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가 문자를 보내고 고개를 드는 순간 사장님이 제과실로 들어왔다. 놀란 서아는 재빨리 말려놓은 꼬끄를 오븐에 넣고 다시 배합을 시작했다. 퇴근시간까지 쉴 새 없이 꼬끄를 만들고 크림을 배합하고 남는 시간에 케이크 시트 만드는 걸 도왔다.
알라메종은 가로수 길에서 가장 유명한 디저트 카페다. 김동식 사장은 르 꼬르동 블루 출신으로 서울 동문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제과실 직원을 르 꼬르동 블루 출신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두 부류로 나누어 상대한다.
사장은 걸핏하면 서아를 비롯해 르 꼬르동 블루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직원들을 무시한다. 그럴 때마다 서아는 주먹을 움켜쥐며 내 언젠가 반드시 가고 만다는 말을 반복한다.
‘가고야 만다. 꼭 가고 말 거다. 그런데 어떻게?’
강우혁과 사진을 찍은 게 자랑스러운 사장이 알라메종의 디저트 소문이 연예계까지 난 모양이라며 호들갑이다. 퇴근 준비를 하는 서아를 보더니 뭔가 트집을 잡고 싶은 눈치다.
“서아 씨, 아까 강우혁이 마카롱을 먹더니 너무 달다고 하는 거 봤어?”
“아니요. 못 봤는데요.”
“내가 지켜봤는데. 한 입 먹더니 너무 달다고 중얼거리더라고. 마카롱 재료 기준 정확히 지킨 거 맞아?”
“네, 맞습니다.”
“정말? 아휴, 배운 게 부족한 애들은 큰 그림을 그릴 줄 몰라서 실수가 잦다니까.”
서아는 ‘아니거든요. 정확하거든요’라고 외치고 싶은 걸 꾹 참고 시계를 봤다. 벌써 십 분째다. 사장은 얼마나 더 잔소리를 해야 하는 걸까?
“시계를 봐? 듣기 싫다 이거야? 요즘 얘들 진짜 되바라지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사장이 말하는데 시계를 볼 수 있니?”
생긴 건 산적처럼 생긴 사장은 콧소리를 심하게 내고 행동도 여성적이어서 부조화가 심하다. 서아는 도대체 언제까지 앵앵대는 사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나 싶어 한숨을 쉬었다. 김동식 사장은 서아가 한숨까지 쉬자 짜증 난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됐다. 됐어. 너처럼 제대로 배운 게 없는 애하고 무슨 말을 하겠니.”
서아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돌아섰다. 뭔가 울컥하고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데 뱉을 수가 없어 다시 삼켰다. 이렇게 삼켜야 하는 게 너무 많아 가끔씩 가슴이 뻐근하게 아프다. 그럴 때마다 숨을 몰아쉬고 속을 삭히느라 애를 쓴다.
알라메종 밖으로 나온 서아가 건물 외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발꿈치로 벽을 툭툭 쳤다. 어떤 날은 새어머니가, 어떤 날은 사장이 그리고 또 어떤 날은 돈이 그녀를 공격한다. 그리고 오늘은 강우혁까지 가세했다. 강우혁이 마카롱을 먹고 달다는 소리만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잔소리를 듣지는 않았을 거다.
“마카롱은 원래 단맛으로 먹는 건데. 달다고 야단이야.”
“그렇기는 하지.”
화들짝 놀란 서아가 어깨를 흠칫 떨며 고개를 들었다. 자칭 월드 스타가 도대체 왜 이렇게 한가한 거지?
“어, 어디서 나타난 거예요?”
“너 기다리다 지쳐서 찾으러 나왔다.”
“저를 왜 찾아요? 강우혁 씨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요?”
“내가 뭘?”
“책 주기 싫으면 그냥 안 주면 되는데 왜 자꾸 사람을 괴롭혀요? 오늘은 남의 직장까지 찾아와서 뭐 하는 거예요?”
“됐으니까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안돼요. 저 집에 가서 동생하고 엄마 밥해줘야 해요.”
우혁은 짜증난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가 왜? 그 사람들은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왜 멀쩡한 손발 놔두고 일하고 들어간 네가 밥을 해?”
우혁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하지만 우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되물었다.
“말해봐?”
“내가 밥을 하건 말건 강우혁 씨가 무슨 상관이에요?”
어디선가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났다. 이제 안 되겠는지 우혁이 서아의 팔을 잡고 끌었다.
“가자. 가서 이야기하자.”
서아는 질질 끌려가면서도 혹시 사진 찍는 사람이 없나 살피느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몇몇이 사진 찍는 사람이 보였다.
“사람들이 사진 찍는데 어쩌지요?”
“상관없어. 저 사진 함부로 올리면 민석이가 다 해결해.”
우혁이 차 문을 열고 서아를 밀어 넣었다. 서아는 엉겁결에 차에 타고나서도 당황스러워 머리를 쓸어 올렸다.
“내가 책 포기했다고 하는데 강우혁 씨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너, 파티시에 공부하고 싶다고 민석이 한테 말했다며.”
“그거야 뭐…….”
“우리 집에서 내 밥이나 해라. 여기 다니는 시간 좀 줄여서 밥하고 살림해. 그럼 내가 월급 줄 테니 돈 모아서 파티시에 공부하러 파리 가라.”
“네에? 강우혁 씨가 왜요?”
서아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어깨를 뒤로 젖히고 물었다.
“내가 은 피디님한테 받은 게 많아. 그래서 나도 너 마냥 네 아버지 책을 사 모은 거야.”
“그, 그래도 그렇지.”
“피디님이 아끼던 딸 서아가가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도 못하고 사는 꼴 못 보겠다. 나도 고민이 많았는데 이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우혁의 입에서 피디님이 아끼던 딸이라는 말이 나오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귓가에 아빠의 중저음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우리 서아 얼마나 컸나 볼까?’
아빠가 서아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어 안아줄 때면 몸이 가벼워져서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너, 우냐?”
서아의 눈에 눈물이 맺히는 걸 본 우혁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요. 울긴 누가 울어요. 안 울어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코를 훌쩍였다. 우혁은 휴지를 꺼내주며 혀를 찼다.
“애 마냥 울기는.”
“울기는 누가 운다고 그래요?”
서아는 휴지를 빼앗듯 잡아 채 눈물을 닦으면서도 우는 게 아니라고 고집을 부렸다.
“올 거야? 말 거야?"
“어머니가 허락해 주실지…….”
“야, 네가 미성년자야?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허락이 어디 있어? 다른 데서는 다 대찬 녀석이 왜 가족한테는 꼼짝을 못 하냐?”
우혁은 답답한지 고개를 휙 돌려 창문을 열었다.
'멍청하기는. 그 여자도 널 그렇게 생각했으면 네가 이러고 살았겠냐?'
서아에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참느라 입가에 힘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