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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Aug 28. 2024

45. 짝사랑 행패녀

우혁의 집에서 행패를 부리던 채영의 사진이 SNS에 올라 구설을 겪었다. 장민석 대표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채영을 보호했지만 발 없는 말이 천리 가는 SNS 세상에서 채영은 짝사랑 행패녀가 되었다. 


채영의 소속사 대표는 그녀를 하와이로 보내 한 달간 칩거를 명령했다.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이 채영을 비웃고 놀려대자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하와이 해변에서 원 없이 햇볕을 쪼이고 쉬다 온 채영은 건강미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공항에서 찍힌 사진 속의 그녀는 반들반들하게 태닝 한 피부에 화려한 랩스커트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채영을 집에 데려다준 매니저는 오늘은 쉬고 내일 보자며 불안한 듯 우혁의 집을 흘끔거렸다. 채영은 그런 매니저를 향해 문을 열고 소리 질렀다.


“걱정하지 마셔.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오자마자 또 사고 치겠냐?”


매니저는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느냐는 듯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지만 채영의 성화에 하는 수없이 어깨를 으쓱하고 집을 나갔다. 매니저의 차가 출발하는 것을 확인한 채영은 재빨리 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석 오빠, 나 왔어!”


채영이 한껏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민석을 불렀다. 


-알아, 방금 공항 모습 찍힌 거 봤다.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

“지금 뭐 해?”

-달콤 팀 하고 향후 촬영 일정 맞추고 사무실 돌아가는 길이야.

“그거 추석 파일럿 아니었어?”

-시청률이 대박이잖아. 원래 파일럿으로 끝날 계획은 아니었어.

“에이 씨, 진짜 짜증 난다. 짜증 나! 오빠 나 좀 보자.”

“응?”


민석이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채영은 몹시 난처한 민석의 얼굴이 눈에 보이는 듯해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안 잡아먹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냥 좀 물어볼 말이 있어서 그래.”

-나중에 보면 안 될까? 너 피곤하잖아. 오늘은 그냥 쉬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니, 나는 오빠를 봐야겠는데.”


민석이 휴 소리가 들리게 한숨을 쉬었다. 


“뭐야 오빠? 내가, 이 윤채영이가 보자는데 그렇게 한숨이 나와? 오빠가 나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알았어. 갈게. 


결국 민석이 당장 갈 테니 진정하라며 채영을 달랬다.  


‘지가 감히 내가 오라는데 튕겨? 어쭈, 이것들이 아주 쌍으로 나를 무시하네.’


채영은 씩씩대며 냉장고를 열었다. 하와이에서 먹고 싶은 대로 먹는 바람에 살이 조금 쪘다. 많이는 아니고 건강해 보이는 수준인데 그게 못마땅했는지 대표는 냉장고에 체중 관리용 샐러드 도시락과 야채 주스를 넣어 두었다.


한마디로 이제 너 살 빼고 운동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냉장고를 보자 더 화가 치민 채영이 다시 민석에게 전화했다.


“오빠, 그냥 오지 말고 목동에 가서 골뱅이 치킨세트 좀 사 와.”

“내가 니 매니저도 아니고 이런 걸 왜 나한테 시켜?”


민석이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채영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콧소리를 냈다. 


“오빠, 새삼스럽게 왜 이래. 우리 민석 오빠가 나한테 이러는 사람 아니잖아.”

-야, 윤채영! 너 잘 들어. 내가 차를 돌리는 건 네가 콧소리 내서가 아니야.

“알지. 우리 우혁 오빠는 참 복도 많지. 내가 우혁 오빠 귀찮게 굴까 봐 나를 막아주느라 민석 오빠가 얼마나 애를 쓰는지 알아야 하는데.”

-니가 아주 나를 갖고 노는구나!


채영이 깔깔거리며 빨리 사 오라고 전화를 끊었다. 민석이 양손에 커다란 봉투를 들고 들어섰을 때 채영은 ‘달콤한 너의 맛’을 보고 있었다.


화장을 지우고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있지만 채영은 그런 모습이 더 눈부시게 예뻤다. 저렇게 예쁘니 세상 모든 남자가 죄다 자기를 숭배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어지는 거지. 얼굴만 보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지만 이제 이십 대 후반이면 좀 마음도 예뻐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민석은 테이블에 골뱅이와 치킨, 계란말이와 번데기를 꺼내 늘어놓았다.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의 뚜껑을 열어 먹을 수 있게 세팅하고 나무젓가락까지 갈라 채영의 손에 들려주었다. 그때까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텔레비전만 보고 있던 채영이 그제야 골뱅이를 집어 들었다.


“음, 이 맛이야. 맛있다. 아삭한 콩나물이 최고야. 고마워 오빠!”

“그래 많이 먹어라.”

“오빠는?”


채영이 어쩐 일로 가만히 보고만 있는 민석을 챙겼다.


“달콤 팀 하고 저녁 먹었어.”

“그래?”


화면에서는 우혁이 불도 켜지 않은 채 서아의 침대 옆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둑한 방이었지만 서아에 대한 우혁의 다정한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아, 골뱅이 맛이 확 떨어지네. 술 땅긴다.”


채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냉장고를 뒤졌지만 술이 있을 턱이 없다. 채영의 소속사 대표는 집안에 술이란 술은 모두 치워버리고 앞으로 그녀의 집에 술이 있으면 매니저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술 없을 거야. 매니저가 다 치웠어.”

“알아.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뒤지는 거지.”

“넌 술 끊어야 해. 그날 생각하면 아우.”


민석이 진저리를 쳤다. 채영이 그의 가슴에 쏟아냈던 토사물을 생각하면 지금도 오싹하다.


“알았어. 그래서 나도 양심이 있어서 술 사 오란 말은 안 했잖아.”


채영은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우혁과 서아가 꾸려가는 양양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우혁 오빠가 여자를 저렇게 보는 거 처음 봐.”


채영이 닭다리를 하나 들고 뜯으며 말했다.


“그렇지? 나도 신기해. 우혁이 저 자식이나 너나 사랑받을 줄만 알았지 누굴 제대로 좋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잖아.”

“뭐? 내가 왜? 나 우혁 오빠 좋아하는 거 못 봤어?”


채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가 막힌다는 듯 민석을 노려보았다.


“니들은 참 자기를 몰라.”


민석이 심심한지 번데기 하나를 집어먹으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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