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을 모르는 세대도 있다.
아는 세대가 더 적을지도 모르겠다.
백묵은 하얀 분필을 일컫는 말이다.
분필도 모르는 세대가 있을지도...
지금은 학교 교실에서 화이트 보드나 더 나아가 전자칠판을 주로 사용하지만 한 십년 전까지만 해도 주류는 녹색 칠판이었다. 그 칠판에는 하얀 가루를 풀풀 날리는 백묵이 제격이었다.
이렇게 생긴 아이다 요새는 백묵을 잘 사용하지 않지만 백묵은 칠판에 필기하는 것 이외에 다른 용도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주로 무기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체구는 작으시지만 운동신경이 좋고 머리숱이 얼마 없으시며 단호한 유머를 사용하시는 수학 선생님들께서 즐겨 사용하셨던 거 같다. (개인적인 견해다. 특히 수학선생님이라는 부분은)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이 타켓이었는데 선생님께서 조준하시면 학급의 전 학생이 숨을 죽이며 명중을 기원했고, 명중하지 못하면 다함께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느낌의 선생님... 백묵을 칠판에 특정 각도로 마찰을 일으키면 정말 듣기 괴로운 주파수대의 음역이 형성되어 귓구멍을 후비는데, 많은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조는 경우, 대량살상무기로 활용하시는 선생님들도 종종 계셨다
백묵의 단짝은 칠판 지우개다. 지금도 화이트 보드를 지우는 지우개가 있지만 그런 스펀지랑 다르게 무언가 포근하고 정겨운 느낌을 가진 아이였다.
대충 이런 느낌 흰 가루를 잔뜩 머금은 칠판 지우개를 창 밖에서 탈탈 털어낼 때는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더랬다. 잘 관리가 되지 않은 지우개로 칠판을 지울 때는 칠판을 지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뿌옇게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이 지우개를 매 시간 정성스럽게 털어주는 것은 당번 학생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고, 칠판을 지우는 것과 지우개를 관리하는 것이 해당 날짜 당번의 유능함의 척도가 되기도 했었다.
백묵, 그러니까 하얀분필을 잘 안쓰게 된 이유가 명확하게 무엇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한 5,6년 전부터는 백묵을 사용하는 학교를 거의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아마 분필가루가 학생들과 교사들 건강에 안 좋다는 이유로 많은 학교가 사용을 기피했던 거 같다. 백묵의 원료는 황산칼슘 혹은 탄산칼슘이라고 하는데 이게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명확한 연구결과는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흰색 분필 가루를 들여마시면 확실히 목이 간지럽고 기침이 나긴 했었다. (모든 가루가 일으키는 공통적인 증상이라는 느낌은 있다.)
그런 느낌때문인지, 이 분필이 폐렴이나 폐암의 원인이 된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었다. 그리고 전자칠판이나 화이트 보드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백묵뿐만 아니라 형형색색(그래봤자 빨강, 노랑, 파랑 정도)의 분필들이 자연스럽게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사실 분필은 가루가 손에 잘 묻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그 손으로 얼굴을 만져서 자기 손으로 본인 얼굴을 영구(아시려나 모르겠다. '영구'라는 단어를)로 만들어 버리는, 의도치 않은 피해사례를 양산하기도 했었다. 옷에도 많이 묻어서 모처럼 어두운 색 정장으로 시크한 멋을 낸 날에 어깨에 내려앉은 분필 가루가 비듬처럼 보여 슬픈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날도 종종 있었다. 부러지기도 잘 부러져서 교사들의 필기 리듬이 끊기기도 하고 잔해가 쌓여서 교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기도 했었다.
사라질만해서 사라진 백묵이다.
사실 백묵이 그리워서 이런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요즘 어린이들에게 전화기를 그려보라고 하면 네모난 휴대폰의 모양을 그린다고 한다. 통화 버튼의 전화기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아이도 종종 있다. 난 교사라서 요즘의 아이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을 그들은 전혀 모르고, 내가 모르는 것들을 그들끼리 신나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게 또 굳이 아쉽고 서글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나에게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에게 전혀 당연하지 않은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가끔 의식하면 사라지는 것들을 추억할 수도 있고 새로운 재미들이 생겨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백묵을 잠깐 회상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