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

by woo

오늘따라 예약 장부가 한산하다.
언제나 가득 찬 예약과 줄을 서는 손님들, 쉼 없이 울리는 전화벨을 꿈꾸지만,
그것은 대개 마음속의 희망사항으로 머문다.

​​예약장부 위에 취소로 그어진 붉은 줄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못내 속상한 마음에 직원을 바라보지만,
내 시선에 담긴 무거운 마음을 알 리 없는 직원의 얼굴은 여전히 해맑기만 하다.
그 속없는 미소가 고마우면서도 야속하다.

​​​일 년 중 가장 분주한 달에도 끄떡없던 이들이
요즘 들어 하나둘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연령대가 높다 보니
감기 한 자락만 스쳐 가도 머리카락은 유난히 희끗해지고, 곱게 화장한 얼굴 뒤로 주름은 어느새 깊은 골을 만든다.

​​​우리 식당에는 칠순을 넘긴 직원들도 계신다.
몸의 시계는 노년을 가리켜도
마음만큼은 늘 앞치마를 휘날리며 현장을 누빈다.

"나이는 연륜과 비례한다"며 은근히 관록을 과시하다가도,
수돗물 잠그는 일을 잊거나 불 위의 냄비를 태워 먹을 때면 나이는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를 책망한다.
하지만 그 실수마저도 금세 잊어버린다.



​​외식업에는 정년퇴직이 없다.
일이 하고 싶고 몸이 허락한다면
언제까지고 현역일 수 있다.
이 직업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이자 위안이다.
결국 이곳에서 ‘몸’은 곧 유일한 자산이자 삶의 밑천이다.
요즘 들어 그 자산을 돌보는 일이 새삼 절박하게 다가온다.

관절염으로 마디마디가 불거진 내 손이 처량해 보여 매니큐어를 발라본다.
하지만 거칠어진 손끝 위에 올라앉은 색채는 마치 마른 나뭇가지에 색종이를 붙여놓은 듯 어색하기만 했다.
결국 반나절도 못 가 색깔이 어울리지 않음을 핑계로 흔적조차 남지 않게 지워버렸다.

​​피로가 쌓이면 몸은 어김없이 찌그덕거리며 신호를 보낸다.
계절의 변화조차 몸이 먼저 알아채고 비명을 지른다.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외면할 길이 없다. 누군가는 정년퇴직으로 안정적인 삶을 부러워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정년 없는 이 일의 연속성을 부러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길을 오래 걷기 위해서는 꾸준하게 관리해야 한다.
닳아가는 나의 자산을 정성껏 돌보고 보살피는 일,
그것이 일과 함께 늙어가는 가장 최선의 방법임을 안다.

​며칠 전부터 기침이 끊이질 않는다.
오늘 아침 책상에 놓인 생강청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이 손수 만들었다고 한다.

조그마한 병 속에 생강차는 꿀을 넣었는지 맑고 투명하다.
뜨겁게 우려낸 차 한 잔에서 행복을 걸러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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