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업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면서도, 나는 외식을 그리 즐기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설레는 맛집 탐방이
내게는 종종 실망 섞인 숙제처럼 끝나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만든다는 일이 타인의 입맛이라는 냉정한 기준에 평가받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남의 음식에 대해 쉽사리 '좋다'거나 '나쁘다'는 말을 얹지 않는다.
세상의 그 수많은 취향을 단 하나의 그릇에 온전히 담아내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차려내 준 정성을 받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평소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이 있었다.
그곳을 가기 위해 위치를 검색하고 출발했다.
SNS에서 극찬을 받던 그 음식점 앞에 섰을 때,
다행히 브레이크 타임이 갓 끝난 시각이었다.
나는 그날의 저녁 첫 손님이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고즈넉한 인테리어가 마음을 가라앉혔다.
화려한 장식보다는 차분한 분위기가 공간을 감싸고 있었다.
늘 쫓기던 나의 일상과는 사뭇 다른,
분주함 대신 여백이 흐르는 공간이었다.
둘이 먹기엔 조금 과하다 싶을 만큼 넉넉히 주문을 했다.
미리 챙겨 온 쿠폰으로 서비스 음식까지 더해지니
먹기도 전에 마음이 풍성해졌다.
음식을 내어주는 직원의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필요한 순간에 곁에 있는 적당한 친절,
그 자연스러운 거리가 오히려 편안했다.
테이블 중앙에서 천천히 끓어오르는 음식은
매서운 겨울바람에 굳어있던 입맛을 서서히 깨웠다.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보글거리는 소리가 가슴을 채울 때,
나는 비로소 손님으로서의 시간을 만끽했다.
그 순간 묘한 행복감이 찾아왔다.
'아, 외식의 행복이란 맛 이전에 이런 것이었구나.'
잠시 마음이 뜨거워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누군가의 밥상을 차리기 위해 동동거리며 살았다.
주문서가 꽂히는 소리에 가슴이 뛰고,
손님 앞의 그릇을 살피며 안절부절못하던 시간들.
정작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이들은 어떤 온도를 느끼고 있는지,
나는 얼마나 깊이 공감하고 있었을까.
누군가 차려준 밥상 앞에 앉아 대접받는 이 평온함이,
지친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될 수도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누군가의 밥상을 차린다는 것은 단순히 허기를 달래주는 행위를 넘어,
그 사람의 하루 전체의 온도를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기대를 품고 우리 가게의 문을 여는 손님들을
나는 그동안 어떤 표정으로 맞이해 왔던가.
내 주방의 열기가 손님에게는 따뜻한 온도로 전달되었을까,
아니면 그저 허기를 채우기에 바쁜 흔적으로만 남았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의 찬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우리 가게를 찾는 누군가가 잠시 세상의 소란을 잠시 잊고 편히 머물다 가기를.
내가 건네는 한 끼가 그들의 내일을 살아가게 할 작은 힘이 되기를.
누군가의 고단한 하루 끝에,
내가 차린 밥상이 다정한 위로가 되기를 조심스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