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한때
유난히 인기를 끌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다.
초능력을 소개한다는 그 방송은
어린 나에게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발로 밟아도 끄떡없을 것 같은 양식 스푼이
손가락 하나에 힘없이 휘어지는 장면을 보며,
나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손을 대지 않고 물건을 움직이는 능력은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밥상 저편에 놓인 반찬을 눈빛만으로 내 앞으로 끌어오는 시시한 상상에서부터,
엄마 지갑 속 동전을 내 주머니로 옮기는 발칙한 상상까지.
초능력은 어린아이의 머릿속에서 끝없는 상상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혹시 나에게도 초능력이 있을지 모른다는 허황된 기대를 했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숟가락을 구부려보기로 했다.
초보 초능력자라 두꺼운 숟가락보다는 얇은 젓가락을 선택했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에도 초능력은 한 번도 발휘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그것이 초능력이 아니라
고도의 트릭을 활용한 마술이라는 기사를 접했다.
이유 모를 허전함이 마음에 남았다.
속았다는 배신감보다는,
진지하고도 흥미로웠던 상상의 시간이
한순간에 접혀버린 듯한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 들어 문득 다시 초능력을 떠올린다.
이번에는 물건을 움직이는 능력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이다.
마음을 읽기만 한다면
매일같이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지 않을까.
입은 꾹 다물고 있지만
눈빛에서 쏟아지는 불만을 미리 읽을 수 있다면,
나보다 앞선 생각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낼 수 있다면,
마트의 판매자는 언제쯤 세일을 외칠 계획인지 미리 느낄 수 있다면
그야말로 꼭 필요한 초능력일 것이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고들 한다.
사람의 마음은 깊고도 깊다.
깊기만 해도 들여다보기 어려운데,
흔들리기까지 하니 헤아릴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진심이라는 끈이 있다.
진심을 두레박처럼 엮어
깊고 깊은 우물 속으로 천천히 내려보내다 보면,
언젠가는 물이 있다는 사실 쯤은 알게 되지 않을까.
두레박으로 길어 올릴 수 있을 만큼 물이 차오른다면,
그 물로 메마른 마음의 갈증을
조금은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잠시 부질없는 생각을 한다.
두레박이 흔들려
힘들게 길은 물이 쏟아진다면
더 조심히, 다시 내려볼 것이다.
빈 두레박으로 올라온 적도 많다.
깨진 두레박일 때에는 마음도 같이 깨졌다.
그럼에도 다시 줄을 점검하는 건,
그래도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상상의 끝자락에서,
전보다 조용하고 현실적인 상상을 다시 펼친다.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이 있을 리 없지만,
진심을 믿어 보려는 마음만은 아직 남아 있다.
오늘도 두레박에 묶인 줄을 점검하고
얼마큼 내려가야 할지 가늠하며
긴 숨을 들이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