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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원의 어떤하루 Jun 08. 2023

대한민국에서 결혼한 기상캐스터로 살아간다는 것.

결혼과 임신 앞에서 당당한 여성이 되기

'날씨 스탠바이, 타이틀 돌리고 캐스터로 커트!'


 경쾌한 타이틀 음악소리와 함께 등장해 날씨를 알려주는 1분 30초. 1분 30초라는 짧은 시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속하면서도 정확하게 오늘과 내일의 날씨를 전달하는 것이다. 기상캐스터가 날씨 방송 1분 30초를 준비하기 위해 스스로 날씨를 분석하고 원고를 직접 작성하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 과정을 게을리한다면 프로가 아니다. 내가 분석하고 기획한 날씨정보를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매일의 1분 30초는 특별하고도 감사한 시간이다. 


  물론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원망의 소리도 종종 듣는다. 주말에 비 예보가 있어서 비가 온다고 했는데 비가 안 오면 '소중한 주말 계획을 내가 망친 건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미세먼지가 유입될 것 같으니 외출을 삼가라고 했지만 공기가 깨끗할 때의 머쓱함이란 기상 관련 종사자로서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이다. 기상청 예보가 틀린 거지 나는 잘못이 없는걸요?라고 이야기해도 시청자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예보가 맞지 않을 가능성까지 생각해 말의 뉘앙스까지 세심하게 고려해야 하는 게 이 일의 고충이다. 

 신이 아닌 이상 기상을 100%로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내가 취합한 최선의 기상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자는 것이 이 일에 대한 나의 신조였다. 기상캐스터로서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사명감 속에 방송하며 어느덧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다른 건 모두 그대로지만 나에겐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결혼'을 했다는 것.


 내가 결혼을 앞두고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그럼 회사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였다. 나를 생각하는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도 결혼을 한 사람이 기상캐스터 일을 계속하는 건 익숙지 않게 느껴졌나 보다. 인터넷상에 나의 결혼기사가 나가게 됐을 때는 '취집'이라는 악플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사회적인 편견과 다르게 나는 결혼 후에도 내가 좋아해서 선택한 이 일을 계속하고 싶었기 때문에 억울한 마음이 컸다.


 기상캐스터는 대부분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 신분인 만큼 결혼과 출산, 육아에 있어서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다.  다른 채널의 예를 들자면 청첩장을 돌리자마자 해고 통보를 받기도 하고, 임신을 하면 출산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아이를 낳고 기상캐스터를 계속하는 선배들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본인의 일하고 싶은 의사와 더불어 회사에서 그 사람을 필요로 하는 서로의 니즈(needs)가 일치하는 경우다. 결국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감사하게도 결혼한 후 3년간 다니던 방송국을 잘 다니면서 안정적으로 기상캐스터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이 생긴다면 나 역시도 고용불안의 벽 앞에 놓일 수 있다는 혹시 모를 불안정성이 이따금씩 마음속을 어지럽혔다. 당시 내가 두려웠었던 건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과 동시에 기상캐스터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것이었다. 세상 누구보다도 축복받아야 할 그 순간이 퇴사의 순간이 되는 일은 겪고 싶지 않았다. 


  임산과 출산, 일이란 대한민국 여성의 삶에는 공존하기 어려운 너무나 쉽지 않은 과제이다. 이 과업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나는 30대 중반에 접어들어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바로 '창업'이다. 초등교사, 승무원, 기상캐스터로서 일하며 축적한 10년간의 삶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창업을 해 다른 외부환경의 영향 없이 독자적인 나의 일터를 일구고자 하는 목표가 이를 뒷받침했다. 


  당장 임신을 한 상황도 아니었고, 퇴사를 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더 큰 틀에서의 결단과 장기투자가 필요한 시기라는 판단이었다. 애정을 담고 사랑하는 일, 정든 회사를 떠나는 것에 대한 결정을 시행하는 데까지의 고민들은 한동안 나의 마음을 힘들게 했지만, 20대에도 겪어봤던 이별 성장통이라는 나의 경험치가 이를 위로해 줄 수 있었다. 기상캐스터가 되기 위한 준비로 대한항공 승무원을 그만두는 일은 당시 20대 중반의 나에게는 결정하기 힘든 일이었는데, 결국 그 과정을 겪고 더욱 나에게 적합한 일을 찾게 되었으니 말이다.


임신 8개월 차에 촬영한 만삭사진

  물론 이 새로운 도전이 꼭 성공적일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있지 않았지만, 적어도 당시의 나를 위해 결정한 최선의 선택지였음을 스스로 믿는 것이 중요했다. 믿음 속에 시작된 나의 창업기는 다행히 순항고도를 유지하고 있고, 현재 나는 임신 9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다음 달이면 가정에 새 생명이 태어난다는 설렘과 기쁨을 다른 외부 요인의 변화에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와 더불어 앞으로 성장해갈 나의 브랜드도 기대가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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