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달이 지나고서야 숨을 고를 틈이 생겼다.
햇볕은 유난히 맑았지만, 그런 날일수록 공기는 옷깃을 여미게 할 만큼 차가웠다.
미뤄두었던 새해 근로계약서를 정리할 겸 직원들과 일대일 면담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많은 말을 하느라 입은 바짝 메마르고 눈 밑 실경련이 거슬렸지만 면담은 멈출 수 없었다.
한 사람이 나가면 곧바로 다음 사람이 들어왔다.
명색이 대표라고, 그들은 나를 만나기 위해 물에 젖은 손을 급히 닦고 머리를 고쳐 매만진 채 방으로 들어왔다.
서둘러 단장한 흔적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났다.
나는 계약서에 적힌 조항들을 최대한 쉽게 풀어 설명하고,
혹시 힘든 일은 없는지 넌지시 물었다.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혹시 내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어려움이 있을까,
조심스레 표정을 살피며 말을 건넸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오직 ‘돈을 벌어야 한다’는 하나의 목표로 하루를 살아내는 현장이 어찌 쉽기만 하겠는가.
그럴 것이라 짐작했지만, 그들이 털어놓은 고민은
돈도, 근무 환경도, 일의 어려움도 아니었다.
오히려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유난히 웃는 얼굴이 고운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해 전,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남편이 눈을 감았다고 했다.
그날 이후 아이들은 말을 잃었고, 웃음을 잃었다고,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눈에 물기를 머금은 채 웃어 보였다.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를 내게 건네는 그녀 앞에서
나는 웃으며 들을 수 없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조금만 더 견뎌.”
나는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했다.
무슨 말이든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마음과는 달리 투박하고 무력한 말이 튀어나왔다.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의 눈가를 굳이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렸다.
삶이 누구에게나 같은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불행은 불공평해도 행복만은 모두가 고르게 누리길 바라는 마음은 부질없는 생각일 것이다.
부디 시련을 감당해 낼 용기가 그들의 힘이 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내 직원이 오롯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가슴에 걸려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
유난히 캄캄한 하늘이 마음에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