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6

보고싶다 미치도록

by 메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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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먹었다. 술이 술을 더 부르고 이젠 내가 술을 먹는 것이 아니라 술이 나를 먹는 것 같다. 회사 동료는 이제 그만 마시자고 술병을 내 앞에서 치운다. 거기까지다. 눈을 떠 보니 택시 안이다. 그래도 다행히 집 부근에 도착했다. 지갑도 휴대폰도 가방도 다 안전하다. 택시에서 내리면서 연신 아저씨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집 앞 보도블럭에 털썩 앉아 교회 후배에게 전화 했다. 새벽 한시가 가까운 시간인데 후배가 전화를 받는다. 그 후배는 내 말을 참으로 잘 들어주고 나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종종 그 후배를 통해 위로를 받기도 한다.



“민정씨! 접니다. 김신우”

“아네. 이 늦은 시각에 왠일이세요?”

“나 또 차였어. 넘 슬프다. 나 왜 매번 이렇지?”

“아이구. 이번엔 왜요?”

“한달 동안 잘 만났는데 내가 감정상 좀 앞서 갔나봐. 내 감정을 아는 순간부터 부담되서 더 못만나겠다는군”

“그러니 제가 천천히 하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러게 말야. 근데 난 좋아하면 그런 감정 조절이 잘 안돼. 좋으면 좋다고 얘기해야 직성이 풀리거든.”

“자꾸 그러면 또 차여요. 이젠 차이는 것도 익숙해 지지 않았어요?”

“익숙이라니. 이번엔 정말 특별한 여자 였단 말이야. 정말 미칠 것 같아.”

“힘 내세요. 또 여자 나타나면 금방 사랑에 빠지시잖아요?”

“자꾸 그런 얘기 하지마. 더 비참해 진단 말이야. 사실 교회 다니지 않은 사람 만나서 벌 받은 건 아니겠지?”

“하하. 그럴지도 모르죠.”

“설마. 근데 나 수미씨 만나면서도 계속 기도했거든. 하나님. 좋아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애는 교회를 안다녀요. 계속 만나는 것이 좋은지 잘 모르겠지만 마음은 그쪽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녀랑 잘 되고 싶어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제 뜻대로 마시고 하나님 뜻대로 하소서 이렇게 기도를 계속 했는데 그 기도가 먹혀서 일까? 정말 슬프군”

“계속 기도 하면 좋은 대상이 나타날 거예요. 힘내세요.”

“민정씨! 우리 결혼할까?”

“헉! 농담이래두…”

“농담이 아니라니깐. 오랫동안 민정씨를 봐 왔는데 난 결혼해서 부부가 같이 성가대 서서 찬양하고 같이 예배드리는게 오래전부터 꿈이었거든. 우린 같은 교회 다니니깐 서로 편하잖어. 그냥…”

“에구 에구. 자꾸 그런 소리 하면 저 전화 끊어요.”

“진짜래두”

“저 전화 정말 끊어요”

“알았어 알았어. 오죽 답답했으면 민정씨한테 이렇게 하소연 하겠니. 미안혀. 이렇게라도 털어 놓으니 마음이 좀 편하군.”

“알았어요. 힘내시고 빨리 들어가서 주무세요.”

“알았습니다. 고마워요.”



집에 들어왔는데도 수미씨 생각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수미씨는 편해서 한달 넘게 만났다고 했는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수미씨가 이해되지 않는다. 양치질을 하면서도 이런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연신 헛구역질을 하며 겨우 양치질을 마쳤다. 발을 씼다가 퍽 소리를 내면서 넘어졌다. 반바지가 다 젖었다. 어쩔 수 없이 옷을 다 벗고 샤워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계속 비틀 비틀 대면서 말이다.



한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수미씨에게 막 전화를 하고 싶었다. 할까 말까 망설이며 휴대폰을 들고 있다 그렇게 잠에 빠진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 났는데 휴대폰이 베개 바로 아래 있는 것이다.





22



오늘은 하루 휴가를 냈다. 그리고 수미씨가 근무하는 회사로 갔다. 물론 수미씨를 만나러 간 것은 아니다. 그냥 혁연이가 보고 싶었다. 12시 무렵 회사 앞에 가서 혁연이에게 도착했다고 전화를 했다. 신문을 보다 언뜻 보니 지난 번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볼 때 옆에 있었던 수미씨 후배가 보인다. 무시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바로 혁연이가 나왔다. 우린 건널목을 건너고 지하도를 통해서 그 동네에서 유명하다던 추어탕 집에 갔다. 산초를 조금 뿌려야 맛있다는 말과 함께 우린 추어탕을 먹었다. 밥을 다 말면 너무 퍽퍽하니까 조금만 말면서 천천히 먹으라고 혁연이가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 놈은 참 사려 깊은 놈이다.



서로 회사 생활과 앞으로의 비전 등에 대해서 얘기했다. 혁연이도 야간 대학원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며칠전 내가 6시 조금 넘어 혁연이에게 전화해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그 시각에 혁연이는 이미 퇴근해서 딸 다빈이와 같이 놀아주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그런 직장이 한국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런지 저녁 퇴근도 빠르고 공부도 해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야간 대학원 갈 생각이 있단다. 난 꼭 가라고 가면 의외로 재밌을 거라고 얘기해 주었다.



우린 이런 얘기를 나누며 추어탕을 다 비웠다. 손님이 계속 들어오는 집이라 더 식당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바로 나와서 조그마한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혁연아. 나 앞으로 어떻게 사니?”

“얘기 들었다. 내가 서둘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게 말이다. 난 한달 가까이 만나고 해서 나에게 관심이 있는 줄 알고 좋아한다고 말해 버렸지. 난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얘기 안하면 미칠 것 같거든. 내 단점인 것은 아는데 어쩌겠냐”

“안다 알어, 남자들이 다 그렇지. 근데 그때 조금만 더 참으면 되는데 그게 힘들지. 사실 여자 입장에서 생각해봐. 자기는 아직도 감정이 별로 생기지 않았는데 남자가 덥썩 좋아해서 미치겠다고 하면 부담 느끼지 않겠냐. 그땐 정말 벽보며 참고 또 참고 해야 한다.”

“맞다 맞어. 그런데 그게 힘드니까 문제지. 그건 그렇고 회사에서 수미씨 좀 봤냐?”

“요즘은 층이 달라 거의 못 본 것 같어. 같이 밥 먹자고 연락도 없네. 참! 내일 우리 회사 대학교 동문회 하거든 그때 볼 수 있겠지”

“그렇군. 보고 싶다. 지금까지 서른 두해를 살면서 난 작년 이래로 나에게 이런 열정이 없을 줄 알았거든. 그런데 수미씨를 만나면서 다시 열정이 생겨 무척이나 고마웠고 이번이 마지막 나의 열정이 아니었나 생각 들었었는데 너무 아쉽네 그려.”

“니 맘 다 안다. 힘내라. 맘 정리되면 내가 참한 여자 다시 소개시켜 주마”

“이제 소개팅 하는게 겁나. 하면 뭐하니 내가 이 모양 인데. 근데 나 수미씨 포기 못할 것 같어. 어쩌지”

“시간이 약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거다. 좀 더 시간이 지나서 너 마음 다 정리되면 수미하고 같이 한번 보자. 뭐 어때 학교 선후배 사이인데 같이 술한잔 하는 거지. 그때까지 기다려 보라고”

“알았다. 한시 가까워 온다. 어서 들어가라”



그렇게 혁연이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가방을 메고 남대문 쪽으로 걸어 나왔다. 상공회의소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30분 넘게 신문을 읽었다. 그리고 시청을 거쳐 종로까지 천천히 걸었다. 저녁 7시 약속 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종로 2가에 있는 극장에 갔다. 마침 “Far From Heaven” 이라는 영화 시작 시각이 딱 맞아 그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중년 부부의 새로운 사랑에 대해 다룬 영화였다. 회사 중역인 남편은 동성에게 사랑을 느끼고 이때 와이프는 흑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1950년대 보수적인 미국을 생각할 때 다소 충격적인 그런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중년 아줌마 들이 많이 극장을 채우고 있었다. “과연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궁금하다.



영화를 보고 종로 5가 까지 다시 걸었다. 대학원 같은 과 형이 다니는 회사까지 갔다. 거기서 30분 정도 수다를 떨었다. 그 형은 왜 그 여자 회사까지 갔냐고 연신 나무란다. 그러면서 자신도 여자와 헤어지고 나서 잊으려고 노력한 얘기를 들려준다. 자신은 여자 생각이 나면 무작정 뛰었단다. 그게 저녁 무렵이건 새벽이건 자다가 갑자기 생각났던 상관없이 일단 헤어진 여자 생각나면 운동화 신고 무조건 운동장을 뛰었단다. 정신 없이 뛰고 나서 샤워를 하면 조금은 인내력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면서 인연이 아닌 것 같으니 빨리 포기하고 잊는 노력을 하라고 한다. 나도 잘 모르겠다.





23



선배와 헤어져 7시 약속 장소가 있는 명동으로 향했다. 명동에 회사 선배가 독일식 호프집을 오픈 했다고 해서 회사 사람들 특히 OB 위주로 모인다고 했다. 오랜만에 선배들을 볼 수 있는 기회다. 그런데 약속장소에 1시간 반이나 일찍 도착했다. 그래서 이리 저리 걷다가 명동성당 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명동성당은 대학 시절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가 있어 한번 들러 본 곳이다. 뒤쪽에 길죽하게 자리 잡은 파이프 오르간은 그 소리가 명동성당 역사 만큼이나 깊이가 있었다. 작년 체코를 찾았을 때 파이프 오르간 연주에 맞춰 성가를 부르던 미소년이 떠오른다. 아주 정결한 고음이 아직도 생생한데. 임형주도 파이프 오르간에 맞춰 노래 부르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성당 안은 아주 조용했다.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기도가 하고 싶었다. 수미씨 문제에 대해서 기도 하고 싶었다. 손을 포개서 머리를 숙이고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이렇게 저를 이 곳 명동성당까지 인도 하여주시고 이렇게 기도할 수 있도록 하심 진정으로 감사말씀 드립니다.

하나님. 당신의 사랑을 매일 받으며 살지만 그 사랑을 무시하고 산 적이 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내 마음속에 하나님을 부인하며 또 얼마나 살았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입니다. 하나님 이 영혼을 더욱 불쌍히 여겨 주시고 하나님의 넒은 사랑으로 감싸주십시오.

하나님. 한 여자를 만났습니다. 전 그 여자가 참 좋습니다. 그 여자가 편합니다. 서로 공감하는 바도 많습니다. 애기도 잘 통합니다. 그 여자와 잘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헤어졌습니다. 제가 너무 빨리 그 여자에게 다가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그 여자와 헤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사실 그 여자는 신앙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것입니까? 가끔은 그게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저도 어지럽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떻게 해야 되지요? 제 짝은 어디에 있는 거지요? 제 배우자를 위해 그렇게 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저도 지쳤습니다. 그래서 올해 들어서 하나님께 배우자를 위한 기도를 못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예비하신 제 배우자가 있다면 전 지금 그 여자를 잊겠습니다. 아니 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예비하신 배우자를 위해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이 그렇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전 계속 그 여자에게 끌리고 보고싶거든요. 참으로 어지럽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들이 제 뜻대로 마시고 다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제 뜻대로 마시고 다 하나님 뜻대로 되길 간절히 바라오며, 이 모든 말씀 거룩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눈을 떴다. 마음이 조금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옆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한 커플이 보인다. 아름다워 보였다. 성당에 와 있으니 맘이 참 편하다. 그래서 멍하니 계속 거기 앉아 있었다. 갑자기 다시 기도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손을 모으고 앞의 의자에 기댄 채로 기도를 드렸다. 그러다 피곤했는지 그만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수미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놀랬다. 헤어진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연락이 온 것이다. 수미씨는 지금 바로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접어 두고 급히 택시를 타고 남대문으로 달려갔다. 수미씨는 자기도 많은 생각을 했는데 나 만한 사람을 앞으론 더 못 만날 것 같다며 우리 다시 예전처럼 만나자고 한다. 가슴 터질 듯 기뻤다. 나에게도 이런 행운이 찾아 오다니. 그래서 우린 우리가 처음 만났던 “My X-Wife’s Secret Recipe” 식당으로 갔다. 스테이크와 와인을 시켜서 우리가 다시 시작하는 날을 기념했다. 와인을 들어 부딪치려는 찰라 귓전을 때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시간이 되어 오늘 저녁 미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성당 수녀님의 목소리이다. 그제서야 단 잠, 단 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쉬웠다. 꿈이라니. 미사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단 꿈을 빼았긴 허탈감으로 인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처벅처벅 성당을 빠져 나왔다.



아직 7시가 되려면 30분은 더 때워야 한다. 명동 거리에 있는 벤치에 앉아 내가 쓴 시집 “젊음은 나래를 펼쳤는데…”을 꺼내서 처음부터 읽었다. 한 2년 전까지만 해도 시가 술술 써졌는데 요즘은 통 시가 안 써진다. 그 만큼 시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진 탓이겠지. 아니면, 시가 쓰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몸 사리고 있는 것일지도. 하여튼 내가 이런 시도 썼단 말인가 스스로 다시 한번 감탄하며 시집을 읽어갔다.



시를 보면 참으로 난 정열적으로 살아온 것 같다. 그런 정열이 없었다면 시도 나오지 않았겠지. 이런 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며 있다 보니 시간이 7시를 훌쩍 넘겼다. 그래서 엉덩이를 털고 그 독일식 호프집으로 들어섰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호프집으로 들어서는 옆쪽에 맥주를 만드는 기계가 있었다. 직접 집에서 만들어 파는 그런 하우스 맥주집이었다. 작년 독일 갔을 때 친구랑 먹던 그 맥주맛이 떠올랐다. 구수한 숭늉 같은 맥주 맛. 이 집 맥주도 그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시 호프집은 맥주가 맛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러지 오픈 한지 2주 밖에 되지 않는 집인데도 불구 제법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맥주가 맛있어 좀 과하게 먹었다. 그래도 장시간에 걸쳐 얘기를 많이 하며 먹어서 그리 취하지는 않았다. 집에 오는데 선배가 병맥주 몇 개를 선물로 챙겨 준다. 그것을 들고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24



아침부터 가슴이 아파온다. 마음이 아픈게 아니다. 가슴이 아프다. 숨이 막힐 정도로 가슴이 아파온다. 최근 수미씨와 헤어지고 나서 술을 조금 과해서 이런 것 같다. 그래도 너무 아프다.



예전에도 비슷한 증상이 있어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정밀검사를 받아보니 다른 이상은 없고 술을 많이 먹어 위가 부어 심장을 압박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술을 많이 줄였는데 최근 수미씨 일로 또 술을 과하게 먹었더니 바로 증상이 나타난다.



가슴 뿐만이 아니라 어깨 근육까지 욱신욱신 거린다. 회사를 출근할 수 있을지 모를 정도다. 술기운에 윗통 벗고 팬티만 입고 자서 그런지 몸도 으실으실 춥다. 몸살기가 다시 온 것 같다. 겨우 샤워를 하고 운전을 하고 회사로 오긴 왔는데 영 몸상태가 아니다.



오늘 샤워를 하고 몸무게를 재었는데 몸무게가 2킬로 넘게 빠졌다. 얼굴도 헬쓱해 보인다. 연예인 주영훈이 실연 이후 부쩍 빠진 모습으로 다시 TV에 등장했을 때 놀랬었는데 나도 그렇게 되려나 보다. 실연은 가슴 아프지만 살이 빠지는 것은 기분이 좋다. 오늘 드디어 5년만에 50KG 대로 들어섰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사무실에 한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아무도 와 있지 않았다. 조용한 사무실에 아픈 육체를 이끌고 와서 자리에 앉았다. 다시 앞이 깜깜해 지며 가슴이 아파온다. 뭔가 시가 나올 것도 같았다. 그래서 서둘러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시를 써내려 갔다.





失戀(실연)



뱃가죽은 달라붙어 가는데

머리는 맑아진다



아침부터

그냥 굶었다

점심, 저녁까지 세끼를 굶으니

잡념이 없어진다



친구는 미련한 짓 하지 말라고

왜 그리 학대하냐구

나무라는데

난 이게 좋다

때론 금식이 나에겐 그녀를 잊는 방법이다



보고싶다

며칠을 더 굶어 그녀를 볼 수 있다면

그냥 마냥 굶어

쓰러지고 싶다





이렇게 쓰고 나니 가슴이 덜 아픈 것 같다. 역시 난 글을 쓸 때 마음이 편해지고 머리도 맑아 지는 것 같다. 그래서 끊임 없이 계속 글을 쓰려고 하는 지도 모른다. 한달 전부터 시작한 편지쓰기도 나에겐 딱 맞는 스토킹(?) 방법이다. 그때 우표를 25장 샀는데 오늘 보니 5장 밖에 남지 않았다. 다섯 번만 더 보내고 이 스토킹도 접어야 겠다. 그리고 내 마음도 정리해 가야 겠다. 이러다 내가 이상해 지는게 아닌가 걱정된다. 신경쇠약에 정신 질환을 앓게 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래 딱 여기 까지다. 참고 참자.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