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부터 무엇이든 ‘키우는 일’을 좋아했다.
작은 것일수록 더 마음이 쓰이고,
손길이 필요한 존재일수록 마음이 쓰였다.
강아지 세 마리가 집안을 돌아다니고,
카운터 직원에게서 얻은 물고기들은 작은 어항 속에서
오래전부터 살아왔던 것처럼 자리를 잡았다.
화초들은 계절이 바뀌어 낙엽을 떨구어내면서도
내 손길 아래에서 여전히 살아내고,
언젠가는 아침이면 지저귀는 새소리로 아침잠을 깨우는 상상을 하며 새도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식구들이 좋아할까 싶기도 하고
혹시라도 알러지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어
새를 들이는 일은 늘 아쉬운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누군가를 키우고 돌보는 마음은
언제나 깊은 고민도 함께 만든다.
사랑은 언제나 선택과 조심 사이를 오간다.
요즘은 날이 추워
마당 대신 실내에서 식물을 키운다.
햇빛이 조금만 스쳐도 잎사귀에서 생기가 돋고,
물을 주면 다시 살아나듯 고개를 든다.
어느 날 잎 하나가 떨어지면
무엇이 불편할까 무엇이 필요할까 살펴본다.
키운다는 일은 늘 고단하다.
먹이를 챙기고, 물을 갈고, 흙을 다듬고,
때로는 아픈 존재를 붙잡고 가슴이 저려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왜 이렇게까지
많은 것을 키우고 싶어 하는 걸까?
그것들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들,
내 손길이 닿아야 생기를 찾는 모습들,
그 고요하고 충만한 순간들이
내 마음 깊은 곳의 외로움과 피로를
조용히 덮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키우는 일도 결국 같은 결을 지니고 있다.
나는 직원들을 보살피고, 직원들은 또 나를 보살핀다.
손님 한 명 한 명도 잠시지만 내 공간 안에서
한 끼 식사와 편안함을 받아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내 가게를 찾은 손님들이 한 끼 식사를 하며
삶의 고단함을 덜어내고,
순간의 행복이 그들의 추억 한 칸에 남아주길 바란다.
나는 식당 주인에 불과하지만,
고객의 일상 속 작은 한순간을 잠시 맡아 보살피는 사람이고 싶다.
생명을 키우는 일과 사람을 맞이하는 일은
언뜻 보면 전혀 다른 세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닮아 있다.
모두 정성이 필요하고 관심이 필요하고
그 순간을 오래 간직하게 하는 애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키우는 일이란
결국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강아지의 해맑은 눈빛에서 내 마음이 씻겨 내려가고,
화초의 새 잎에서 내일을 살아갈 작은 의지가 돋아난다.
손님이 잘 먹었습니다라는 한마디에서
내 일의 의미가 다시 살아난다.
나는 많은 것들을 키우고 있지만
돌아보면 그 모든 것들이 나를 키우고 있었다.
키운다는 일을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나 역시 누군가로부터 ‘키워지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보살핌이 필요한 주위를 살핀다.
강아지도, 물고기도, 화초도, 손님도,
그리고 하루하루를 늘 함께하는 내 직원들도
그들이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또 하루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