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한 것들의 쓸모

by 은예진

나는 경기도 외곽의 읍 소재지에 위치한 동물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 동물병원이라는 곳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개나 고양이를 진료하는 곳이 아니라 소를 전문으로 진료하는 곳이다. 진료는 수의사가 출장으로 하니 병원을 지키는 내가 할 일은 어쩌다 한 번씩 처방받은 약을 가지러 오는 축주를 상대하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온종일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날도 있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산에 눈이 쌓이고 새싹이 나고 녹음이 우거지다 다시 붉은 물이 들기를 스무 번이 지났다. 처음 볼 때 아저씨였던 목장주들이 이제 할아버지 소리를 듣고 하교하면 동물병원에 와서 시간을 보내던 초등학생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서 결혼까지 했다. 그리고 나는 중년의 한가운데 서서 자괴감에 빠져있다. 남들이 앞으로 나가고 있는 동안 여전히 이 자리에서 홀로 앉아 있는 나는 무엇을 한 걸까?


어떤 사람은 자격증 공부를 해서 개업을 하고, 어떤 사람은 소규모 회사에 취업했어도 회사와 같이 성장을 해 이사급이 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최저 시급을 받으며 하는 일 없는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자기 계발을 해서 좀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했더라면 중년의 나이가 된 지금 내 가치와 비례하는 것으로 보이는 급여에 낯 뜨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가끔 혼자 있는 나를 향해 심심하지 않으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동료도 없이 동물병원을 지키고 있으니 그런 질문을 받을만하다. 여기서 나는 이십 년 동안 무엇을 한 걸까?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선샤인’에서 애기씨의 정혼자인 김희성이 꽃이 흐드러진 달밤 아래서 한 말이 있다.


“내 원체,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오. 달, 별, 바람, 웃음, 농담…….”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는 이 자리에서 그 긴 시간 동안 참으로 무용한 것에 빠져있었다.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던 사람답게 시간이 남아도는 직장에서 한 일은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것이었다. 리뷰를 쓰다 보니 욕심이 생겨 단편소설 강좌까지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는 신춘문예 당선도 되고 로맨스 공모전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쓰는 동안은 행복했다. 몰입의 기쁨을 누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태 전 전정신경염으로 쓰러진 후로 집중이 어려워 글을 쓰지 못하는 지금 나의 이십 년은 그저 무용한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누구도 나에게 뭐라 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스스로 자괴감을 느낀다. 그 시간 동안 얼마든지 더 좋은 직업을 위해 공부할 수도 있었는데, 아니 자기 포장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가진 수상 경력만으로도 다양한 일에 도전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잖아도 나이 들면서 체력이 약해져 자신감이 떨어졌는데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내가 한없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이런 나의 신세 한탄을 듣던 친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재미있다. 지금 네 자존감이 바닥인 건 글을 쓰지 못해서인데 도리어 글을 써서 그런 거로 생각하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수시로 균형을 깨트리는 어지럼증 때문에 집중이 어려워 글을 쓰지 못하는 날이 길어졌다. 쓰고 싶지만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갑자기 글을 써온 나 자신이 미워지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그런 나의 모순적인 감정을 친구가 정확하게 짚어준 꼴이 되었다.


착잡한 감정을 뒤로하고 오랜만에 도서관엘 들렸다. 손에 잡히는 대로 책 한 권을 꺼내 들고 문헌 정보실 책상에 앉았다. 한참 동안 책장을 넘기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제야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나는 이런 순간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지. 재테크를 잘해 부자가 되거나 좋은 회사에 들어가 승승장구하는 나를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사람이었지. 대신 어디선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내 모습을 그려왔었지. 그게 나였지.


요즘 나는 출근하자마자 한자 학습지를 한 장씩 쓰고 칼림바 연주를 하는 루틴을 지키고 있다. 공부를 하려면 생활 회화라도 해야 하는데 한자 학습지라니 거기다 악기라고 초등생들이나 연주할법한 칼림바는 또 뭔지 모르겠다. 정말 무용하기 짝이 없는 짓을 하는 것이다. 이런 무용한 짓을 하는 이유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소한 집중이 늘어나다 보면 글을 다시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이다. 이게 무용한 것의 쓸모이다. 결국 나는 이렇게 생겨 먹었고 생긴 대로 무용한 것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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