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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필름 Nov 07. 2021

D-2 | 낭만의 나라 프랑스에서 무표정하기


불행해서 떠난 여행은 고스란히 불행을 남겼습니다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는

2년 전 프랑스에서 한달살기를 했을 때 쓴 일기와

2년 후 한국에서 그 일기를 보며 다시 하루를 기록한 내용을

하루씩 교차해서 보여주는 에세이입니다.

11월 9일 화요일에 출간됩니다!





내일이 칸 영화제 폐막이다. 그렇다면 해변에서 하는 밤 영화 상영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그러니 밤이 될 때까지 버텨야 했다. 우선 꼭 가고 싶었는데 한 번도 못 갔던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다. 다큐멘터리 촬영에 응해준 한국 친구들에게 줄선물을좀 샀다. 숙취 때문에 속이 영 좋지 않았다. 이럴 땐 우걱우걱 밥을 먹어서 속을 눌러줘야 한다. 저번에 갔었던 타이완 식당에 가고 싶었는데 하필 4시라 문을 닫았다. 한참을 걷고 걷다가 한적한 카페에 앉아서 스프라이트를 마시며 쉬었다. 다 마시기도 전에 안에 날파리가 빠졌다.



밥이 필요해


6시, 식당에 가니 아직 문을 안 열었다. 해변으로 가서 한 시간을 더 보내기로 한다. 날씨는 좋고 사람은 많고 나는 혼자 할 일이 없다. 멍하니 아무 데나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옆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그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목소리가 정말 멋진 남녀가 함께 노래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저 사람들이 노래하는 게 좋아서 버스킹을 하는 건지 그냥 돈 벌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노래하는 내내 표정이 굳어 있었다. 많이 피곤했나.


가수들이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 〈비긴 어게인〉을 보면서 관객들 표정이 왜 저렇게 굳어 있나 했었는데, 지금 문득 내 표정을 인식했더니 완전 굳어 있다. 그렇구나. 그냥 굳은 표정으로 노래를 하고 굳은 표정으로 노래를 들었구나.


7시, 다시 타이완 식당에 갔다. 문을 열었다. 식당에 들어가 저번에 시켰던 고기 요리랑 하나 더 추천해달라고 해서 두 가지 메뉴를 시켰다. 사장님은 매운 걸 좋아하냐면서 킹프론을 추천해줬다. 그래, 새우 요리라면 뭐가 어떻게 이상하게 나와도 최소한 새우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겠지. 고기 요리가 먼저 나왔다. 저번처럼 불고기와 비슷한 맛이 났다. 쌀밥을 우걱우걱 씹어 먹으니 아휴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숙취엔 쌀밥이 최고다.


요리를 두 가지나 먹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가게에 있던 손님들이 다 나가고 사장님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있었다. 나는 저번에 왔을 때 내가 음식을 남겨서 사장님이 속상해했던 게 마음이 쓰여서 사장님에게 일부러 “여기 두 번째 오는 거예요, 맛있어서 또 왔어요” 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사장님은 저번에 친구랑 같이 왔던 걸 기억하신다고 했다.


사장님과의 대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심도 깊었다. 나는 솔직히 고백하는데, 타이완이 어느 나라인지 몰랐다. 막연히 ‘타이’라는 발음 때문에 태국인가, 라고만 생각하고 말았다. 내가 사장님에게 중국인이냐 물었더니 사장님은 타이완 사람이라고 했다. “아, 아까 손님들하고 얘기하실 때 중국어 쓰신 줄 알았어요.” “당연히 중국말을 쓰죠, 타이완 사람인데.” 아, 이런. 그제야 알았다. 대만이구나. 태국은 타일랜드, 대만이 타이완.


대화는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사장님은 김정은을 ‘그 나쁜 놈’이라고 하시면서 갑자기 북한이랑 왜 만난 거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러게요. 저도 진짜 몰랐어요, 이렇게 갑자기 만나고 대화를 하고. 전쟁이 진짜 끝나는 건지, 저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어요.” 사장님은 김정은이 진짜 평화를 원하는 것 같냐고 물었다. 사장님 생각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사람들은 역시나 ‘돈 문제’일 거라는 얘기를 해요.” 그러자 사장님은 아무도 없는데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김정은이 돈 달랬어요?” 라고 물었다. “아니 뭐, 그런 건 제가 알 수 없는데, 예전에 그런 일들이 있었죠.” 남한과 북한의 사이라는 게 간단하지가 않아서 한국어로도 설명하기 어려운데 영어로는 도대체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장님은 여전히 화가 나셔서, “도대체 남한 대통령은 왜 만났대요?” 하고 물었다. “우리는… 그래야만 해요. 헤어진 가족들이 있어요.” 그러자 사장님은 조금 더 씩씩대며 “김정은 그 사람 할아버지부터 그랬어요. 거짓말에 또 거짓말에! 정상회담 하고 나서도 다 거짓말!” “그쵸. 네, 그렇죠. 김정은의 속내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저도 온전히다 믿을 수가 없어요. 우리는….”




▼ 칸 영화제에서 함께 버스킹을 들어보고 싶으시다면 영상을 확인해 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zz5VaNqjCLA&t=2s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이 쓰는

하루하루 교차 에세이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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