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만두에 담긴 마음

by 은예진

유기농 물만두 시식코너 앞에 다다랐지만 초록색 꼬치에 손을 대기도 전에 서아가 이미 저만큼 앞으로 나가버리고 말았다. 우혁은 멀거니 서서 만두를 권하는 업체 직원을 바라보았다. 여직원은 강우혁을 알아보고 환하게 웃으며 만두를 찍어 내밀었다.


“강우혁 씨도 하나 드셔보시겠어요? 세상에 실제로 보니까 텔레비전에서 볼 때보다 훨씬 잘생겼네요. 머리 위에서 광이 나네. 광이 나!”


수다스러운 여직원이 플라스틱 위생마스크 안에 침이 튀기도록 큰 목소리로 떠들었다.


“아, 네.”


우혁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손을 내밀어 만두를 받더니 입에 넣지 않고 한 손에 쥔 채 카트를 밀었다. 정육 코너에서 고기를 골라 든 서아는 우혁이 보이지 않자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었다. 서아는 손쉽게 우혁을 찾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크고 잘 생긴 남자랑 다니면 찾는 거 하나는 쉬워서 좋네.”


우혁은 한 손에 만두를 끼운 꼬치를 들고 다른 손으로 카트를 밀며 서아를 찾아 헤맸다. 만두가 떨어질 새라 조심조심 다가온 우혁이 서아 앞에 꼬치를 내밀었다.


“먹어.”

“네?”

“이거 너 먹으라고.”


서아가 엉겁결에 입을 벌려 우혁이 내민 만두를 받아먹었다. 주변에서 시선이 그들에게 쏠리는 걸 느끼고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우혁은 뭐가 좋은지 흐뭇한 표정으로 서아를 바라보기만 했다.


‘저 인간 아까는 그렇게 툴툴거리더니 이번에는 또 뭐가 그렇게 좋은 거야.’


“맛있니?”


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가렸다.


“안 먹어봤어요?”

“너 주려고 안 먹고 들고 왔어.”

“풋.”


서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을 하는 우혁의 얼굴이 어찌나 자랑스러워 보이는지 초등학생이 받아쓰기 백 점 맞은 시험지를 엄마한테 내밀고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럼 우리 이거 하나 사서 집에 가서 해 먹을까요?”


우혁의 눈이 반짝하고 빛나더니 얼굴 전체가 환하게 펴졌다.


“그렇구나. 나도 먹어보고 싶었는데 너 가져다주려고 못 먹었거든. 우리가 저거 사서 집에서 해먹으면 되는 거였네. 그걸 몰랐어.”


서아는 어이가 없어 손바닥으로 이마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당연한 걸 모르시네.”


우혁은 서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카트를 밀고 쏜살같이 되돌아가 원 플러스 원하는 물만두 두 봉과 군만두 두 봉을 담아왔다.


“뭘 이렇게나 많이 담아 왔어요?”


서아가 카트 안을 뒤적이며 투덜대자 우혁이 내가 다 먹을 거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맥주와 와인까지 집어넣자 커다란 카트를 가득 채웠다.


“우리 너무 많이 산 거 아니에요?”

“셋이 매일 먹고 살 건데 이 정도는 있어야지.”


계산을 마친 우혁은 박스 안에 구입한 물건들을 차곡차곡 넣어 포장했다. 빈틈을 하나도 용납하지 않고 꼼꼼하게 채워 넣는 그의 솜씨를 보자 성격이 드러나는 것만 같았다. 옆에서 같이 포장하던 서아가 아귀가 맞지 않게 물건을 넣고 있는 걸 보자 우혁이 빼앗아서 다시 채웠다.


“어휴, 꼼꼼하기도 하네.”

“너 지갑에 돈도 막 아무렇게나 넣지?”

“그럼 돈을 어떻게 넣어놔요?”


“신사임당 얼굴이 한쪽으로 가게 맞춰서 넣어놔야지. 오만 원짜리 속에 만 원짜리 끼워서 뒤죽박죽 넣어놓으면 기분이 나쁘고 있던 돈도 나갈 것 같아.”


“대박.”

“그런 걸 보고 대박이라고 하는 네가 이상한 거다.”


서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흔들었다. 우혁이 카트 안에 있는 박스 두 개를 트렁크에 싣고 손을 탁탁 털었다. 먼저 조수석에 앉은 서아가 그런 우혁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까 신경질을 내던 사람은 어디로 간 건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왜 그렇게 신경질을 낸 건지 이유를 물어보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다. 물어보면 우혁의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궁금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서아가 대시보드에 턱을 고이고 운전석 쪽을 자꾸 흘끔거리자 시동을 걸던 우혁이 결국 먼저 말을 꺼냈다.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거야? 그냥 물어봐!”

“진짜 물어봐도 돼요?”


서아가 상체를 세우며 신이 난 듯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 물어. 그냥 물어봐.”

“아까 왜 그렇게 짜증을 냈어요?”

“응?”


“내가 인터넷으로 장 봐도 된다고 하니까 신경질을 버럭 냈잖아요. 이유를 알아야 앞으로 조심하지요.”

“그게 말이야…….”


잠시 망설이던 우혁이 귓불이 빨개져서 대답했다.


“사실은 나, 여자랑 카트 밀며 장 보는 거에 로망이 있었거든.”

“뭐라고요?”


서아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어.”


우혁이 좋아하는 여자라는 말에 서아가 놀라서 어깨를 흠칫했다. 자기가 말을 해놓고 당황한 우혁이 도리질을 하며 강조했다.


“아니, 너를 좋아한다는 소리는 아니고. 그게 그러니까. 해보고 싶은 일이었는데…….”


말이 뒤죽박죽 꼬인 우혁이 목까지 벌겋게 달아올라 횡설수설했다. 서아는 우혁이 무척이나 불쌍하다는 듯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휴, 지금까지 마트 한 번 같이 다닐 여자가 없었단 말이에요? 쯧쯧, 그동안 스캔들 있었던 거 그럼 다 소문뿐이었던 거예요?”


순간 우혁은 깜짝 놀랐다. 그동안 사귄 여자들이 왜 없을까. 그런데 그 여자들하고는 한 번도 카트를 밀며 마트 쇼핑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건 뭐지 싶어 당황스러웠다.


여자로 느껴지지 않는 서아와는 로망을 실현하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어째서 예전 여자 친구들과는 카트를 밀며 시식 코너 만두를 먹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걸까?


우혁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눈동자만 굴리고 있자 서아가 손바닥으로 우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키득거리고 웃었다.


“불쌍한 우리 강우혁 씨, 앞으로 내가 마트 열심히 다녀 줄게요.”

“까분다.”


우혁이 서아의 손목을 낚아채 꽉 움켜쥐었다. 순간 두 사람만 있는 차 안의 공기가 경직되었다. 긴장한 서아의 가슴이 들썩이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둘 다 멈칫거리고 있는 순간 그들을 구해준 것은 우혁의 핸드폰이었다.


민석이 우혁을 찾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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