소설을 어떻게 썼을까 무척 궁금하다. 그 남자가 보내준다고 했으니 한번 봐야 겠다. 그 남자는 제법 글을 잘 쓰거든.
이런 저런 생각으로 온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느덧 먼동이 터오는 것 같다. 그 남자가 보내 준 임형주의 CD를 틀었다. “아베마리아”가 구슬프게 흘러나온다. 그 남자가 처음 차에서 들려주던 때가 생각난다. 아무 말없이 두번 들려주더니만 너무 좋지 않냐고 물어왔었는데. 임형주의 콘서트도 보러 가고 싶은데.
먼동이 터오는 것을 보고 잠이 들었다. 한 6시 무렵에 잔 것 같았다. 눈을 뜨니 9시 30분이 넘었다. 10시까지 출근인데 아무리 서둘러도 지각이다. 간단히 고양이 세수를 하고 머리를 묶고 집을 나섰다. 오늘따라 버스도 제때 안온다. 열심히 뛰어서 들어갔는데 바로 위 상사의 눈초리가 매섭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하며 내 자리에 가서 앉았다.
정신없이 바쁘다. 여전히 사람 충원은 되지 않은 상태이다. 내 밑에 애도 투덜투덜 불만 투성이다. 그래서 빨리 뽑아 달라고 과장님께 얘기하고 싶은데 오늘 지각이라 차마 말을 못하겠다.
‘그 남자가 소설을 보내기로 했는데 과연 보낼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오후 3시 무렵 퀵서비스 아저씨 전화가 왔다. 아무 메시지 없이 “만남 1”이 들어 있었다. 읽어 내려 가는데 그 남자 말대로 내 시각으로 그 남자를 바라보며 써내려 갔다. 내가 한 말 보낸 문자메시지 등을 소중히 기억해 줘서 고맙다. 가끔은 서른 한 살의 노처녀를 너무 강조한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주 섬세하게 여자의 심리를 제법 잘 분석한 것 같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무섭다는 느낌도 조금 들었다. 그렇지만 무섭다는 느낌 보다는 약간의 긴장감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낫겠다. 하여튼 소설을 읽고 나서 기분이 좋았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그 소설 속에 등장하니 기분이 묘했다. 뭐랄까 신선함과 뿌듯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소설 속에는 내가 이수미로 등장한다. 수미라. 내가 조수미를 좋아한다고 해서 수미로 지었나? 그럼 그 남자는 김신우라. 우리가 한택식물원 가서 책 읽은 것 까지 소설 속에는 나와 있었다.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잔디밭에 앉아 책을 읽다가 파라솔 그늘에 잠깐 누워 잠든 그 때가 갑자기 떠오른다. 멀리서 나를 지켜 보던 그 남자의 눈길까지 말이다. 그런데 내가 그만 만나자고 했다. 후회도 된다. 그 남자는 사실 놓치기는 아까운 사람인데. 다시 그 만한 사람 만나기 쉽지 않은데 그래도 내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지금 다시 연락하면 우린 결혼 까지 가야 되는 것 아닌가. 그것도 겁나고 두렵다. 그래서 먼저 연락을 못하겠다. 부담된다.
19
“수미야! 아까 건너간 술잔 언제 줄꺼니?”
“아! 선배님. 바로 드릴께요”
오늘은 회사 동문회 날이다. 1년에 한번 하는 동문회에 제법 많은 동문들이 모였다. 물론 비공식 모임이다. 동문회 하는 것이 알려지면 별로 좋지 않다. 그래서 장소도 회사 부근에서 많이 떨어진 강남에서 한다. 그 남자 친구인 혁연 선배도 나왔다. 그런데 나와는 제법 멀리 떨어져 있다. 술자리가 거의 끝날 때 까지 그 선배가 아무 말이 없다. 분명 그 남자가 그 선배에게 우리 헤어진 것을 얘기했을 터인데 아무 말이 없다. 그냥 저쪽 구석에서 열심히 술만 푸고 있다.
지난번 헤어지기 전에 그 남자랑 후배랑 같이 회사에서 지원해 주어서 회사 사람들과 김민기가 연출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본 적이 있다. 그때 그 후배가 갑자기 술잔을 건내며 말을 건내온다.
“언니. 나 어제 그 남자 봤다.”
“누구?”
“아 그때 있잖아 지하철 1호선 볼 때 언니가 부른 남자”
“그래? 어디서?”
“어제 회사 정문 앞에서 12시쯤 봤어. 내가 정문 앞에 서성이고 있는데 그 남자가 정문 쪽으로 오더니 화단 옆에 기대 앉아 열심히 신문을 읽더라고.”
“아는 채 했니?”
“아니, 그 남자가 시선을 피하는 것 같던데. 그래서 나도 그냥 있었지. 조금 있다 보니까 혁연 선배가 나오더라구. 그 남자 복장으로 봐서는 회사 출근한 것 같지는 않던데.”
“아, 그래?”
그 남자가 휴가 내고 회사까지 찾아왔단다. 물론 혁연 선배를 만나러 온 것이겠지만 왠지 미안한 생각이 자꾸 든다. 혁연 선배는 저쪽에서 다른 선배 언니를 잡고 열심히 술만 마신다. 가서 그 남자에 대해 묻고 싶은데 옆자리에 자리가 영 나지 않는다.
“언니. 그 남자랑 사귄거 아니였어?”
“사귀긴. 그냥 편하게 만났어. 그 남자도 우리 학교 나왔거든. 혁연 선배 친구야. 말도 잘 통하고 해서 그냥 만난거지”
“그래도 서른 넘어 남녀가 한달 가까이 만난 것은 서로 끌리는 데가 있어서 그런거 아냐?”
“그건 그렇지. 나도 잘 모르겠다. 머리가 어지럽고 아프다.”
“수미야! 너 요즘 많이 바쁘다메?”
멀리 있던 혁연 선배가 가까이 오며 말을 건낸다.
“네에. 조금요.”
“사람 빨리 안 뽑아 준데?”
“계속 얘기하는데 조금 늦네요.”
“그렇구나. 그건 그렇고 너 대학원은 재밌냐? 나도 한번 다녀볼까 생각중이야. 요즘 와이프도 집에만 일찍 오지 말고 대학원도 한번 생각해 보라고 압력을 넣고 있고, 나도 뭔가 나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고 싶은 욕구도 있고”
“선배. 강추입니다. 한번 가보세요. 졸업하고 책을 놓고 있다가 다시 책을 접하면 의외로 그 기쁨이 커요. 다시 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 죽이죠. 물론 그게 한학기만 가서 그렇지. 숙제도 많고 부담도 큰게 사실이죠. 그런데 전 야간 대학원 다니는거 후회 안해요. 배우는 것도 많거든요. 전 원래 전공이 영문과 잖아요. 금융 관련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학교는 비 경상계 전공자들을 위한 경영대학원이라 두루 두루 배우는 것 같아요. 선배처럼 학부에서 경제학 전공했다면 우리 학교 말고 다른 학교 알아보는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래? 근데 다른 학교는 영어시험 친다고 하던데. 난 영어 놓은지 오래되서리…”
“그래도 선배 영국 어학연수 1년 했다고 하던데…”
“그게 언제인데. 그땐 조금 했었는데…”
혁연 선배는 학교 얘기만 하고 그 남자에 관해선 한마디도 안한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었는데 꾹 참았다. 그 남자가 어제 선배를 만나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왜 휴가까지 내고 회사 앞으로 찾아온 것일까? 궁금해서 미치겠다.
나도 제법 술을 많이 마신 것 같다. 가슴이 아프다. 집에 와서 구토를 몇 번 했는지 모른다. 아랫배도 아파 화장실을 몇 번 갔는지 모른다. 머리가 멍하다. 오후 내내 침대 위를 뒹굴었다. 냉장고에 물도 다 떨어져 사와야 하는데 귀찮아서 그냥 참고 계속 잠을 잤다.
20
“이수미 대리, 편지 왔어요. 난 회사로 온 공문 인줄 알고 뜯어 봤지 뭐야. 시를 한편 보냈던데. ‘너 알고 있니?’ 라는 시인데 꽤 괜찮던걸”
“아, 과장님. 개인적인 편지 그냥 보시면 어떡해요?”
“근데 누구야. 이대리 무지 좋아하는 것 같던데. 맞지?”
“그냥 한달 전에 만난 사람이에요. 아직은 잘 몰라요.”
오전에 우리 부서원 모두 그 시좀 보여 달라고 난리다. 다들 그 남자 누구냐고 옆에 와서 물어 본다. 여기 저기에서 키득 키득 웃는 소리가 들린다. 당황된다. 왜 하필이면 개인 편지를 과장님이 뜯어 보셨는지. 그리고 그 남자는 헤어진 이후에도 왜 매일 편지를 보내는지 모른다. 오늘로 편지가 다섯번째이다. 앞으로 언제 까지 보낼지 모른다. 오늘 보낸 편지는 다른 내용 없이 달랑 시 한편이다. 제목도 ‘너 알고 있니?’ 이다.
너 알고 있니?
가끔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간난아이로 돌아가
엄마 젖을 맘껏 빨고 싶다
설령, 팔다리가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탓할지라도
엄마 체온을 느끼면서 의지하는 것이 더 좋아
눈만 말똥말똥 뜨며
그저 웃고 싶다
그러다
날 찡그리게 만드는 사람이라도 있을라 치면
가차없이 물총처럼
오줌을 싸댄다
아주 가끔
이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더욱이
오늘처럼
하늘이 검고
땅이 꺼질 것 같은 날엔
더 그런 생각이 간절하다
너!
알고있니?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지
또 가슴이 아파온다. 그 남자의 마음이 밀려온다. 날 위해 이런 가슴 아픈 시도 써 주다니. 그런데 내가 먼저 연락하면 안된다. 참아야 한다. 이렇게 몇 번 편지 보내다가 제풀에 꺽일 것이다. 그때 까지 참고 또 참자.
어제는 좀 더 쇼킹한 것이 왔다. ‘그리움’ 이라는 시 한편과 ‘수미씨와 계속 만남을 가질 수 밖에 없는 100가지 이유’가 함께 왔다. 시 한편은 그런대로 읽어 줄 만 했는데 100가지 이유는 조금 소름이 돋은 것이 사실이다. 집착 같았다. 그래 이건 사랑이 아니라 그 남자의 집착이야. 어떻게 얼마나 날 안다고 그리고 얼마나 오래 만났다고 나랑 헤어질 수 없는 100가지 이유를 써서 보낸단 말인가. 그것도 10가지 주제를 정해 그 주제 별로 10가지씩 정리해서 말이다. 하도 기가 막혀 여기에 한번 실어본다.
그리움
그리워 한다는 것은
기억을 새록 새록
되새기는 것이다.
한 사람을 생각속에
꽉 잡아놓고
그 사람에 대하여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다.
그래서, 그 착각속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것이다.
숨이 막히고 눈앞이 깜깜해도
행복한 것이
바로
그리움이다.
그래, 이 시까지는 괜찮게 봤다. 그런데 계속 읽어 보시라.
수미씨와 계속 만남을 가질 수 밖에 없는 100가지 이유
[존재]
1. 수미씨이기 때문에
2. 수미씨가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3. 수미씨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큰 기쁨이기 때문에
4. 수미씨를 만난 이후 매일 아침 수미씨가 제일 먼저 떠오르기 때문에
5. 수미씨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내 존재도 의미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6. 수미씨가 날 편안히 느껴준 순간이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7. 수미씨가 있는 것 만으로도 내가 착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8. 이런 착각을 언젠가 보여줄 대상이 있기 때문에
9. 그 대상이 내 마음을 받아줄 것이라고 다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에
10. 수미씨가 내 마음을 떠났다고 아무리 생각하려고 해도 내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공감]
11. 좋은 영화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12. 비슷한 분야를 배우며 뭔가 통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13. 임형주의 노래를 들으며 가슴아픔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14. 같은 O형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15. “서강”이라는 동일한 정서 공감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16. 책을 좋아하고 항상 가까이 하는 마음이 같기 때문에
17. 산을 좋아하고 마음에 중심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18. 물 흐름 대로 인생을 살려고 하는 바가 나와 유사하기 때문에
19.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고 끊임없이 움직이려고 하는 것이 나와 비슷하기 때문에
20. 그리고, 그 새로운 것을 같이 추구했으면 하고 내가 느끼고 있기 때문에
[지혜]
21. 인생을 지혜롭게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22. 끊임없이 고민하며 자신을 낮추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23. 자신의 자아를 찾아 돌보려고 노력하는 현명함을 가졌기 때문에
24.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25. 똑똑함과 동시에 겸손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26. 그런 똑똑함이 나에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27. 나의 말을 재치있게 되받아치는 센스를 갖고 있기 때문에
28. 그런 재치에 나도 깜짝 깜짝 놀라기 때문에
29. 나도 그런 재치를 배웠으면 하고 느끼기 때문에
30. 수미씨가 한 말, 보낸 문자들이 아직도 내 소설 속에 살아 빛나기 때문에
[탐구]
31. 겸손함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진리를 탐구하려고 하기 때문에
32. 바쁜 일상을 쪼개 책을 보며 자신의 자아를 가꾸려고 하기 때문에
33.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야간에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에
34. 진리에 대한 탐구에 있어 자신의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에
35. 항상 진지함으로 진리에 접근하려고 하기 때문에
36. 진리에 접근하는 자세에 꾸준함이 있기 때문에
37. 지적 성숙을 속으로 쌓아두려는 마음씨를 갖고 있기 때문에
38. 책을 읽으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을 갈고 닦으려고 하기 때문에
39. 그런 모습이 나에게 자극을 주기 때문에
40. 그래서, 수미씨의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 내가 부럽기 때문에
[취미]
41.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42. 운동을 통해서 땀의 끈끈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43. 땀으로 사귄 친구들의 소중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44. 슬픈 영화를 보며 울 수 있는 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45. 영화를 같이 보며 그런 느낌을 함께 나눌 수 있기 때문에
46. 여행가면서 책을 가져오라고 하는 마음씨를 갖고 있기 때문에
47. 같이 아무 말 없이 책을 읽으면서 여행의 참 의미를 나에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48. 뮤지컬을 사랑하는 소녀 같은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49. 내가 보낸 소설을 재미 있게 읽어 주었기 때문에
50. 수미씨의 독특함이 나와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에
[마음]
51. 나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52. 한 말은 꼭 지키고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아름답기 때문에
53. 상대방을 존중해 주며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54. 지혜와 마음이 조화를 잘 이루기 때문에
55. 그런 마음씨를 나에게 들켰기 때문에
56. 내가 그런 수미씨의 마음에 이미 반했기 때문에
57. 가끔 나에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다림의 시간을 주기 때문에
58. 그 기다림을 통해서 수미씨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여유를 주기 때문에
59. 그 여유를 통해서 내가 수미씨를 더 좋아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60. 그래서, 결국은 수미씨가 내 마음을 전부 가져갔기 때문에
[매력]
61. 수미씨는 존재 자체가 큰 매력이기 때문에
62. 수미씨의 환한 미소가 나의 가슴을 고동치게 만들기 때문에
63. 항상 넉넉함으로 감싸 안아줄 수 있는 마음씨를 갖고 있기 때문에
64. 항상 움직이며 자신의 육체를 사랑하며 가꾸려고 하기 때문에
65. 성실함에서 오는 안정감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기 때문에
66. 둥근 얼굴과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기 때문에
67. 눈의 맑음이 수미씨의 순수함을 보여주기 때문에
68. 나에게 적당한 긴장감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69. 그 긴장감이 나를 안달하게 만들기 때문에
70. 그래서, 수미씨의 매력에 취해 내가 정신을 못차리기 때문에
[추억]
71. My X-Wife’s Secret Recipe의 첫만남에 대한 설레임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72. 차 안에서 아무 말 없이 듣던 임형주의 “아베마리아”에 대한 감동이 있기 때문에
73. “살인의 추억”을 같이 보며 같이 놀랜 기억이 있기 때문에
74. 입술을 붉게 물들이며 꽃게를 먹었던 추억이 있기 때문에
75. 한택식물원의 산책과 독서의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76. 이천 도예촌에서의 도자기 빚던 추억이 소중하기 때문에
77. 인사동 거리를 가로질러 오다가 만난 기억이 있기 때문에
78. 김형경의 책을 찾기 위해 청계천 중고서점을 뒤지면서도 기뻤기 때문에
79. 그 책을 건내주지 못하고 떨어져 있는 아픔이 있기 때문에
80. 이런 모든 추억들이 수미씨가 있어서 가능했기 때문에
[행복]
81. 서른 두해를 살면서 수미씨를 만날 수 있어 나는 행복하다
82. 수미씨를 만나서 같이 얘기를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
83. 수미씨가 나를 편안하게 생각해 주는 것 같아 행복하다
84. 수미씨의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85. 수미씨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 행복하다
86. 상상 속에서 수미씨를 만날 수 있어 행복하다
87. 수미씨가 나의 소설 속에 주인공이 되어서 행복하다
88. 그 주인공이 이미 내 마음을 훔쳐가서 행복하다
89. 그래서, 나의 전부를 지배하기 때문에 행복하다
90. 그리고,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수미씨가 있어 난 무지 행복한 놈이다
[사랑]
91. 수미씨를 만나는 동안 사귀는 것으로 착각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92. 그런 착각이 혹시 사랑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93. 그래서 수미씨의 모든 말과 행동이 나에게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에
94. 그런 소중함이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기 때문에
95. 그래서 수미씨를 생각하며 내가 소설을 쓸 수 있었기 때문에
96. 그 소설이 끊이지 않고 계속 써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에
97. 그런 기대감이 수미씨가 말한 1%의 가능성에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98. 지금까지 베푼 것은 아직 내 마음의 극히 일부분 이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99. 그래서 앞으로 더 큰 감동과 베품을 내가 약속할 수 있기 때문에
100.
100번째 칸은 비워져 있었다. 무엇 때문에 비워 놨을까? 나하고 결혼하고 싶다는 얘기인가? 아님, 100번째는 내가 써서 채워 달라는 것인가. 숨이 막혔다. 이렇게 집요한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좋아했으면 이런 것을 쓰고 그랬을까.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점점 머리가 더 어지러워 진다.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될지 모르겠다. 그래, 좀더 무시 하면 제풀에 꺽일 거야. 아니, 나도 이 남자가 좋은데 다시 만나자고 해버려. 몰라 몰라. 머리만 더 복잡해지고 갈피는 점점 잡지 못하겠다. 왜 그 남자를 만났었나 후회된다. 혁연 선배가 밉다.
보고 싶다. 왜 이러지. 나도 이런 내 모습이 싫다. 정말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