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

클레이키건 '맡겨진 소녀'

by 은예진


1981년 아일랜드 남동부 렌스터주에 있는 오래된 항구도시 웩스퍼드 깊숙이 차가 한대 달려간다. 댄은 아내 메리가 다섯 번째 아이를 출산하게 되자 네 명의 아이중 셋째인 소녀를 당분간 아내의 친척집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소녀는 불안과 기대에 차서 아빠의 차 뒷좌석에 누워 있었다. 아침에 엄마가 묶어준 머리를 다 풀어헤친 채. 아빠가 빨간 쇼트혼 암소를 포티파이브 카드 게임으로 잃어버렸던 실레일리 마을을 내다본다.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건초를 다 모으지도 못했으면서 너무 많이 해서 창고가 꽉 찼다고 거짓말을 하고 소녀의 옷가지가 든 가방조차 차에서 내리지 않고 떠나버리는 사람. 일꾼들의 작년 품삯을 올해 겨우 갚는 바람에 아직 건초도 수확하지 못하는 사람.


소녀를 맡은 킨셀라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아이들 양육과 한심한 남편에게 지친 엄마와는 전혀 달랐다. 소녀를 깨끗하게 씻기고 예쁜 원피스를 사주고 일 파운드를 쥐어주며 군것질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킨셀라 아저씨는 홀스타인 젖소를 키우며 젖을 짜고, 아주머니는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내며 여유 있고 평화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소녀에게 보여주는 애정은 난생처음 보살핌이라는 것을 제대로 받아보는 아이를 어리둥절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너무 좋아서 금방 깨버릴 꿈을 꾸는 것처럼 조마조마한 소녀의 마음이 전해지며 나도 이 아이가 그곳에서 살면 안 되는 걸까? 비록 나이 든 부부라고 하지만 '빨간 머리 앤'의 커스버트 남매처럼 소녀 하나쯤 품어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맡겨진 소녀'는 '빨간 머리 앤'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니 작가 클레어키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소녀는 마을의 장례식장에서 킨셀라 부부의 슬픈 과거에 대해서 듣게 된다. 그리고 아저씨는 그런 말을 함부로 아이에게 한 사람에 대해 '입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다'라고 말한다.


소녀는 킨셀라 아저씨의 그 말을 새겨들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는 엄마의 말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한다. 비록 엄마가 묻는 말이지만 소녀는 절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충분히 배웠고 충분히 자랐다고 생각한다.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라고 말이다.


클레어키건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슴속에 품을 줄 아는 게 성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맡겨진 소녀'는 모든 것을 절제하고 설명하지 않는다. 마지막 한 줄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소녀가 부르는 그 아빠가 킨셀라인지 아니면 아빠 댄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저 느낄 뿐이다.


단행본이기는 하지만 좀 긴 단편이라고 표현한 작가의 말이 맞아서 한 권을 읽는데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며 바닐라 라떼를 한 잔 마시는 동안 모두 읽어버렸다. 검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책장을 덮으며 아쉬움이 남았다.


살면서 입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친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나이 들면서 노력은 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소녀는 킨셀라 부부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입 다무는 법을 배웠다. 아프고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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