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미상

by 은예진

영화 작가 미상 (2018)

감독 :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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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과 아름다운 소년의 이모가 미술관에서 그림을 관람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1937년 나치 치하의 독일 드레스덴에서는 퇴폐미술 전람회라는 이름으로 독일 현대미술가들의 그림이 전시되고 있었다. 도슨트로 나선 나치당원은 그 그림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세금 도둑인지 설명하며 실랄한 비난을 퍼붓는다. 하지만 이모는 칸딘스키의 그림 앞에서 사실 자기는 이 그림이 좋다고 소년의 귀에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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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이름은 쿠르트 바르너트, 원래 드레스덴에서 살았지만 교사였던 아버지가 나치당에 가입하지 않는 바람에 교외인 그로스쇠나우로 쫓겨났다. 쿠르트를 미술관에 데려갔던 이모 엘리자베스는 드레스덴에서 돌아오는 길 종점에 모여있는 버스기사들에게 부탁해 한꺼번에 경음기를 울리도록 했다. 경음기 소리가 천지를 울리듯 요란하게 들리자 엘리자베스는 눈을 감은채 양손을 들고 황홀경에 빠진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엘리자베스는 총통의 방문에 꽃을 바치는 역할을 하고 마음이 고양되자 흥분을 누르지 못한다. 옷을 모두 벗어버린 채 피아노를 치던 그녀는 쿠르트 앞에서 재떨이로 자신의 머리를 치며 음악과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결국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간 그녀는 나치 의사에 의해 강제 입원된다. 당시 순혈주의에 집착하던 나치는 장애자와 정신 이상자에게 불임 수술을 하고 종국에는 가스실로 보내버렸다.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가스실에서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그녀를 가스실로 보냈던 의사는 칼 시반트였다.


이모를 잃고 청년이 된 쿠르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초원에 부는 바람이 싱그럽던 날 나무 위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던 청년은 세상의 비밀을 깨달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자신은 옳은 것 진실한 것을 찾을 거라고 아버지에게 말한다. 굳이 예술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흥분해서 이야기하는 쿠르트의 모습에서 얼핏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스친다.


나치는 패전했고 그 자리를 차지한 소련에 의해 드레스덴은 독일민주공화국(동독)에 속하게 되었다. 나치에 가입하지 않고 버티다 아내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가입했던 쿠르트의 아버지는 동독 체제 아래서 나치에 부역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다시 교사로 복귀하지 못하고 청소부로 일하다 죄절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다. 쿠르트는 뛰어난 그림솜씨를 인정받아 예술학교를 다니며 '사회주의 리얼리즘' 그림을 그린다.


동독의 체제는 나치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회화에 나를 드러내는 것은 금기시되었고 이데올로기를 위한 수단으로써만 존재했다. 쿠르트는 예술학교에서 이모와 이름이 똑같은 패션 전공생 엘리자베스 시반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의 집에 세 들어 살며 사랑을 나누던 두 사람은 엘리자베스의 임신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쿠르트는 끝내 알지 못하지만 엘리자베스의 아버지 칼 시반트는 이모 엘리자베스를 불임시키고 가스실로 보낸 산부인과 의사였다. 나치가 패망하고 소련 군대가 들어오면서 체포되었지만 용케도 빠져나와 다시 동독에서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로 영예를 누리며 살고 있다.


칼 시반트는 탐탁지 않은 쿠르트의 아이를 임신한 딸에게 가차 없이 낙태 수술을 시행한다. 하지만 자신이 과거 나치 치하에서 행한 악행이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두 사람을 결혼시키고 본인은 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노동 계급의 결속을 그린 역사박물관 벽화가 인정받아 승승장구하게 된 쿠르트지만 자아를 억누르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더는 견딜 수 없어져 그도 엘리자베스와 함께 서독으로 탈출한다.


이 영화는 쿠르트가 나치와 동독 치하를 거쳐 서독에서 자신의 예술혼을 완성해 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3시간의 긴 이야기는 쿠르트가 아버지에게 예술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옳은 것 진실한 것을 찾아갈 거라고 했던 말의 여정을 보여준다.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는 영화 '타인의 삶'으로 예술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줬던 사람이다. 예술 없이도 인간은 얼마든지 살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을 좀 더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다. 아름다운 것을 삶을 구원한다.


서독의 예술 학교에 입학한 쿠르트는 자아를 억압하던 곳에서 지나치게 자아가 비대한 곳으로 떨어져 버렸다. 예술학교에서는 회화는 이미 죽었다고 보며 온통 전위 예술이 판을 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작업들이 난무하는 곳에서 쿠르트도 그런 작업들을 시도하며 자신의 길을 찾으려 애쓴다.


쿠르트의 비범함을 눈여겨본 카스파리 교수가 그의 작품들이 얼마나 허깨비인지 알려준다. 카스파리 교수는 지방과 펠트 천에 천착하는 사람이었다. 학생들이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작업을 비웃었다. 카스파리 교수는 누구에게도 해주지 않았던 말을 쿠르트에게 한다. 자신이 전쟁터에서 죽음의 위기를 맞이했을 때 그곳 사람들이 자신을 펠트천으로 싸매고 화상 입은 머리에 지방을 문질러 살려 주었다고. 자신의 삶에 있어서 오로지 펠트천과 지방만이 진실이라고 말이다. 그날 밤 쿠르트는 자신이 서독으로 와서 했던 어설픈 작업들을 모두 태워 버린다.


이 영화의 제목이 '작가 미상'인 이유는 마침내 쿠르트가 찾은 길에서 등장한다. 이 장대한 이야기에서 그것마저 써버리는 것은 어쩐지 예의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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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기타리스트 조정치에게 홍대에서 음악하고 있는 청년이 이 길이 정말 자기 길인가 고민스럽다고 했다. 그러자 조정치가 고민하는 사람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고 했다. 음악은 힘들고 어려운 여정인데 고민한다면 아닌 거라고 그 길에서 버티는 사람들은 유명해지건 아니건 그게 좋아서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길이 아닌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하는 거라고 말이다. 예술이란 그렇게 하는 것 아닐까?


지독하게 가난했던 화가의 그림을 보며 그가 얼마나 가난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자 동행한 사람이 답했다. 얼마나 좋으면 그런 환경에서 그림만 그릴까? 열악한 환경에서 예술혼이 빛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진실한 작품을 만들어내고 만다.


영화에서 쿠르트는 숫자에 대해 말한다. 3, 5, 12, 22, 26, 31여섯개의 숫자를 나열하면 아무 의미가 없지만 그 번호가 로또 당첨번호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갑자기 번호가 다르게 보인다고. 쿠르트가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서사가 아닐까 싶다. 아무 의미 없는 대상에 서사가 생기는 순간 우리는 대상을 다르게 본다. 서사가 자칫 감정팔이로 흐르면 신파가 되어 버리지만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서사가 필요하다. 위의 그림이 누구에게는 그냥 사진의 모사일 뿐이지만 쿠르트에게는 삶의 진실을 담은 그림이다. 하지만 쿠르트는 관람자들에게 그 내용을 감춘다. 그건 오직 쿠르트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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