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찾기

by 은예진

멀쩡한 날은 없지만 그렇다고 견디기 어려울 만큼 아픈 건 아니다. 그러니까 이만하면 살만하다는 소리다. 이번에는 이 평온이 얼마나 갈지 알 수 없지만 평온한 시기가 왔을 때는 기꺼이 즐겨야 한다. 나는 연인을 보내며 질질 짜지 않고 good goodby 안녕은 우릴 아프게 하지만 우아할 거야라고 하는 화사처럼 지난했던 시간에게 작별을 고하고 뒤돌아섰다. 이 마음이 어디서 꺾여 넘어질지 몰라도 지금 당장은 happy new year!


나, 68년생 원숭이띠, 환갑이 눈앞에 있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을 미루면 영영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자 갑자기 연락이 끊긴 친구 생각이 났다. 문득문득 그 친구가 보고 싶어 검색을 해보기는 했지만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sns 같은 건 하지 않는 모양이다. 몇 년 전 갑자기 고등학교 동창들이 밴드를 만들어 초대받았었는데 거기에도 없었다. 보고 싶은 마음과 지금이 아니면 너무 늦을 것만 같은 생각에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 친구를 찾을 방도가 정말 없을까?


임땡땡이와 친구가 된 건 고등학교 1학년때였다. 어떻게 친구가 된 건지 몰라도 친구가 별로 없는 나는 그 친구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청주는 나름 도청 소재지라 변두리 군지역에서 좀 산다 하는 집은 청주로 고등학교를 보냈다. 그 친구의 집은 괴산이었는데 인삼농사를 짓고 아버지가 나름 농협조합장을 하는 있는 집 자식이었다. 할머니와 오빠가 먼저 청주에 와 있다 친구까지 합류했다.


이과인 친구와 나는 2,3학년때는 같은 반이 아니었지만 어쩐 일인지 꾸준히 친구사이였다. 임땡땡의 오빠는 먼저 건대 수의학과에 갔고 그녀와 나는 같은 대학교에 들어갔다. 친구 집에서는 제법 괜찮은 주택을 사서 할머니와 그녀가 살 수 있게 해 주다 나중에는 괴산에 있던 둘째 오빠를 그 집으로 보냈다. 오빠는 당시 블록공장을 운영했었는데 갑자기 급사하는 바람에 친구의 가족을 멘붕에 빠트리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학습지 회사에 다녔고 식품가공학과를 졸업한 그 친구는 대학원에 갔다. 이 년쯤 후에 친구는 같은 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남자친구와 결혼해 대전으로 이사 갔다. 남자친구는 보험회사에 취업했었다. 나는 그녀의 신혼집에도 놀러 갔던 기억이 있다. 임신을 하면 자궁경관무력증에 애를 먹던 친구는 몇 번의 유산을 겪었다. 후에 임신기간 내내 누워서 지내며 어렵게 아들을 낳았다. 둘째도 아들을 낳았던 것 같기도 한데 정확한 기억이 아니다. 그리고 거기서 끊겼다.


왜 끊겼는지 잘 모르겠다.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었고 나는 남편과 전쟁 같은 시기를 보냈다. 육아에 정신없던 친구가 나한테 제대로 연락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당시 친구가 중요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자 내가 암에 걸렸고 이후로 사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환갑을 앞에 둔 할머니가 되었다. 지금 찾지 않으면 끝내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 친구의 소식이 꼭 알고 싶었다.


가만있자 어떻게 하면 친구 소식을 알아낼 수 있을까? 궁리하던 나는 건대 수의학과를 나온 친구의 오빠 생각이 났다. 내가 그 친구 오빠를 다른 친구와 소개팅 시켜줬던 기억이 났다. 그 오빠가 당시 옥산에서 대동물병원을 차려 소를 진료했는데 엄청나게 바빴다. 한 달에 구백만 원 정도를 번다는 오빠는 숨 돌릴 틈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연애를 할 수 없다는 오빠에게 내가 당시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던 다른 친구를 소개해줬다. 그리고 오빠가 바쁘다는 소리는 다 핑계임을 깨달았다. 동사무소에 있던 친구한테 반한 오빠는 날마다 꽃다발을 들고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 오빠 키가 너무 작다는 이유로 동사무소 친구가 거절했다. (이후 그 친구의 결혼이 탐탁지 않았던 나는 지금까지 친구를 구박했다. 너는 내가 인생을 바꿔줄 수 있었는데 거절한 바보다. 이 XX야.) 동사무소 친구가 거절하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임땡땡이를 찾느라 애쓰지 않았을 텐데 여러모로 아쉽다.


동사무소 친구 이제는 구청 과장이 된 친구에게 톡을 보냈다.

너 그때 그 수의사 오빠 이름 기억하냐?

하~ 얼굴도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네! 미안하게도.


혹시나 싶었던 나는 그럼 그렇지 싶었다. 나라도 기억하지 못할 거다. 대학 때 같이 다닌 남자동기가 내 동생을 만나 나랑 잘 아는 척했다는데 그가 누구인지는 기억났지만 이름은 끝내 떠올리지 못했는데 소개팅 한 번 한 남자 이름이 기억날 리 없지. 그렇다면 나는 충북 도내에 있는 동물병원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 오빠 지금도 옥산이나 청주 인근에서 소를 진료하지 않을까? 그렇게 서치를 시작했고 동물병원 명단에 원장 이름까지 있는 리스트를 발견했다. 소를 진료하고 임 씨인 원장님이 드디어 레이다에 걸렸다.


딱 한 명이었다. 그런데 사진까지 나왔는데 너무 늙었다. 이 오빠 설마 이렇게 늙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아닐까? 그 오빠 맞을까? 고민하던 나는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두근두근두근 드디어 전화를 받는다.

모모 동물병원 임모모 원장님이실까요? 여쭤볼 말이 있는데 혹시 동생이 임땡땡이 아닌지?

저는 동생이 없는데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한 모양이네요.


오빠의 동물병원을 서치 해볼 생각을 했을 때 나는 나름 신박한 생각이라고 좋아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이렇게 되자 오기가 났다. 모교에 교직원으로 있는 사촌오빠한테 연락을 해서 혹시 졸업생 명부 같은 것이 있나 물었다. 오빠는 졸업생 명단은 교직원에게 막혀 있어서 열람불가능이란다. 그럴 줄 알았지.


뭔가 여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마지막으로 고등 동창 밴드에 나를 초대했던 대학 동기에게 연락했다. 그녀도 고등동창이며 경제학과에 같이 들어갔다. 당시 경제학과는 남학생이 구십 명 가까이 되고 여학생은 아홉 명이었다. 그것도 엄청 늘어서였다. 우리가 입학할 때 사 학년에는 여학생이 한 명 있었다. 내가 입학한 87학번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거였다. 입학했던 여학생 아홉 명이 휴학생 한 명 없이 같이 졸업했는데 연락이 끊긴 여덟 명을 수소문해 모은 동기였다. 그 동기라면 임땡땡이를 찾아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이렇게 적극적일 일이 아닌데 이상하게 한 번 시작하자 멈출 수 없었다.


너라면 임땡땡이를 찾을 수 있을 거 같아서 연락했다는 말에 동기는 이번 주말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모임이 있단다. 이과 친구들도 제법 된단다. 나는 굽신굽신 동기에게 임땡땡이의 소식을 부탁했다. 그리고 주말이 되었다.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그 동창들이 밴드를 만들었던 주력 멤버들이었는데 밴드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은 거기에 연락이 닿는 친구가 없다는 소리 아닐까? 동기에게서는 아직 연락이 없다. (나의 고등학교 동창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서울대 치대를 나온 치과의사 이수진이다. 인플루언서가 된 치과의사다.)

나는 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찾는다고 연락을 계속 이어갈지 어떨지도 모르는데 궁금하다. 우리 낼모레 환갑인데 너는 어떻게 나이 들었니? 나는 이렇게 나이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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