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과 일출

by 은예진

요양보호사가 하루 세 시간씩 친정 엄마를 보살피고 아버지는 그 시간 잠깐 당신 볼일을 보셨다. 그런데 엄마의 치매 증세가 심해지면서 아버지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엄마는 요양보호사에게 계속 아버지가 어디 갔는지 묻고 찾았다. 엄마는 아버지랑 교외로 점심을 먹으러 가고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쌍화차를 마시면 그저 행복했다. 하지만 여든다섯의 아버지는 힘에 부치는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주간보호센터를 알아보셨다고 했다.


1765777727309.jpg


그동안 주간보호센터를 두 군데 정도 가봤는데 하얀 머리에 텅 빈 눈빛의 노인들을 보고 눈물을 삼켰다. 우리 엄마는 그분들에 비해 너무 젊었다. 아버지는 머리를 흔들며 당신이 조금 더 엄마를 돌보겠다고 했었다. 그랬던 아버지가 나서서 주간보호센터를 알아보셨다고 하니 때가 된 것이다. 엄마 지인이 추천한 곳과 요양보호사가 추천한 곳을 돌아본 아버지가 맘에 드는 곳을 골랐다며 전화를 하셨다. 자식들이 한 번 보고 결정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셋째가 반차를 내서 같이 출발했다. 부모님과 점심을 먹은 뒤 기다려 둘째까지 합류 세 자매가 아버지가 골라놓으신 주간보호센터에 들어갔다. 방문 시간이 오후 세 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음식 냄새가 훅 하고 덮쳤다. 들어가자마자 셋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엄마 이런 곳에 못 보내.' 그걸로 끝이었다. 우리 집 대소사 결정권은 셋째한테 있다. 셋째는 아버지를 닮아 자기 맘에 들지 않는 꼴을 보지 못한다. 나라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아버지가 좋다면 그냥 편하신 대로 하라고 할 것이다.(그게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에너지가 부족해 충돌을 피하는 거다.) 하지만 셋째는 그곳을 나와 바로 전에 가본 시설 좋은 곳으로 차를 돌렸다.


주간보호센터를 위해 새로 지은 건물은 겉보기에도 좋아 보이는 곳이다. 내부는 이미 봐서 알고 있는데 동생들이 들어간다고 해서 나는 차 안에 있었다. 어쩐지 자리가 없지 않을까 싶었다. 동생이 자리가 있다며 상담 시작한다고 연락해서 나도 들어갔다. 엄마의 적응에 대해 걱정하자 보내기만 하시면 센터에서 적응은 얼마든지 시켜준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적응을 위해 조금씩 시간을 늘려볼까 했는데 센터는 무조건 처음부터 오전 8시에서 오후 4시 30분까지 프로그램대로 보내는 것이 낫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루틴을 만드는 것이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엄마가 적응하는데 더 도움일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다음 주부터 엄마를 주간보호센터에 보내기로 하고 돌아왔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당장 다음 주 월요일부터 주간보호센터를 보내겠다고 요양보호사에게 말하자 그는 1월까지만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1월까지 일하면 고용보험과 퇴직연금이 달라지니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 모질게 말할 수없었다. 그래서 센터에 연락하니 그곳에서는 남은 자리가 두 자리인데 2월까지 차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며 기다려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요양보호사가 이기적이라고 화를 냈다. 지역이 있는 둘째가 전화를 돌리다 양쪽의 공격에 토할 것 같다며 하소연이다. 요양보호사도 주간보호센터도 돈 때문에 엄마를 가운데 두고 설전을 벌이는 것이다.


요양보호사가 선을 넘고 말았다. 엄마가 절대 주간보호센터에 금방 적응하지 못한다며 자기가 돌보며 적응시켜야 한다고 호언장담했다. 그건 어쩌다 들여다보는 자식들은 엄마에 대해 제대로 모른다는 무례가 깔린 말이었다. 그 말에 우린 요양보호사를 배려하려 했던 마음이 식어 버렸다. 아무리 선의로 하는 말이라도 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 아버지가 엄마를 주간보호센터에 데려다주셨다. 처음인데 7시 40분에 모시러 온다는 말에 아버지가 아침 먹고 느긋하게 데려다주셨다. 매일 집 근처 복지관에서 한 시간씩 노인 대학을 다닌 엄마는 새로운 복지관이라는 말에 따라나섰고 즐겁게 적응하고 계시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센터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중간에 들렸는데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엄마는 치매의 다음 단계로 들어섰다. 엄마의 해는 조금씩 조금씩 바다를 향해 떨어져 가고 있다. 일몰의 순간이다.


주간보호센터와 요양보호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한주를 보낸 나는 주말에 아기를 만나러 무창포로 향했다. 연말에 아기를 한번 더 보고 싶어 한 남편의 바람대로 딸이 중간쯤에 숙소를 잡았다. 덕분에 우리는 올해가 가기 전에 아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1765779326657.jpg



십오개월된 아기는 갑자기 낯가림을 한다고 했다. 돌 전에 낯가림을 하다 이제 사람들을 좋아하던 아기는 다시 낯을 가리기 시작했다. 엄마 품에 안겨 숙소로 들어온 아기가 울음을 터트린다. 낯선 장소, 낯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고 울음이 터졌다. 하지만 내가 사가지고 간 자석 블록에 금방 시선이 꽂혀 잘 논다.


아기는 신이 나서 블록을 쌓아 올리다 쓰러 트리고 숙소 문에서 베란다까지 가장 긴 거리를 가로지르며 후다닥 뛰어다닌다. 내복만 입은 아기는 볼록 나온 배와 빵빵한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헤헤헤 웃는다. 언제 울었냐는 듯이 잘 웃는다.


나는 서둘러 저녁을 먹고 딸에게 자리를 양보한 뒤 아기와 앉았다. 아기들은 으레 그렇듯 화장대 밑 구석진 공간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거기서 서면 머리를 부딪히는데 내가 그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아기가 벌떡 일어섰고 쿵 소리가 났다. 순간 내가 아기를 잡아당겼다. 머리를 부딪친 아기가 놀랐을까 봐 진정시키고 품에 꽉 안았다. 따듯하고 포근하며 부드러운 곰돌이 인형 같은 아기가 내 품에 담쏙 안겼다. 아기는 울지도 않고 내 품에서 새근새근 숨을 쉬었다. 나는 아기의 정수리에 내 턱을 올린 채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아기의 숨소리를 귓가에서 들을 수 있었다.


"어? 걔가 어지간해서 허용하지 않는 자세인데?"


밥을 먹던 딸이 우리 둘을 보고 한마디 한다. 내가 손을 내려놓자 아기가 일어서며 씩 웃는다. 잘 웃는 우리 아기는 아픈걸 쉽게 잊어버린 모양이다. 엄마와 아빠를 할 줄 알고 사물 인지학습용 병풍에서 배와 나비를 구분할 줄 안다. 바나나 그림을 보면 손으로 집어다 먹는 시늉을 하고 코와 손, 발을 구분할 줄 알며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사랑해요를 하고 예쁜 짓을 하라고 하면 검지 손가락을 뺨에 대며 정말 예쁜 척을 한다. 한때는 귀여운 강아지 같았는데 병풍을 보며 나비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나비를 찾고 배를 찾는 모습이 이제 강아지보다 나은 것 같아 보인다.


아기는 날마다 조금씩 성장하며 더욱더 환한 빛으로 자라고 있다. 그리고 이 아이도 삼 개월만 있으면 아빠 품을 떠나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 엄마가 주간보호센터에 적응하듯 손녀는 어린이집에 적응해야 한다. 삶의 시작과 마지막이 이렇게 닿아 있는 듯한 느낌에 생각이 많아진다. 무창포에서 본 일몰의 순간 붉은 항아리 같은 해가 수평선에 닿자 일출의 순간과 겹쳐 보였다.


------


일주일간 주간보호센터를 다닌 엄마를 모시고 세신을 다녀왔다. 탕 안에서 엄마는 센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눈빛에 생기가 돈다. 옆에 있던 할머니 한 분이 어디 좋은데 다녀오신 모양이라며 참견을 한다. 엄마는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이전 19화친구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