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오빠라고 불러

by 은예진

메뉴는 서리태 밥에 해물 순두부, 들기름 묵은지찜, 영양부추 한치 구이, 호두 장조림, 브로콜리 게살 무침으로 결정했다. 눈썰미가 좋아서 남의 부엌에서 재료를 찾아내는 것도 단숨에 해치웠다. 더군다나 손이 빨라서 한꺼번에 두 개씩 뚝딱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았다.


차를 주차시키고 좀 늦게 들어온 민석은 서아가 음식 만드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서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칼질을 하며 외쳤다.


“강우혁 씨가 밥을 해 달래요. 책을 주기는 줄 거지만 공짜로 줄 수 없다나요. 장 대표님도 같이 드세요. 밥 거의 다 됐습니다.”

슬금슬금 서아 곁으로 다가온 민석은 코를 킁킁거렸다.


“냄새가 환상적인데요.”


서아가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민석을 향해 싱긋 웃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음식을 해 버릇해서 좀 잘해요. 음식 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음식보다 디저트 만드는 걸 더 좋아해요.”


“아까 그 알라메종에서 파티시에로 일하시는 겁니까?”


“헤헤, 파티시에라고 하기는 좀 부끄러워요.”


서아가 격자무늬를 내서 데친 한치를 프라이팬에 구우면서 대답했다.


“르 꼬르동 블루 출신 유명 파티시에 보조로 일하고 있어요. 저도 처음에 그 일을 시작할 때는 지금쯤 파리에서 공부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서아가 자기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쉬었다.


“까짓 가면 되지요. 못할게 뭐 있어요.”

“그렇지요. 남들은 다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그런데 거기 학비가 생각보다 비싸요. 더군다나 파리 물가 아시잖아요.”


한치가 구워진 정도가 마음에 드는지 서아가 생긋 웃었다.


“색깔이 죽이는데요.”

“드셔보실래요?”


서아가 젓가락으로 돌돌 말린 한치 한 조각을 들어 입으로 호호 불었다. 당황한 민석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받아먹어도 되는 건가요?”

“그럼요.”


젓가락을 든 손을 올리며 웃는 서아의 눈이 반달처럼 곱게 휘었다. 민석은 입을 벌리면서 반달눈의 가장자리로 시선이 가는 걸 막지 못했다.


“뭐야, 두 사람 지금 내 주방에서 소꿉놀이하나?”


우혁이 팔짱을 끼고 서서 심술궂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민석은 마치 엄마 지갑에 손대다 들킨 아이처럼 허둥거리며 어쩔 줄을 몰랐다. 서아는 그런 민석을 보며 대표가 소속사 연예인 눈치를 어지간히 본다고 생각했다.


“밥 다 됐으니까 강우혁 씨는 숟가락이라도 놓으시지요?”


우혁은 잠시 고민하는 눈치 더니 성큼 주방으로 들어와 숟가락 받침대를 꺼내 놓고 유기 수저세트를 올려놓았다.


제일 먼저 들기름으로 볶은 묵은지가 올라왔다.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코를 자극하며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우혁과 민석은 성급하게 젓가락을 들며 묵은지 사이에 끼어 있는 멸치를 집어 올렸다.


“멸치가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보는데요.”


민석이 서아를 향해 칭찬 세례를 퍼붓는 사이 우혁은 참지 못하고 밥을 푸러 일어섰다. 서아는 밥공기를 그에게 밀어주고 해물 순두부를 떠서 식탁으로 옮겼다.


잘 먹겠다는 인사를 동시에 하며 세 사람이 숟가락을 들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우혁과 민석은 밥을 처음 먹어보는 사람처럼 허겁지겁 한 그릇을 다 먹고 두 그릇째 퍼 담았다.


“연예인들은 닭 가슴살만 먹고사는 줄 알았는데 밥도 잘 먹나 봐요?”


“닭 가슴살만 먹고 살 때가 많이 있지요. 하지만 요즘은 일이 없어서 굳이 그렇게까지 안 먹어도 돼요.”


민석이 일이 없다고 하자 우혁이 발끈했다.


“일이 없는 게 아니고 쉬는 거지.”

“응? 그렇지. 맞아. 일이 없는 게 아니고 안 하는 겁니다.”


“아, 네에에.”


“너, 반응이 좀 이상하다. 뭔가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인데.”

“아닌데요. 강우혁 씨 되게 예민하시네요.”


밥을 두 그릇이나 먹은 강우혁이 그러고도 아쉬운지 숟가락을 놓지 못한 채 서아의 말꼬리를 잡았다.


“너 어린것이 말끝마다 강우혁 씨, 강우혁 씨 하는데 버릇없이 그러는 거 아니다.”

“그럼 뭐라고 해요?”

“음…….”


잠시 고민하는 척하던 강우혁이 인심 쓰듯 말했다.


“내가 아무한테나 허락하는 말은 아닌데 네가 은 피디님 딸이라고 하니까 특별히 허락해 줄게. 그냥 오빠라고 불러.”

“네에?”


서아가 갑자기 손으로 양팔을 감싸 쥐고 마구 비볐다.


“싫어요. 오빠라니. 저는 그런 거 못해요.”

“남들은 나한테 자동으로 오빠라고 하는데 왜 못해?”


서아는 반복해서 고개를 흔들며 절대 못한다고 외쳤다.


“너, 평소에 나 안 좋아했지?”

“그, 그러니까 그게…….”

“솔직히 말해봐. 네가 나한테 팬심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었으면 오빠라는 말에 그렇게까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리가 없거든.”

“강우혁 씨 나온 드라마 보기는 했는데 저는 강우혁 씨보다는 차현준 스타일을 더 좋아해서요.”

“뭐? 차현준? 너 지금 차현준이라고 했니?”


차현준이라는 말에 민석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서아는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에 자신이 실수를 해도 크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설거지하겠습니다.”


‘어이구 바보. 똥 멍청이. 책을 받겠다고 밥까지 했으면서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니. 은서아 너 진짜 못 말린다.’


얼굴이 흙빛이 된 민석과 터질 듯 붉게 달아오른 우혁을 보며 서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정적이 감도는 식탁에서 눈치를 살피며 빈 그릇을 들어 올렸다. 식탁을 모두 치울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우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은서아 너 안 되겠다. 오늘은 책 못 찾아가겠다.”

“뭐라고요?”


서아가 쓰고 있던 고무장갑을 벗어서 팽개치며 소리 질렀다.


“강우혁 씨, 정말 이럴 거예요?”


강우혁이 주방을 나서다 말고 서아를 쏘아보았다. 서아는 자라목이 돼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오, 오빠라고 부르면 주실 건가요?”

“됐으니까 한 번 더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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