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하고많은 일 중에
왜 음식점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어쩌다 보니요.”
음식 만드는 일에 거창한 사명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대손손 며느리도 모르는 비법이 내려오는 집안도 아니다.
음식 장사 말고 다른 길을 모르는 외골수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외식업으로 먹고살게 되었을까.
처음 장사를 시작한 곳은 문화촌의 작은 시장 골목이었다.
이 평 남짓한 신발가게에 알록달록한 보세 신발을 진열하면,
따뜻한 백열등 아래서 신발들은 바쁘게 팔려 나갔다.
매일 새벽 세 시,
올라갈 줄 모르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려 도매상가로 향했다.
일어나기 어려워서 그렇지
막상 도착하면,
그곳은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들이 펄떡이는
체험 삶의 현장이었다.
그 틈을 비집고 어깨가 처지도록 사입해 오는 일이 너무 고돼
이 일만 아니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배가 덜 고팠던 걸까.
나는 다른 길을 찾았다.
정시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이번에는 수입이 고팠다.
꾸준히 들어오는 월급은 꾸준히 빠져나갔다.
장사처럼 돈을 세는 맛이 없었다.
"넌 사장이 어울려.”
남편의 근거 없는 칭찬 한마디에,
나는 고래처럼 춤추기 위해 국숫집을 열었다.
재료가 먼저 떨어져
마감 시간 전에 문을 닫는 날이 잦아졌다.
국수를 팔아 밥을 사고,
밥을 팔아 마음을 샀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마음을 사는 일이,
내가 비교적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지금은 숯불에 갈비를 구워 판다.
마음은 숯불처럼 활활 타올랐다가, 금방 스러져 재가 되기도 한다.
힘들고 버거울 때마다
마음속으로 되새기는 말이 있다.
불피지락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살고 싶다.
피할 수 없어서 억지로 즐기는 삶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도망치지 않는 삶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어쩌다 보니,
음식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