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 산

by 은예진

어제 비가 하루 종일 내리던 영향인지 오크밸리로 들어서자 안개가 자욱했다. 안갯속에 마주한 물의 정원은 지난번보다 더 운치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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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뮤지엄 산을 방문했을 때는 뮤지엄의 전시물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날 나의 목표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이었다. 재방문할 때가 돼서야 비로소 뮤지엄에 전시된 그림을 볼 여유가 생겼다. 더군다나 이번 전시 '경계에서' 2025.12.13~2026.3.15에 관람하게 될 세 명의 화가는 내가 익히 아는 화가들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이름 들어본 화가를 만났으니 반가운 일이다.


박래현 (1920~1976)

청주에는 <운보의 집>이라고 운보 김기창이 지은 한옥이 있다. 연못과 정자가 있는 아름다운 정원과 조각공원까지 더해진 이곳에 미술관을 지어 그와 가족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우향 박래현은 김기창의 아내다. 어렸을 때 김기창이 죽은 아내 우향을 추억하는 글을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고 뭔가 비극적인 정서가 있었는데 아이 넷 낳고 산 아내인 것을 알고 김기창이 다소 감상에 젖어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래현은 1948년 결혼과 생활이라는 잡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어 한탄했다.


"아침 6시쯤 일어나 기저귀 빨기, 밥 짓기, 청소하기, 아침 식사가 끝나면 이것저것 치우고, 닭의 치다꺼리, 아기 보기, 정오면 점심 먹고, 손이 오면 몇 시간 허비하고, 저녁 먹고 곤해서 좀 쉬는 동안에 잠이 들면 자, 그러면 본업인 그림은 언제나 그리나."


나도 모르게 갤러리 안에서 우우우 소리가 터져 나왔다. 1948년에 여자가 그림을 그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짐작이 되는 일이다. 남편은 그림만 그리면 되지만 아내는 이 모든 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운보의 집에 있는 그림들은 인물화와 풍경화가 대부분이어서 박래현이 얼마나 독창적인 화가인지 몰랐다. 위의 일을 다 하면서 그녀는 국전에서 많은 상을 타고 교수를 하며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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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28


내가 알던 운보의 집에서 본 박래현은 이곳에 없었다. 뮤지엄 산에서 소장하고 있는 그녀의 그림은 실험적이며 조형리듬을 탐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활을 핑계 삼아 숨어 버릴 수 있었지만 박래현은 붓을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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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생광 1904~ 1985


박생광은 통영의 전혁림과 함께 지독한 가난의 쌍두마차였다. '살롱 드 경성 2'에서 보면 3평 남짓한 방에서 3미터가 넘는 대작을 말아가며 그렸다는 박생광은 온종일 그림 위를 굴러가며 그리다 밤이 되며 구석에 솜이불 하나 깔고 송충이처럼 기어 들어갔다고 한다.


전시실에 들어선 순간 그 쨍한 색감에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박생광무당.jpg 무당


박생광백운.jpg 백운


박생광시집가는날.jpg 시집가는 날


'살롱 드 경성 2'에서 김인혜는 박생광의 그림이 집에 걸기에는 너무 무서운 그림이라고 했는데 '시집가는 날'같은 그림이라면 얼마든지 걸어도 될 것 같다. 박생광은 일본 유학을 통해 그림을 배웠으며 해방되기 전까지 20년간 일본에 있었다. 해방 후 일본식의 채색화가 배척을 당하자 그의 그림이 설 자리가 없었다. 이 시기를 거치며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은 박생광은 불교, 무속, 민속등 한국의 기층문화를 탐구했다. 박생광이 쓰는 물감은 경면주사로 무당이 부적을 쓸 때 사용하는 물감이다.


동부 이촌동 아파트가 10만 원 하던 시절 물감 값으로 300만 원을 쓴 그림 '사바세계의 청담대종사'는 3미터에 달하는 대작이다. 이 그림을 실제로 본다면 얼마나 압도적일까? 위에 백로 그림인 '백운'을 화면으로 보면 그림이 전체적으로 반짝인다는 것을 알 수 없다. 그 반짝임이 주는 아우라는 실제로 봤을 때만 느낄 수 있다. 그러니 대작인 '사바세계의 청담대종사'를 손바닥만 한 사진으로 보면 무슨 감회가 있겠는가. 개인소장인 이 그림은 아마도 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남관 1911~1990


'살롱 드 경성 2'에서 남관을 보면 쌈닭에 사기는 또 어찌나 잘 당하는지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그러면서도 감수성은 예민한 화가는 예술가가 성공하는 과정의 정석을 보여준다. 언젠가 설치 미술가 이불의 인터뷰를 본 적 있는데 예술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운'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럼 운이 찾아주지 않는 예술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아주 간단했다. 운이 올 때까지 하면 된다. 남관은 그렇게 했다. 사기를 당해 체류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파리에 혈혈단신 떨어진 그는 버텼다. 성공할 때까지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1966년 프랑스 망통에서 열린 국제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고 금의환향한다. 그는 귀국 인터뷰에서 나는 할 일을 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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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낀 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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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이끼 낀 배관'은 전시실에 들어가자마자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아름다운 색감은 밤하늘에 흩뿌려진 별무리를 보는 듯 몽환적이다. 이런 그림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다고 중얼거리는 사람에게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해할 필요 없다고 그냥 보면서 마음에 끌리는 작품이 있으면 좋은 거고 이게 무슨 초등학생 낙서인가 싶으면 아닌 거라고.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 거라고 자주 먹다 보면 좋은 맛을 알게 된다. 나는 미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마음을 열고 계속 보면서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림을 보면서 화가가 치열하게 탐구한 대상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고 단순해 보이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붓질을 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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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추상화이라고 하면 이응노가 떠오른다. 군상을 통해 문자 추상화를 그렸던 이응노는 남관의 문자 추상이 모방이라며 일간지에 비난 기사를 쓴다. 친구였던 두 사람은 그 논쟁으로 앙숙이 되는데 남관은 이외에도 많은 화가들과 싸워서 김환기를 제외하면 안 싸운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응노 미술관을 다녀온 사람으로 왜 그가 남관을 비난했는지 잘 모르겠다. 두 사람의 싸움으로 문자 추상은 보편적 경향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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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에서 미술 공부를 했던 세 명의 작가가 해방과 근대화를 거치며 예술적 지평을 넓혀가는 과정을 '경계에서'라는 시선으로 보고 있는 전시였다. 개인 미술관에서 소장품만 가지고 이 정도 주제를 만들어내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제임스 터렐과 안토니오 곰니까지 모두 봐야 제대로 뮤지엄 산을 즐기는 건데 사정상 여기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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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밖으로 안개가 산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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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서 돌의 정원은 사진만 찍었다. 겨울 뮤지엄 산은 볼 것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뮤지엄 산에는 전시실 외에 종이 박물관도 있다. 뮤지엄 산의 소유주가 한솔 제지인 것을 생각하면 적절한 박물관이다. 파피루스부터 양피지까지 전시되어 있는데 양피지는 가죽으로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보기에 너무 종이 같아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싶었다. 검색 결과 가죽이 맞는데 이렇게나 얇게 가공이 가능하다고?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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