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by woo

예전 지하철 광고 속 사진 한 장이 문득 떠오른다.
얼굴은 제각각이었지만, 노년의 여성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뽀글뽀글한 짧은 파마머리를 하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세상사에는 더는 관심 없다는 듯한 표정,
그리고 어떤 유행도 따라 하지 않겠다는 듯한 고집스러운 헤어스타일이
광고 문구보다 훨씬 강렬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이제 내가 딱 그 나이가 되었다.
인상을 쓰지 않아도 제 자리를 잡은 주름들은
손으로 당겨 펴지 않으면 늘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얼굴을 만든다.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당겨 보지만 팽팽함은 잠시일 뿐,
금세 제자리로 돌아간다.

언제부터 그 자리가 ‘제자리’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나도 모르는 사이 아주 천천히 조금씩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 광고 속 여성들처럼 나 역시 어느 순간 유행과는 멀어진 채
세상사에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매장은 점심시간이면 어김없이 대기가 생긴다.
정해진 시간 안에 식사를 마쳐야 하는 손님들은
길지 않은 대기 시간이 유난히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고객마다 각각의 사정이 절실하다.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온 손님,

비행기 시간에 쫓기는 이,
만삭의 임산부와

배고픔에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까지

그 사정들을 하나하나 듣고 조율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모두를 만족시키려 애쓰다 유난히 지치는 날이면,
각자의 입장만을 앞세우는 손님들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목발을 짚고 있어 서있기도 힘든 손님을 먼저 모시느라

순번이 바뀐 것을 눈치챈 한 손님이
오히려 큰 소리로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인사를 건넨다.

“이 집은 올 때마다 줄을 서야 하는 맛집이네요.”

우아한 목소리 고운 얼굴을 한 내 또래의 중년 여성이었다.
유행과는 거리가 먼 뽀글뽀글한 파마가
오히려 그녀의 다정해 보이는 얼굴을 더 빛나게 하고 있었다.

​​지쳐서 무심하게 응대하던 나는 이상하게도
그녀에게서 생기를 나눠 받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 좋은 날이신가 봐요. 자리 나는 대로 금방 모시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환한 얼굴과 달뜬 목소리로 화답했다.

​​나이를 먹는 일은 내가 조절할 수 없지만, 나이 드는 태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향을 싼 종이에는 향내가 밴다고 했던가.
그녀의 머리 위에 얹힌 것은 투박한 파마였지만,

그 안에서 풍기는 것은 깊은 향기였다.
깊은 향기를 지친 이에게 나눌 수 있는 여유,
그것은 세월의 무심함을 털어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타인에 대한 배려였을 것이다.

​나는 다시 거울을 들여다본다.
세월이 제대로 자리 잡은 주름을 살펴본다.
나이는 속일 수 없어도,
주름 사이로 번지는 향이 더 진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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