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필름 Nov 06. 2021

D-3 | 저는 정말 누드비치에 갈 생각은 없었어요


물론 프랑스 얘기도 많이 나오는 프랑스 한달살기 에세이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는

2년 전 프랑스에서 한달살기를 했을 때 쓴 일기와

2년 후 한국에서 그 일기를 보며 다시 하루를 기록한 내용을

하루씩 교차해서 보여주는 에세이입니다.

11월 9일 화요일에 출간됩니다!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여긴 그냥 작은 동네다. 유명한 휴양지인 니스와 칸 사이에 있다 보니 해변에 리조트들이 많고 주변에 상점들이 조그마하게 있다. 해변이라고 해봤자 한국에 대천 해수욕장만큼 거대하고 으리으리하지도 않다. 단촐하게 모래와 파란 바다가 조금 있을 뿐이다. 해변에 사람들이 아기자기하게 누워있었다. 다들 비치타월을 깔고 홀가분하게 누워있구나, 나도 얼른 자리를 잡아야지, 저쪽 구석에 가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터벅터벅 모래 위를 걸어가며 사람들을 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팬티만 입고 있었다. 응?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영복 하의만 입고… 위에는 모두 벗고 있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가…. 내가 뭘 본 거지? 내가 방금 무슨 가슴을 본 거지? 응? 어??? 뭐?????


여긴 누드 비치가 아니다. 누드 비치라면 푯말이 어딘가에 크게 있었을 것이다. 여긴 도로 바로 옆에 조그맣게 있는 그냥 그런 동네 해변이다. 그런데 여자들이 가슴을 훤히 드러내놓고 태닝을 하고 있었다. 여기도 가슴, 저기도 가슴이었다. 할아버지 가슴, 아저씨 가슴, 아줌마 가슴, 할머니 가슴, 이 가슴, 저 가슴… 와우. 여자인 나도 여자들의 누드를 보고 이렇게 눈이 돌아가는데 남자가 왔다면…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타월을 깔고 자리에 앉아 겉에 입고 온 옷을 벗고 수영복만 남기고 그래도 팔뚝 살이 좀 부끄러워서 카디건을 꺼내 입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니, 나도 벗어? 하는 생각이 솔직히 들기도 했다.


벗으면… 진짜… 진심으로… 여자로서… 해방감 오지겠다. 바다를 잠깐 바라보다가 뒤돌아보니 아주 작은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떡하니 20층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리조트가 길가에 쫙 있었다. 테라스에서 이곳이 아주 잘 보일 것이다. 심지어 한적한 곳도 아닌데 사람들이 진짜 아무렇지도 않게 훌러덩 벗고 있구나. 와우, 프랑스.


프랑스의 누드 비치란 이런 것이다. 도시를 걸어다니는 차림의 두 남녀가 도시를 걸어 다니다가 해변으로 들어왔다. 가방에서 꺼낸 비치타월을 깔고 자리를 잡더니 자켓을 벗고 티셔츠를 벗고 바지를 벗고 브래지어를 벗는다. 도로에서 해변으로 스무 걸음 걸어 들어왔을 뿐이다. 남자는 바지 속에 수영복을 입고 있었고 여자는 그냥 망사 팬티다. 선글라스를 끼고 바다를 보며 음악을 듣고 있던 나는 그 커플이 내 앞에서 그러는 바람에 강제로 그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안 보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이건 여자고 남자고를 떠나서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누드가 된 커플은 그대로 일자로 누웠다. 아무렇지도 않게.


태양 아래에 누워있는 기분은, 딱 찜질방 안에 들어와 있는 것과 똑같은 기분이었다. 후끈 후끈한 열기가 나를 꾸욱 누른다. 어디선가 잠깐씩 찬바람이 불어와 열기를 식히고 나면 다시 태양 빛이 내리쬔다. 이건 햇빛이라고 할 수 없다. 태양 빛이다. 살이 익어가는 느낌이 든다. 온몸이 소독되는 것 같다. 가슴까지 내놓으면 진짜 기가 막히긴 하겠다. 그러나 나는 꾹 참는다.


눈을 감고 나른함을 즐기다가 눈을 떠서 태양을 바라보며 최면에 걸린 듯 몽롱해져 있는데 어떤 아시아 아줌마가 다가와 나에게 종이 한 장을 보여줬다. 거기엔 ‘마사지’ 라는 영어와 각종 신체 부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아줌마는 가지 않고 두 번, 세 번 나를 설득했다. 노노노노노. 내가 다

섯 번 정도 거절하자 아줌마는 다른 손님을 찾으러 갔다. 한국에선 맥주나 치킨을 파는데, 여기서는 마사지를 파는구나. 같은 아시아 사람으로서 마음이 불편했다. 프랑스는 인터넷도 느리고 언덕도 너무 많고 가게도 8시면 문 닫는 정말 별로인 나란데! 나는 이 나라에 자격지심을 느낀다. 프랑스 사람이 다가와 마시지를 해주겠다고 했으면 느끼지 않았을 감정이다. 나는 내 인생을 책임질 돈도 없으면서, 프랑스에 와서 선글라스를 끼고 가슴이 파인 수영복을 입고 누워있는 내가 부끄러웠다.




▲ 이 상황은 영상으로 확인하실 수 없습니다. (철컹철컹)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이 쓰는

하루하루 교차 에세이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

매거진의 이전글 다음 주 화요일 11/9 드디어 책이 출간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