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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필름 Nov 05. 2021

D-7 |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쌍함으로


프랑스 사람들을 홀린 단 한 명의 아시아인이 쓴 한 달간의 일기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는

2년 전 프랑스에서 한달살기를 했을 때 쓴 일기와

2년 후 한국에서 그 일기를 보며 다시 하루를 기록한 내용을

하루씩 교차해서 보여주는 에세이입니다.

11월 9일 화요일에 출간됩니다!

그때까지 맛보기로 이곳에 매일 하루에 하나씩 본문을 공개할게요!

(스포가 안 될 정도로 아주 쪼끔만)


그럼 바로 아홉 번째 하이라이트 공개합니다!!!







블루… 블루 티켓… 속으로 블루블루를 중얼거리며 티켓을 주지도 않을 거면서 자꾸 내 사진을 찍어가는 사람들을 최대한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렇게 한참을 더 서 있었다. 20분이 지나 어느덧 8시였다. 정말 티켓을 구할 수 있는 건 맞나… 절망에 가까워졌을 때쯤 키가 큰 남녀커플이 나에게 다가왔다. 정확히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기억나는 건, 남자가 나에게 뭐라고 말을 할 듯해서 내가 유 헤브 어 티켓? 했더니 남자가 주머니에선가 봉투를 꺼내더니 티켓을 보여주는데 저게 블루가 맞나 싶게 흐리멍텅한 색이었고 하나 필요하냐고 해서 예쓰, 하나면 충분, 그랬더니 남자가 고민하는 것 같더니 두 장 다 줄 테니까 절대 팔지 말라고 하고는 블루 티켓 두 장을 나에게 줬다.


- 절대 팔면 안 돼.

- I don’t… I don’t….


나는 남자의 단호한 목소리에 쫄았고, 팔 생각 안 해봤는데 순간 그 말을 듣자 팔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건 사실이고, 티켓을 구했구나! 하는 생각에 얼떨떨해서 말을 더듬으며 아이돈트 아이돈트만 외쳤다. 티켓 두 장이 생겼다. 땡큐 쏘 머치를 남자에게 한 번, 옆에 서 있던 여자에게 한 번 했다. 둘은 쿨하게 퇴장했다. 생명의 은인이신데 나으리 성함이라도 여쭈었어야 했나. 티켓 한 장이 생겼으니 나머지 한 장은 계속 내 앞에 서 있던, 종이에 엄청 어설프게 잘 보이지도 않게 블루 티켓 달라고 쓴 아줌마에게 드릴까 했는데, 어디선가 또 티켓 냄새를 맡은 다른 아줌마가 내 옆에 다가와서는 너 티켓 얻었냐며 옆에 서 있던 정장을 입은 남자에게 뭔가를 묻는가 싶더니 내 티켓을 다 같이 보면서 몇 시에 시작이고 드레스 코드를 지켜야 되고… 등등 서로 물어보고 답한다. 나는 어쨌든 기쁘고 행복해서 남은 티켓을 내 옆으로 다가와 착 달라붙었던 아줌마에게 드렸다. 아주머니는 무척 고마워하셨다. 꽤 많은 사람이 티켓을 달라고, 또는 공작 티켓을 달라고 종이를 들고 서 있는데 그 커플이 딱 나를 찍고 나에게 다가와 티켓을 준 것은, 종이를 들고 서 있는 내 모습에 무언가 사람을 끄는 힘이 있어서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뿜어져 나오는 불쌍함이 있나 보다. 이 티켓을 누군가에게 줘야 한다면 가장 불쌍하고 간절해 보이는 너로 정했어! 아니면 그냥 아시아 영화니까 아시아 사람에게 줬을지도.


결국 20분만에 티켓을 구했다. 진짜 되긴 되는구나. 나는 얼떨떨하지만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종이와 티켓을 고이 접어 가방에 넣고 조금 한적한 곳으로 빠져나왔다. 화단에 걸터앉아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프랑스 아저씨다. 어디서 왔냐고 묻기에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which part’를 묻는다. 아

휴, 남쪽이죠, 라고 하니 아니 그게 아니고 남한 어디냐고 묻는다. 서울이냐, 부산이냐 까지 묻는게 심상치 않다. 나는 경기도에 사는데 설명하기 어려워 그냥 서울이라고 하고 만다. 그러자 서울 어디냐고 묻는다. 이 사람 뭐 하는 사람이야. 이제 와서 경기도라고 말하기는 더 어려워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서울 4호선 역이 뭐가 있더라, 사당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안단다. 네? 세상에!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이 쓰는

하루하루 교차 에세이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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