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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

영화 <로제타> Review

by 겨울아희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다르덴 형제의 작품인 걸 알았다. 평소에 볼 영화를 고를 때 포스터의 분위기와 간략한 줄거리만 읽고 선택하기 때문에 감독이 누군지, 어떤 배우가 출연하는지는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

이 영화는 영화를 보는 것보단 마치 인간극장을 보는 것처럼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는 느낌이다. 이 영화를 장거리 이동할 때 폰으로 봤었는데, 옆에 이모가 앉아있었다. 이모도 시간 죽이기용으로 평소에 보는 드라마를 보다가 다 끝나자 내가 보고 있는 영상에 관심을 가졌다. 고속버스 안이라 에어팟을 끼고 봤는데, 자막이 나오는 장면이 아니면 이모는 영화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알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좀 보더니 바로 다큐멘터리냐고 물었던 소소한 일이 있었다.


한 번쯤은 나올법한 파란 하늘도 없다. 항상 안개 낀 새벽 시간대의 풍경을 보는 것처럼 늘 뿌옇다. 컬러영화인 걸 알면서도 무채색 영화로 느껴진다. 영화는 물에 적셔진 솜처럼 무겁게 다가온다. 다큐멘터리보다도 더 사실적인 느낌이 가상의 세상이 아니라 현실 같아서 수만 가지 감정이 떠오른다. 실제로 그 당시 벨기에 시대상을 담아 만든 영화이고,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쳐 ‘로제타 플랜’이라는 이름으로 저학력 청년층에 일자리와 훈련의 기회를 주는 청년실업대책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프닝




오프닝 장면에서부터 앞으로 영화에서 보여줄 로제타의 삶이 어떤 지를 간략하게 알 수 있다. 공장에서 일을 하던 로제타는 수습 기간이 끝나자마자 사장으로부터 쫓겨났다. 일말의 자비도 없이 내쳐진 로제타는 사장에게 화를 내고 쫓고 쫓기는 상황이 연출되며 온몸으로 해고를 거부한다.


처음엔 로제타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고집이 세고, 억척스럽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수습 기간이 끝나고 해고시킨 것이기 때문에 사장의 결정이 결코 부당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하고 코뿔소처럼 마구 들이박기만 하는 로제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장면들부터 앞에 봐온 로제타의 행동을 납득시키는 상황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고작 18살밖에 되지 않는 로제타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게 되는 순간, 물속에 빠진 것처럼 숨이 막힌다. 보기만 해도 숨 막히는 현실이 로제타에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모부들의 역할



20대의 중, 후반이 된 내가 느끼기에 적어도 20대 초반까지는 마냥 어린 존재다. 더군다나 이제 갓 미성년과 성인의 문턱 사이에 있는 18살의 로제타가 이런 삶을 겪기엔 너무도 이르다.


하지만 로제타는 어떻게든 견뎌내려 했고, 살 길을 모색하려 악착같이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다. 영화에서 나오진 않았지만 하루, 이틀 이어져 온 상황들은 아닐 것이다. 로제타가 어렸을 때부터 이랬을 거라고 예상된다.


아버지란 사람은 어디 갔는지 이름조차 언급이 안 되고, 어머니란 사람은 술에 빠져 로제타가 겨우 일자리를 구해서 집세를 내기 위해 벌어온 돈까지 본인 술값에 쓰려했다. 정상적인 어른들이 그의 곁에는 없다. 좋든 싫든 태어났으니 숨 쉬며 살아가야 했고, 로제타가 움직이지 않으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마저 이어가기 힘들었다.


*


로제타는 끊임없이 평범한 삶을 꿈꿨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도 엄마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엄마를 제 마음대로 취급하는 남성들에게 트레일러촌의 한가운데에서 ‘엄마는 창녀가 아니다’라고 외칠 때도, 치료센터에 가서 알코올 중독을 낫고 오자는 회유도, 그리고 지금까지 어찌 됐든 살아있는 것도 결국엔 로제타가 엄마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둘이 지지고 볶고 늘 싸워도 함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몹들이 로제타를 잘 보살피고 사랑을 주었다고 해도, 끝까지 제대로 책임지지 않았다는 건 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생명은 선택할 새도 없이 덜컥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어른들의 무능력에 오히려 가장이 되어 엄마를 먹여 살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엄마에게 모진 말로 아무리 뭐라고 해도 그는 전혀 바뀌지 않고, 사는 데 도움이 안 되는 일만 벌여 본인을 귀찮게 한다.


엄마도 계속 무능력하게 있진 않는다. 누군가가 로제타를 공격하니까 본인 나름대로 로제타를 지켜주고, 트레일러 주변에 식물을 심는 등 어떤 일을 하면서 움직이고, 엄마답게 혹은 어른답게 행동을 하려 한다. 간혹 엄마가 노력하는데 엄마에게 면박 주고 무시하는 로제타로 인해 엄마의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가장은 10대인 로제타다. 로제타가 돈 벌지 않으면 바람 하나 막지 못하는 그 트레일러에서조차 두 모녀가 살 수가 없다.


집세를 돈으로 내는 대신 관리인에게 성을 판다? 이건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로제타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리케가 어떻게 알았는지 오토바이를 타고 트레일러촌에 마음대로 침입해도 막는 이 하나 없다. 이렇게 치안이 안 좋은 곳에서 엄마가 하는 행동은 본인뿐만 아니라 같은 여성인 로제타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한다.


모녀는 잠깐 떨어지게 된다. 이 일로 인해 로제타는 큰 트라우마를 갖게 된 거 같아 괜히 걱정이 되었다. 엄마에게 치료 센터에 가자고 했지만 엄마는 본인의 신분증을 미리 숨겨놓고,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도망치려 했다. 로제타는 계속 뒤쫓아가서 엄마를 붙잡았다. 치료하고 나오면 재봉틀을 사주겠다며 어린아이를 달래듯 조곤조곤하게 타일러 봤지만, 엄마는 로제타의 제안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엄마는 다시 도망가려 했고, 엄마를 붙잡으려는 로제타와 로제타에게서 벗어나려는 엄마의 다툼은 잠시간 이어지다가 로제타가 물에 빠지면서 끝이 났다. 물 쪽으로 로제타를 밀쳐버린 엄마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바로 냅다 뛰어갔다. 바닥이 진흙이라 빠져나오기 힘들었던 로제타는 애타게 엄마를 부르며 도와달라고 외쳤지만, 엄마는 점점 더 멀어져 갈 뿐이었다. 겨우 헤엄쳐서 나와 엄마를 찾아다녔으나,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로제타와 엄마는 잠시 혼자가 되었다.



평범한 삶과 현실의 시궁창



위의 사진이 그나마 이 영화에서 잠깐 밝은 분위기가 형성되는 장면이다. 엄마를 그렇게 떠나보내고 트레일러로 돌아가는 대신 거부했던 리케의 초대에 응했다. 밝다고 해서 마음 놓고 편하게 볼 순 없었다. 앞, 뒤 서사를 모른 채로 이 장면만 보면 리케의 추파에 로제타가 단호하게 철벽 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단순한 의미로 끝나지 않는다.


리케가 어떤 생각으로 물어봤든 로제타는 정말 본인만의 취향이 없었다. 마음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도, 시간도, 돈도 없었으며, 집세 낼 돈이라도 주머니에 있고 배라도 채우면 그나마 다행이었으니까. 로제타에게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했고, 그 외의 일에 관심 가질 만한 여유는 전혀 없던 것이다.


이후에 리케가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요즘 드럼을 연습하고 있다면서 녹음한 것을 들려줬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엉망진창인 드럼 소리에 보통 사람이면 빈말로 칭찬을 해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직 연습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는 등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안절부절못하는 리케와 달리 무심한 표정으로 토스트만 먹는 로제타에게선 어떤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눈치만 보던 리케가 로제타에게 지루하면 끄겠다는 말을 하니 그제야 아냐라는 간결한 대답만 해줄 뿐이었다. 밴드와 합주한 노랫소리가 흐르자 리케가 로제타에게 춤을 추자고 제안했다. 음악조차 들을 시간이 없던 로제타에겐 춤추는 일 또한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다.


계속 거부하지만 결국, 마리오네트 인형이 된 것처럼 리케의 손에 의해 춤 아닌 춤을 추게 되었다. 본인의 의사로 움직였다기보다는 거의 리케가 조종하는 대로 춤을 춘 거지만, 로제타의 얼굴에선 아이 같은 웃음이 미미하게 번졌다.


그 분위기도 잠시 로제타가 갑작스러운 복통을 호소하며 황급히 집을 나갔다. 장화를 두고 갔다는 핑계를 대며 로제타는 다시 리케의 집으로 돌아왔고, 트레일러로 가기 싫다고 말을 꺼냈다. 결국, 리케의 집에서 하룻밤을 신세 지게 되었다. 리케가 챙겨준 이부자리에 누워 홀로 주문처럼 중얼거리는 독백이 콕콕 머릿속에 박힌다.



네 이름은 로제타, 내 이름은 로제타


넌 일자리가 생겼어, 난 일자리가 생겼어


넌 친구도 생겼어, 난 친구도 생겼어


넌 평범한 삶을 산다, 난 평범한 삶을 산다


넌 구덩이에 빠지지 않을 거야, 난 구덩이에 빠지지 않을 거야


잘 자

출처- ‘로제타’에 나오는 대사



영화 속에 나온 일상 중에 가장 로제타가 행복해 보였던 순간이었다. 리케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고, 함께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하는 친구도 생겼다. 너무 평범해서 우리한테는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로제타한테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꿈꾸는 계기가 되었을 거라 예상된다.


평범한 삶과 구덩이, 로제타가 간절히 원한 것과 벗어나고 싶은 현실을 빗대어 표현한 대사라고 생각한다. 로제타는 비록 엄마는 떠났지만, 일자리를 구하고 소소한 일들을 경험하며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인생은 참으로 불공평하다. 정말 신은 있긴 한 걸까, 로제타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아 사장의 아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면서 그 생기를 잃어버렸다.


그 당시 벨기에는 취직이 하늘의 별 따기였다. 현 대한민국 또한, 나날이 늘어가는 청년 실업률에 로제타의 절망감을 느낀 이들이 많을 거라 예상된다. 현재 백수이자 취준생 신분인 나 역시, 로제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여기에는 취직되겠거니 하고 막상 뛰어들면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고스펙을 가진 경쟁자들을 보면서 깊은 무력감에 빠진 이들을 꽤 많았다.


‘N포 세대’라는 말은 실제였다. 평균에 속아 만들어진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의 벽이 높아서 포기하지 않으면 먹고사는 것조차 버거웠다. 나도 졸업한 지 1년이 되어가기에 슬슬 취업 준비를 해야 하지만, 시작하기도 전에 스트레스가 최대치를 찍는다. 제3자의 시각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세계는 잉여가 될까 노심초사하며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 젊은 청춘들이 흘린 피, 땀, 눈물 그 자체라 안타깝기도 하고, 이런 세상이 공포스럽기도 했다.


*


로제타는 유일한 친구마저 일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에 사장에게 리케의 부당한 행동을 고발하면서 그 자리에 들어갔다. 이 일 전에 리케가 로제타를 도와주다가 물에 빠졌는데 로제타는 리케를 바로 구해주지 않았다. 그의 죽음으로 생긴 공석에 본인이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로제타를 흔들었지만, 돈에 눈먼 욕망보단 도덕심이 더 컸던 로제타는 그를 구해줬다.


하지만, 혼자가 되더라도 돈이 더 급했기 때문에 리케의 자리를 억지로 빼앗아 차지했다. 이 부분에서도 리케가 심하게 해코지할까 봐 노심초사했다. 내가 한국에서는 로제타처럼 행동할 수가 없다. 일을 저지르고 나서도 염산 테러하진 않을까, 칼 들고 찾아오진 않을까 온갖 생각 다 했을 것 같다.


리케도 순순하게 물러나진 않았다, 계속 로제타의 주변을 맴돌며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괜히 와플 사 먹는 척 와서 로제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리케가 로제타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예고 없이 폭로해버렸기에 배신감이 들 수는 있다. 결국 해선 안 될 짓을 해서 약점을 내 보인 건 본인 탓이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물불 안 가리는 로제타에겐 그의 약점은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이다.




‘로제타’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단연코 눈에 띄는 건 로제타의 전투적인 모습이기에 속에 담아두기보다는 솔직하게 다 뱉는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로제타를 섬세하게 관찰하면 그는 평범한 삶에 방해가 되는 요소에만 감정적이다. 술값을 벌려고 몸을 파는 엄마와 수습 시간이 끝났다고 바로 해고시키는 공장 사장과 상의도 없이 자르고는 나중에 일자리 생기면 연락 준다는 와플 가게 사장 등 화를 내는 대상이 정해져 있다. 특수상황을 제외하고 로제타의 감정선은 그다지 풍부하지 않다. 평소엔 말수가 적고, 표정도 없다.


한창 롤러코스터처럼 극과 극의 감정으로 웃고 울 로제타의 나이 대에서 이런 모습은 그가 끊임없이 인내했다는 뜻이다. 울고 싶을 땐 약해지지 않기 위해 눈물을 삼켰고, 지옥 같은 집과 친구도 없이 홀로 지냈을 로제타에겐 웃을 상황조차 없었을 것이다. 리케와 춤출 때 슬쩍 내 비친 미소는 어색했고, 크게 박장대소하지도 않았다. 살기가 힘드니 여러 감정에 휘둘리는 것 또한 벅찬 일이다. 그렇기에 필요한 감정 빼곤 모두 숨겼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대단한 점은 내가 로제타라면 바로 내가 먼저 엄마를 버리고 어디 먼 곳으로 도망쳤을 것 같다. 로제타가 그리는 평범한 삶에 본인만 있는 게 아니라 엄마도 함께 포함했다는 게 로제타가 지독한 외로움에 그런 엄마더라도 끊어낼 수 없었던 건지, 아니면 엄마니까 그랬던 건지 속마음이 궁금하다. 로제타가 떠나면 그의 엄마가 어떻게 될지 뻔히 아니까 리케를 구한 양심이 로제타를 살인자로 만들지 않은 것처럼 그런 죄책감과 속박이 로제타를 트레일러촌에 묶어두진 않았을까.



엔딩



엔딩에서 로제타의 선택은 비극적이지만, 우울한 음악을 깔거나 극대화된 감정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억지로 슬프게 만들지 않는다. 어느 날, 엄마가 돌아왔다. 여전히 술에 취해 집에도 못 들어가고 너부러져 있었다. 리케를 밀어내고 차지한 일자리는 마음이 편치 않았고, 엄마는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다. 갑갑함이 족쇄처럼 목을 졸랐고,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유도 못 찾겠다.


죽음을 준비하는 로제타의 모습은 아침에서 일어나서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큰 감정의 기복도 없이 평안하게 진행된다. 와플 가게에 전화해서 더 이상 나가지 못한다고 연락을 한 뒤, 마지막 만찬을 즐기듯 삶은 계란 하나를 먹으면서 담담하게 행동한다.


그러나 가난이란 그림자는 죽는 것조차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죽음에도 비용을 내라는 듯 어이없게 가스마저 다 떨어졌다. 로제타는 빈 가스통을 들고, 관리인에게 찾아가 돈을 내고 새 가스통을 구매했다. 여기에서도 그 어린 소녀를 바라보는 냉정한 어른들의 세상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보통 누군가 무거운 걸 들고 가면 호의를 베푸는 게 인정인데, 관리인은 무표정하게 돈만 받을 뿐이었다.

로제타의 세상에선 정상이 없어서 갑작스러운 호의보단 무관심한 게 나을 것 같긴 하다만.


로제타는 한 발, 한 발 힘겹게 가스통을 들고 갔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익숙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리케였다. 멀게 들려오던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잔뜩 날이 선 리케는 계속 오토바이로 로제타를 위협했다. 애써 무시하면서 걷던 로제타는 결국 가스통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졌다.


내내 잘 참아내던 로제타는 영화에서 나오는 것 중 가장 약한 모습으로 펑펑 울었다. 리케가 로제타를 일으켜주고 우는 로제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다르덴의 영화는 결코 로제타에게 희망의 빛을 선물해주지 않았다. 로제타가 다시 자살을 택할지, 리케의 도움으로 시궁창을 벗어날지, 지금껏 그랬듯 스스로 견뎌낼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이번 영화에서 아쉬운 점은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그동안 세상을 헤쳐온 로제타의 능동성을 마지막에 남성 캐릭터에게 의지했을 거라는 예상을 낳으면서 수동성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이제껏 로제타는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냈다. 아빠라는 존재 없이도, 성인 남성의 도움 없이도 적든 많든 돈을 벌었고 최소한의 생활까지는 이어지게 만들었다. 힘든 내색도 없이 무거운 포대자루도 번뜩번뜩 들었고, 먹을 게 없으면 숭어 낚시라도 해서 배를 채웠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여지를 두기보다 오히려 로제타의 생활력에 조금만 힘을 실어줬다면 큰돈은 못 벌어도 나름대로 그려본 평범한 삶까지는 따라갔을 것이다. 물론 엔딩에서 리케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생활고 끝에 일가족이 자살한 뉴스가 보도되는 것처럼 로제타와 엄마도 그런 식으로 세상과 작별했을 거란 사실이다. 영화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 지었다. 그러므로, 리케가 도와줬을 거란 보장도 로제타가 또다시 자살시도를 하지 않았을 거란 보장도 없다.


정말 미우면 보기 싫어지기 마련인데, 리케는 굳이 굳이 로제타를 계속 따라다닌다. 결국 로제타와의 우정이든, 사랑이든 긍정의 감정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로제타에게 서슴없이 돈을 빌려주겠다 했던 리케이기에 더더욱 약한 모습을 봤으니 도움의 손길을 줬을 거라 예상한 것이다. 아무리 손을 내민다고 해도 어떤 선택을 할지는 크레디트 너머로의 로제타가 고민해야 한다.


로제타 플랜이라는 이름으로 정책이 생길 정도로 그 당시 시대에 대한 사실성을 그리는 영화이기에 로제타가 벼랑 끝까지 몰려야 했지만, 다음에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악착같이 이겨내서 잠깐 보여준 미소가 매일매일 이어졌으면 한다.


그리고 20년 전과 다를 바 없이 지금의 시대에도 현실의 높은 문턱을 체감하고 쉽게 무기력해지고, 비관적인 생각을 가진 청년들이 많다. 같은 취준생으로서 나날이 깊어지는 고민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내려줄 순 없다. 늘 취업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고 스스로부터 본인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기는데, 모든 화살을 본인에게 돌린다. 그간의 노력을 무시하지도 말고, 부디 너무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해당 리뷰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동시 게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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