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필름 Nov 05. 2021

D-5 | 30대는 '불행'을 생각하기에 좋은 시기다


어느 작은 예술가의 소멸기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는

2년 전 프랑스에서 한달살기를 했을 때 쓴 일기와

2년 후 한국에서 그 일기를 보며 다시 하루를 기록한 내용을

하루씩 교차해서 보여주는 에세이입니다.

11월 9일 화요일에 출간됩니다!

그때까지 맛보기로 이곳에 매일 하루에 하나씩 본문을 공개할게요!

(스포가 안 될 정도로 아주 쪼끔만)


그럼 바로 열한 번째 하이라이트 공개합니다!!!









예술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며 딱 하나 가슴 깊이 새긴 것이 있다. 절대, 나도 옛날에 영화했었는데, 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고. 영화를 촬영하며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어딜 가나 꼭 한 분이 이런 말을 한다. 나도 옛날에 영화했었는데 지금은 이 일 하며 살아. 나는 그 말이 너무 슬펐다. 그래서 절

대 그런 사람은 되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절대로 그만두는 사람은 되지 말자. 그러나 나는 결국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그거 딱 하나 새겼는데 그거 하나 지키지 못한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미래다.


나는 사람에 지쳤다. 영화 따위 됐다. 아무리 꿈이어도 행복하지 않다면 됐다. 한강이 보이는 비싼 아파트에서 와인을 마시다 문득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성공이라면 나는 애초에 포기하고 싶다. 미치도록 재밌는 영화들이 매년 꾸준하게 개봉하는데 그 영화를 못 본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나는 오래 살

아야 한다. 자살은 안 된다. 어쩌면 이건 너무 극단적인 생각일지 모른다. 뭘 자살까지 하냐고. 그렇게 힘들면 돈만 벌고 중간에 멈추면 되지 않냐고. 그러나 중간에 멈추는 건 없다. 모든 영화가 그렇다.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주인공은 없다. 아주 끝까지, 작은 조각까지 샅샅이 부서진다. 파멸이다. 그래서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기로 한다. 살짝 맛만 봤는데도 더러워서 담그려던 발을 급히 빼기로 한다.


아니, 다르게 써보자. 나는 능력이 없어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한다. 성공이 싫어서 하지 않는 것이라고. 옹졸한 마음에 비겁한 변명을 찾아낸 거라고. 그래, 이게 더 인간적이다. 뭐가 맞든 사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 못하든 안 하든 뭐든.


2년 전의 내가 프랑스까지 가서 겨우 특별하게 만들어놓은 나를, 2년 후 지금의 내가 엄청나게 괴로운 순간들을 겨우겨우 참아내 가며 별 볼 일 없는 나로 만들어놓았다. 대단한 작업이다.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이 쓰는

하루하루 교차 에세이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

매거진의 이전글 D-6 | 새벽에 남의 집 고양이와 벌인 사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