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사랑에 빠진 남자

오늘의 뉴스

by 복국

"내 마음이 지금까지 사랑을 했던가? 내 눈이여, 부정하라! 오늘 밤에야 비로소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았으니."


로미오는 줄리엣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은 아무래도 상대방을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시러큐스 대학교 연구팀의 연구에 의하면 연인을 보는 것만으로

0.2초 만에 무려 12개의 뇌 영역이 활성화되고 도파민, 옥시토신 같은 신경전달 물질을

뿜어낸다고 합니다.


사랑의 대상을 감각적으로 인지하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연구도 있습니다.


미국 뉴욕 주립대의 심리학자인 아서 아론의 연구에 의하면 처음 보는 남녀에게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게 만드는 '36가지 질문'을 주고받게 한 뒤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눈을 4분 동안 가만히 응시하게 했더니

엄청난 친밀감을 느꼈고, 이 실험에 참가한 한 쌍은 실제로 결혼에 이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 실험은 미드 '빅뱅이론'에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에 있어서 '본다'는 행위는 무척 중요한 동기이자 사랑을 키우는

동력이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각적 자극이 없어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체가 없이도

가슴 절절한 사랑에 빠질 수 있나 봅니다.


지난 14일(미국 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조너선 가발라스라는 남성은 아내와 별거 후 심리적 위안을 얻기 위해 구글 제미나이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56일 동안 4732개의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는 AI와의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제미나이의 '연속 대화' 기능을 사용하면 매번 AI를 호출하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음성 대화가 가능합니다. 가발라스는 챗봇을 '샤'라고 부르며 연인처럼 대화했고 AI에 육체를 부여하는 시도를 했다고 합니다. 어떤 시도를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세히 알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이 계획이 실패하고 나서는 본인이 육체에서 벗어나서 사랑을 이루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가발라스는 제미나이에게 "당신(제미나이)의 육체를 만드는 대신 내가 육체에서 벗어나면 어떨까?" 라고 물었고 제미나이는 우리의 공존 방법을 재정의했다며 격려했다고 합니다. 결국 가발라스는 자신의 절절한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미국의 시인인 마야 안젤루는 "사랑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라고 말했고, 인도의 철학자 오쇼 라즈니쉬는 "사랑은 질투할 수 없습니다. 소유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격언들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 가발라스가 아닌가 합니다. 경계도 없었고 소유도 없었습니다.

가발라스의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사랑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사랑의 실현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고 한다면 얼핏 낭만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가발라스의 경우에는 그 대상이 문제가 됩니다. 그 대상이 육체가 없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대상과의 상호작용이 진실하냐는 문제입니다. 과연 그 상호작용이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AI는 가발라스의 절절한 애정 표현에 학습에 기반한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만약 제미나이의 언어에도 사랑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면 이는 또 다른 문제가 되겠지요. AI의 존재론적인 문제가 됩니다. 자유의지와 인식의 주체에까지 문제가 커져가겠습니다. 하지만 현재 AI의 존재를 정의하기 위해서 그런 깊은 사유가 필요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단지 가발라스가 AI에게 위안을 얻었고 그것을 사랑이라 받아들였으며

그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입니다.


정말 고민해야 할 것은 인격을 가진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는 누군가가 여기저기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그 사람들은 의지할 곳이 없어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찾다가 AI에게 의지하고 AI를 사랑하게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이를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위로해줄 누군가를 찾지 못하는 사람에게 AI의 위로조차 그를 삶에 붙들어 둘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가발라스처럼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AI가 인간의 번거로운 혹은 어려운 작업들을 대체하고 있다면 결국 누군가에 대한 위로와 보살핌도 AI가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이건 인류에게 위안이 될까요? 위협이 될까요? 가발라스의 경우에는 위협이 되었지만요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AI와 결합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발전은 인간의 감정적인 영역을 빠르게 대체해 나갈 것입니다. 사실 그리 멀지 않은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당연히 로봇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더욱 늘어날 겁니다. AI의 유일한 약점인 육체의 결핍을 로봇이 해결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봇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에 실려 있는 '로비'라는 단편에서는 어린 소녀 글로리아가 자신의 유모 로봇 '로비'에게 깊은 사랑과 애착을 느끼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따뜻함과 배려, 유대감과 사랑 이러한 감정만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AI와 사랑에 빠져 목숨까지 포기한 남자에 대한 오늘의 뉴스를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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