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너무 달아

by 은예진

내일 나갈 마카롱의 라인업은 딸기 티라미수, 말차 누텔라칩, 인절미, 크림 브뤨레, 더블 황치즈, 웨딩 임페리얼, 초코우유 크런키, 로투스 크림치즈, 망고 요거트, 솔트카라멜이다. 벽에 걸린 라인업을 훑어본 서아는 팔을 걷어붙이고 마카로나주를 하기 위해 반죽기 앞에 섰다.


마카롱 꼬끄를 담당하는 서아는 언제나 같은 일을 하면서도 할 때마다 긴장한다. 꼬끄 사이에 들어가는 크림 재료들은 작은 실수가 있어도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꼬끄는 바로 눈에 보이기 때문에 자칫 실수라도 할라치면 사장님의 불벼락이 떨어진다.


타르트나 케이크 종류도 잘 만들 수 있는데 꼬끄 모양내는 걸 워낙 잘하다 보니 서아는 어느새 마카롱에만 고정되어 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이리저리 파트를 바꿔가며 솜씨를 자랑할 기회를 얻는데 서아는 그게 잘되지 않다 보니 마음이 초조해질 때가 있다.


가끔 재미 삼아 플레이팅을 해 놓으면 다들 관심을 기울이다 서아가 했다는 걸 알면 시큰둥해진다. 르 꼬르동 블루 출신 팀장이 두 명이나 있는 제과실에서 칭찬은 그들 몫이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서아도 르 꼬르동 블루에 대한 열망은 커지지만 새어머니와 제인에게 붙들려 꼼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다.


마카로나주가 끝난 반죽을 짤주머니에 넣고 자세를 잡았다. 서아는 특히 두 가지 색이 어우러지게 꼬끄를 만드는 솜씨가 좋다. 그 방법을 익히느라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어깨 인대를 다쳐서 한동안 고생했다.


“서아야, 서아야! 지금 매장에 난리 났어.”


반죽을 짜느라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서아가 동료 은지의 등장에 눈살을 찌푸렸다. 평소에도 수다스러운 은지는 대단한 일이라도 난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호들갑이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너 때문에 꼬끄 하나 망쳤다.”

“지금 꼬끄 하나가 문제가 아니야. 매장에 누가 왔는지 알아? 와우. 심장 어택. 정말 멋있어.”

“누가 왔는데 이 야단이야?”

“너, 놀래지 마. 먼저 심호흡하고 들어.”

“야, 인마. 심호흡은 네가 해야겠다. 어서 말이나 해.”


서아가 땀이 맺힌 이마를 팔소매로 문지르며 말했다.


“바로, 바로, 강우혁이 왔어.”


은지가 손뼉을 치며 강우혁이라는 이름에 힘을 주며 말했다.

놀란 서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기도 모르게 헉 소리를 내뱉었다.


“거봐. 내가 놀라지 말라고 했잖아. 그렇게 당부를 했건만 놀래도 한참 놀랬네.”


강우혁이 여길 왜 온 거지? 어렵게 오빠라고 부르면서까지 사정했지만 책을 주지 않은 강우혁은 다시 연락할 테니 그때 오라며 서아를 내쫓아 버렸다. 허겁지겁 서아의 뒤를 따라온 장 대표가 대신 미안하다며 사정을 설명했다.


‘우혁이 앞에서 절대 거론하면 안 되는 인물이 있는데 그게 바로 차현준입니다. 우혁이가 차현준하고 좀 악연이 있어서요.’


‘제가 연예계에 관심이 없어서 두 사람이 라이벌인 줄 몰랐네요.’


‘라이벌? 어림없습니다. 차현준이 우혁이한테 라이벌이 될 깜냥은 아닙니다.’


장 대표도 정색을 하는 바람에 서아는 더 조심스러웠다. 이런 사람들과는 말도 함부로 하면 안 되겠다 싶어 어서 그 동네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연락을 하겠다던 강우혁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아빠 책을 되찾는 건 그렇게 물 건너 간 모양이라고 포기하고 있었다. 누리 서점에 다시 찾아갔었지만 개인 사정으로 휴업한다는 안내문만 붙어 있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빠가 쓴 ‘시청자를 울고 웃기는 드라마’는 서아와 인연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한 달간 감감무소식이던 강우혁이 갑자기 이곳으로 찾아온 거지?’


뻔히 서아가 여기서 일한다는 걸 알면서 매장에 나타난 건 무슨 속셈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꼬끄 한 판을 모두 짜놓고 잠시 숨을 돌렸다. 나가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은지가 그녀를 끌고 매장이 보이는 제과 배출구로 갔다.


“저기야. 저기 강우혁이 커피랑 초콜릿 무스 먹고 있잖아. 아우, 우아하게 독서도 하나 봐. 그런데 사람들이 저렇게 쳐다보고 있는데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책? 책이라고?”

“응. 책 보는데.”


서아가 목을 길게 빼고 내다보자 우혁이 보고 있는 책의 표지가 보였다.


‘저 인간이 진짜 뭘 하자는 거야? 나 약 올리려고 온 거야?’


우혁은 서아 보란 듯이 아빠 책을 읽으며 초콜릿 무스 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느라 책을 내려놓은 우혁이 고개를 들자 알라메종의 김동식 사장이 재빨리 다가가 사인을 요청했다. 우혁은 기분 좋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사인을 해주고 사진까지 찍어주었다.


김 사장이 어색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고 있는 걸 본 은지가 키득거렸다.


“아우, 우리 사장님 완전 오징어. 나 같으면 저 얼굴로 강우혁 옆에 절대 안 선다.”


그때 강우혁이 자리에 앉으려 몸을 돌리다 서아와 눈이 마주쳤다. 우혁은 책을 들고 싱긋 웃더니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딩동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에서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네가 만든 디저트가 뭐냐?>


은지는 넋을 놓고 우혁을 보느라 서아가 핸드폰을 보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서아는 슬금슬금 몸을 빼서 제과실 귀퉁이로 자리를 옮겼다.


<강우혁 씨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강우혁????? 오빠가 아니고?>

<ㅠㅠ>

<네가 만든 걸 먹어보려고 왔으니 빨리 대라.>

<마카롱입니다. 그중에서도 마카롱 겉의 꼬끄 만들기 전문입니다.>


우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카롱이 진열되어 있는 유리장 쪽으로 다가갔다. 말차 누텔라칩과 더블 황치즈를 꺼내 들더니 자리에 돌아와 베어 물었다.


<너무 달아.>


서아가 답을 하지 않자 다시 문자를 보냈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퇴근하고 전화해라.>

<저, 책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연락하지 말아 주세요.>

이전 06화6. 오빠라고 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