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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Aug 30. 2024

46. 돌아보게 만드는 예쁨

“하기야 사람들이 그렇게 오냐오냐하는데 자기를 알기 쉽겠어.”

“나 참, 어이가 없네. 내가 우혁 오빠 좋아하는 건 그럼 뭔데?”

“언제까지나 내 생각인데 그건 사랑이라기보다는 오기지. 나한테 넘어오지 않는 남자에 대한 환상 플러스 오기!”

“오빠마저도 내 진심을 이렇게 몰라주니 우혁 오빠가 저러지. 아, 서럽다.”


민석은 채영이 팔팔 뛰며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담해서 놀랐다. 채영은 맥주 대신 탄산음료 캔을 마시며 멍하니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있었다. 달콤한 너의 맛에서 우혁이 서아의 허리를 감싼 채 새벽의 해변을 거닐고 있었다. 


파도 소리만 철썩거리고 두 사람은 말도 없이 그냥 걷기만 했다. 너무 조용해서 꼭 음소거가 된 것 같았지만 파도 소리는 간간이 들리고 있었다.


채영은 먹는 것도 잊은 채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뭘 그렇게 넋을 놓고 봐?”


민석이 캔 하나를 따며 물었다.


“우혁 오빠는 왜 쟤를 좋아해?”


당황한 민석이 목이 따끔 거리도록 탄산음료를 원샷하고 내려놓았다. 


“뭔가 좀 다른 데가 있어. 그동안 새어머니랑 이복동생을 챙기느라 대학도 가지 못할 만큼 착한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만하지 않은 착함을 가졌어.”

“만만하지 않은 착함이 또 뭐야? 칫.”

“가로수길 천사라는 말이 그냥 붙은 말이 아니라 이거지. 정말 천사 같은 아우라가 있다니까.”

“어이구 날개 잃은 천사 나셨네.”

“얼굴도 식상하게 예쁘지 않고 뭔가 매력 있게 예쁘잖아. 사람들은 송혜교나 김태희를 닮았다는 소리를 하는데 그렇게 예쁜 건 아니거든. 그런데도 이상하게 자꾸 돌아보게 만드는 예쁨이 있어.”


가만히 듣고 있던 채영이 민석을 빤히 바라보았다. 계속해서 텔레비전 속의 서아를 보며 말을 하던 민석이 채영의 시선을 눈치채고 흠칫했다.


“나는 우혁 오빠가 왜 쟤를 좋아하냐고 물었는데.”

“그래서 대대답한 거잖아.”


민석의 뺨이 붉게 달아올라 말을 더듬었다. 채영은 그런 민석의 얼굴을 계속 바라보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추석이 지났는데 왜 이렇게 더운 거야? 너네 집 그동안 비워놔서 환기가 안 된 모양이다 야.”


민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창문을 열고 방충망까지 열어젖히며 얼굴을 밖으로 내밀었다. 채영은 골뱅이를 

소면과 휘저으며 씩씩거렸다. 그럼에도 입에서 나오려는 말을 꾹 눌러 참았다. 


채영이 생각해도 자기가 왜 그 말을 참고 있는지 잘은 모르겠는데 그냥 참아주고 싶었다. 부른다고 와서 골뱅이까지 사가지고 온 민석에게 최소한 그건 해줘야 할 것 같았다.  


“나 이제 가도 되냐?”


민석이 거실 창을 닫으며 물었다. 채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마워. 이렇게 골뱅이 사다 주고 내 말 들어줘서.”


민석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다.


“골뱅이에 뭐 들어 있었냐?”

“골뱅이에 양념이 들어있지 뭐가 들어있어?”

“그런데 너 왜 그렇게 철든 사람처럼 고맙다는 말을 다해?”

“한 달간 유배생활을 했더니 오빠한테 고마운가 보지 뭐. 그리고 내가 우혁 오빠 집에서 행패 부린 거 오빠가 다 부인해줬잖아. 아무리 사진이 떠돌아도 오빠가 끝까지 아니라고 해준 거 그게 많이 도움 됐어.”

“야, 윤채영 너무 그러지 마라. 나 여기 오면서도 너 언제 철드나 한숨 쉬고 왔는데 네가 이러면 미안해지잖아.”

“됐으니까 잘 가라.”


채영이 손을 휘저으며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 너무 좋아하지 마. 나는 여전히 강우혁이 포기 안 했으니까. 내가 언제 치고 들어갈지 모르니까 두 사람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해.”


민석은 고개를 흔들며 채영의 집을 나갔다. 차를 끌고 우혁의 집 앞에 멈춰 선 민석은 잠시 망설였다. 잠깐 들렸다가고 싶었지만 어쩐지 두 사람에게 방해될까 싶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혁과 서아만 헷갈리는 게 아니라 민석도 헷갈렸다. 지금 두 사람이 정말 연애를 하는 건지 아니면 리얼리티 연애 프로를 찍는 건지 말이다.


결국 우혁의 집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타운 하우스를 벗어나지도 못한 채 멈춰 선 민석이 서아에게 문자를 넣었다.


<뭐해요?>

<앗, 대표님! 우혁 오빠랑 양양 카페 이름 짓느라 고민 중이예요. 우혁 오빠는 실버 캐슬로 하자고 졸라서 제가 절대 안 된다고 말리는 중이에요.>

<실버 캐슬? ㅋㅋㅋㅋㅋㅋㅋㅋ>

<거봐요. 웃기잖아. 은서아를 줄이면 은성이라나 뭐라나ㅠ.ㅠ 나도 안 된다고 하는데 우혁 오빠는 계속 엉뚱한 소리만 해요. 혹시 대표님 뭐 떠오르는 거 있어요?>

<글쎄요.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네요.>


서아는 우혁에게는 이제 확실하게 우혁 오빠라고 하면서 민석에게는 대표님과 오빠, 또는 민석 씨라는 말을 뒤죽박죽 섞어 썼다. 그도 우혁처럼 오빠라고 부르기를 강요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건 우혁이나 되니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윤채영이 잠깐 보고 가는 중이에요.>

<어머, 그럼 여기 계시다는 말이네요?>


서아가 갑자기 현관문을 열고 나와 밖을 내다보았다. 민석의 차를 발견한 그녀가 손을 마구 흔들며 그를 불렀다.


“대표님, 거기서 뭐해요? 어서 들어오세요.”


민석이 못 이기는 척 차를 대고 마당으로 들어서자 서아가 반갑게 뛰어내려가 그를 맞이했다.


“제가 카페에서 팔 쿠키 종류 좀 만들어봤거든요. 우혁 오빠는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고 맛도 안 봐주려고 해요. 대표님이 좀 먹어보고 평가해주세요. 이게 괜찮은 건지 아닌지 자신이 없어요.”


민석이 서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들어서자 우혁이 쿠키를 정신없이 먹고 있었다. 두 사람을 본 우혁이 흠칫 놀라 입을 닦으며 부끄러운 듯 웃었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았는데 결국 냄새에 지고 말았어.”


그러고 보니 집안에는 달콤한 바닐라 향내가 가득했다. 우혁은 쿠키 만드는 여자와 같이 사는 건 연예인에게는 최악이라며 투덜댔다. 그리고 포기한 듯 오렌지향 휘낭시에와 걸리버갈레트, 유자레몬바를 정신없이 흡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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