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휴가

by woo

매장 일에 매여 휴가다운 휴가 한 번 보내지 못했다.

여러 날을 고민하다 아들 내외와 손자, 딸까지

휴가를 겸해서 이틀 전 제주도로 여행을 보냈다.

이 가고 싶었지만 다 큰 아이들 뒤치다꺼리도 일이지 싶기도 하고,

남편이 둘이 보내는 시간도 나름의 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뜻밖에 찾아온 고요가 내게도 휴식의 달콤함을 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식구들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뒤 맞이한 집 안의 정적은 생각과 다르게 낯설었다.


​아침이면 집안을 깨우던 손자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거실에는 먼지조차 미동이 없다.

칭얼대다가도 식구들 얼굴만 보면 세상 무해한 웃음으로 이쁜 짓을 하는 손자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휴대폰을 켜고, 시시때때로 날아오는 카톡 사진 속 손자의 얼굴을 하릴없이 들여다본다.


​이미 떠나고 없다는 걸 알면서도 딸아이의 방문을 슬쩍 열어본다.

급히 짐을 꾸려 나간 흔적들이 방 안 곳곳에 남아 있다.

방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를 주워 옷걸이에 조심히 걸었다.

듣는 이 없는 잔소리를 혼자서 한다.

옷에서 딸아이의 달큰한 냄새가 났다.


​불 꺼진 주방의 스위치를 켰다.

일어나자마자 가족들 아침을 차리느라

쌀부터 씻어 앉히던 며느리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밥솥을 열어보니, 이틀 전 지어둔 밥이 그대로 굳어 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는 말이 이토록 사무칠 줄이야.

당연하게 받아먹던 아침 한 끼가 사실은

며느리의 지극한 정성과 총총거린 부지런함이었음을,

혼자 남겨진 뒤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오늘은 식구들이 돌아오는 날이다.

밤새 이런저런 생각에 뒤척이다 잠을 설쳤다.

두터운 점퍼를 챙겨 가지 않은 아들이 계속 신경에 거슬렸지만 제주도까지 가져다줄 방법은 없었다.

다행히 사는 곳만큼 춥지 않다고 했다.

제 자식을 낳았어도 부모 말은 여전히 안 듣는 아들이다.


아이들이 돌아온다는 기대에 이른 아침부터 몸을 움직였다.

식구들 없음을 아는지 유난히 짖어대는 강아지들 방을 스팀청소기로 밀고, 가족들의 손때가 묻은 냉장고 문을 닦아냈다.

뽀드득 소리가 날 만큼 문지르다 보니, 허전함도 같이 씻겨 내려갔다


​빨래를 돌려놓고 커피 한 잔을 내려 빈 거실에 앉았다.

창밖은 며칠째 이어진 강추위로 얼어붙어 있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을 창밖 고요함이 오늘은 유난히 적막하다.

겨울추위에 잎 하나 없는 가지가 왠지 처량해 보였다

이번 추위가 막바지 추위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일 없이 틀어 놓은 tv소리만 허공을 맴돌다 사라진다.


​비어 있던 밥솥을 씻고 쌀을 안쳤다.

김치찌개를 끓여 주려고 돼지고기를 꺼내 물속에 담갔다.

달달하면서 촉촉한 군고구마의 속살을 좋아하는 손자를 위해 고구마를 꺼냈다.

고구마 굽는 냄새가 허전한 공간을 따듯하게 채운다.


​도착하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는데 자꾸 문을 돌아보았다.

곧 제주도의 바람을 묻히고 돌아올 식구들의 목소리가

집 안을 다시 채울 기대를 하며 마음이 내심 설렜다.

그들이 몰고 올 온기와 제주도의 거친 바람을 상상하며,

나는 비로소 가장 짧고도 긴 휴식을 마칠 준비를 한다.

그들을 기다리며 삼일 동안의 고요함을 아쉬워한다.


아마도,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다음번의 고요한 휴가를 꿈꾸며 날짜를 세어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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