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아트센터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

by 은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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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백남준 아트센터에 다녀왔다. 백남준 아트센터는 경기도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경기도 미술관처럼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대신 주차할 경우 주차비는 유료다. 백남준 아트센터 건물 뒤로 넘어가면 산등성이를 연결해 데크를 조성해 놓았는데 따라 올라가 보니 경기도 박물관과 경기도 어린이 박물관이 있었다. 햇살 좋은 주말 오후 아이들을 동반한 젊은 부모들이 가득한 광장이 조용했던 백남준 아트센터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백남준 선생의 위상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이며 그의 작품들이 이제는 고장 나 방치되고 있는 곳이 많다는 정도였다. 아내가 일본사람으로 존레넌과 오노요코 부부와 친분이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나는 선생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는 상태에서 작품을 접하게 된 것 아닌가 싶다. 미학에 대해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이 미술 작품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이 좀 어색하기도 하다. 뭘 알아야 쓰는 건데 대충 검색이나 해보는 수준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다 마음을 내려놓는다. 나는 전문적인 감상평을 쓰려는 게 아니고 그저 내 수준에서 볼 수 있는 만큼 보고 그 감회를 서술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지 욕심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백남준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재벌인 태창그룹 총수였던 백낙승의 아들이다. 백낙승은 식민지시대 친일파로 애국기라는 이름을 붙인 전투기를 일제에 기증할 정도의 부자였다. 1932년생인 백남준 선생은 서울과 홍콩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한국전쟁 당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학교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1956년 독일을 거쳐 1964년 미국으로 이주한다. 그래서 선생은 6개 국어를 할 줄 알았다고 한다.


독일에서 유럽 철학과 현대 음악을 전공한 선생은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본격적인 비디오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미래 기술에 대한 이해가 깊고 예술을 통해 전지구적 소통과 만남을 추구했던 백남준 선생은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동시에 엔지니어인 새로운 예술가 종족의 선구자'라고 칭송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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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작업실 풍경


아트센터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비디오 샹들리에 NO.1'이다. 38대의 흑백텔레비전과 전구 전선 등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붉은색과 초록색 조명 때문에 얼핏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샹들리에 뒤로 보이는 작품은 'TV 정원'으로 푸른 식물로 가득한 정원 안에 텔레비전을 심어 놓았다. 선생은 사계절 변하는 정원의 풍경이 여러 색이 빠르게 변하는 텔레비전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가장 인공적인 피조물인 텔레비전과 자연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다니 우리 같은 사람들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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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막 커튼이 쳐진 검은 방에 들어가면 텔레비전 열세대가 다양한 달의 모양의 보여준다. 밤 운동을 하는 나는 달이 뜨고 지는 풍경을 날마다 보면서 비로소 달의 궤도와 한 달 동안 차고 기우는 모습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한 달을 방 하나에 구현에 놓았다. 'TV 정원'처럼 가장 거대한 자연인 달과 텔레비전이 하나 된 모습니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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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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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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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물고기


머릿속에서 백남준 하면 떠오르던 이미지와 실제 아트센터의 작품들과는 꽤 거리가 있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미지는 낡은 텔레비전, 더는 존재하지 않는 구시대의 기술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본 천왕성은 대단히 아름다웠으며 'TV 피아노'는 음악을 전공한 미디어 아트 천재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카메라가 피아노 건반을 비추고 손가락 대신 카메라가 건반을 치는 영상은 눈으로 보는 연주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텔레비전과 수족관을 연결해 화려한 영상의 모자이크를 만든 'TV 물고기'는 현란한 빛 속에 움직여야 하는 물고기에게 좀 가혹한 환경이 아닌가 싶었다.


일 층의 <전지적 백남준 시점> 2025.4.10~ 2026.2.22 전시를 둘러보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에는 2024년 백남준 예술상 수상 작가인 조안 조나스의 <인간 너머의 세계 > 2025.11.20 ~ 2026.3.29 전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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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 조나스는 1936년 미국 뉴욕 출생으로 대학에서 조각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퍼포먼스로 전환하면서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백남준 선생이 뉴욕 거주당시 교류가 있었던 조안 조나스는 구십 세가 다 된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2024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다. 모든 분야에서 그렇지만 예술가는 장수하면서 꾸준한 작품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통영의 화가로 칭송받는 전혁림 화백을 알게 된 것은 어떤 여성잡지를 통해서였을 것이다. 잡지 속의 노화가는 훌륭한 작업실에서 웅장한 대작을 작업하고 있는 유복한 사람이었다.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 그의 작품인 '통영항'을 걸고 세계 국가 원수들과 감상했다는 이야기는 그가 성공한 화가라는 걸 보여준다. 그런데 내가 알지 못했던 전혁림 화백의 60세 이전의 삶은 상상을 초월하게 가난했다. '살롱드 경성 2'를 쓴 김인혜는 전혁림을 가리켜 가난한 화가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화가로 칭했다. 그랬던 사람이 환갑을 넘기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95세까지 살았으니 삼십 년의 영화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조안 조나스도 아직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서 2024년 백남준 예술상을 받았으니 예술가의 장수는 축복이다.


이번 전시에는 조안 조나스의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비디오 작품부터 조형작품, 스케치까지 그녀는 '바람처럼 내 귀를 스쳤다'는 제목으로 종이연을 제작했고 자신의 개인 오즈의 목에 카메라를 달아 개의 시점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개'등의 작품을 전시했다.


다양한 작품 중에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2025년작인 '빈방'이었다. 방 자체가 하나의 작품인 빈방은 1936년생인 작가가 주변 사람들을 하나 둘 잃어가는 감회가 담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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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는 소녀가 등장하는 비디오가 재생되고 있고 천장에는 열두 개의 종이 조각품이 매달려있다. 그리고 왼쪽에는 토리노코지에 그린 앙상한 나뭇가지 그림이 오십 점 붙어있으며 재즈 피아니스트 제이스 모란의 피아노 곡이 흘러나온다.


나뭇가지가 그려진 토리노코지는 한지처럼 보였는데 일본에서 제작하는 특수 한지를 토리노코지라고 하는 모양이다. 이 종이에 그림을 그려 구겨서 텍스처를 만들었다. 시각과 청각을 가득 채우는 방의 이름이 '빈방'이라니 아이러니한 작품이다.


조안 조나스는 또래의 친구들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빈 방을 남긴다는 생각이 들어 이 작업을 했다고 한다.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생명이 저물고 있지만 소녀와 종이 조각에서 내뿜는 빛은 다시금 소생하는 순환의 시간을 보여준다.


책을 어쩌다 한 권 보는 사람은 그 책에서 엄청난 지식을 얻어야 할 것 같아 실망하기 일쑤다. 하지만 책을 일상으로 읽는 사람은 책 한 권에서 한 문장을 얻으면 그 독서는 가치 있었다고 생각한다. 미술관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전시된 작품은 많지만 그 많은 작품 모두에게서 감동받을 필요는 없다. 하나만 마음에 담아와도 성공한 것 아닌가 싶다. 오늘의 외출은 '빈방' 하나로 충분하였다. 나는 조안 조나스가 주변 사람들을 떠나보내며 느꼈던 슬픔과 나 또한 갈 그 길에 대한 기대감을 동시에 느꼈다. 공간이 주는 위로는 이런 것이지 싶다.


백남준 아트센터 건립을 추진 중에 선생이 돌아가셨다. 선생은 생전에 백남준 아트센터를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오래도록 살아 있고 싶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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