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루틴

by 은예진

routine이라 함은 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통상적인 순서와 방법이라고 사전에 명기되어 있다. 그런데 이게 약간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는 판에 박힌 일상이라는 말로 쓰일 수도 있다. 우리 몸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는 곳은 뇌다. 그러니까 뇌는 항상 에너지 사용을 아끼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래서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형성되면 생각하지 않고 자동으로 움직인다. 우리가 몸을 움직일 때 일일이 그걸 다 생각하고 움직인다면 엄청난 에너지가 들것이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몸의 고유감각을 상실한 크리스티너의 이야기가 나온다. 말초신경에서 중추신경으로 향하는 흐름이 상실되어 몸의 감각을 잃은 크리스티너는 재활로 극복했지만 자신의 몸을 눈으로 보고 인식해서 행동을 상기해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로봇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뇌가 자동으로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면 감탄할 수밖에 없다.


본능이 시키는 일 그러니까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일은 행동하기 쉽지만 몸에 좋으라고 일부러 하는 일은 자동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강박적으로 날마다 하고 있는 일들은 하고 났을 때 성취감 이상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균형 잡힌 몸매와 건강한 생활을 하는 인플루언서가 자신의 루틴을 소개한다면 받아들이기 쉽겠지만 나처럼 매일 어딘가 아픈 사람이 소개하는 루틴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오죽하면 가족들이 그렇게 열심히 관리하면 뭐 하느냐고 혀를 찰까. 하지만 관리에 집착하기 때문이 이만큼이라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따뜻한 물에 유산균을 먹고 요가 매트를 깐다. 티브이를 켜고 유튜브 화면으로 들어가 다노언니의 '2024 버전 new 눈뜨자마자 스트레칭'을 클릭한다. 10분 45초짜리 스트레칭을 보면서 따라 한다. 예전에는 천만 조회수의 전버전을 했었는데 중간에 어지러워서 중단했다 새로 시작할 때 2024 버전으로 바꿨다. 단순히 동작을 따라 하는데 그치지 않고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아 집중한다. 흉내만 내는 것과 집중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놀러 가서도 아침에 스트레칭을 하자 동생이 보고 그래봤자 기지개하고 다를 게 없다고 과소평가했다. 하지만 10분씩 하는 기지개는 없을뿐더러 몸 구석구석을 풀어주지도 못한다. 딴생각하며 그냥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동작에 몰입해야 한다. 이건 루틴이지만 루틴에 맡겨놓으면 동생 말대로 기지개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시작은 루틴으로 하되 동작은 날마다 새롭게 느껴야 한다. 그러면 겨드랑이, 목빗근, 햄스트링, 옆구리가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퇴근하면 청소기를 돌리고 저녁밥을 짓는다. 남편이 퇴근해서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나면 8시가 넘는다. 이를 닦고 나가는 시간은 대략 8시 30분 정도다. 어쩌다 나는 살고 있는 아파트의 같은 라인 사람들에게 유명한 운동인이 되었다. 여름에 38도가 넘어가는 무더운 날에도 나가고 바람이 창을 들썩이게 만드는 날에도 나가며 한파 주의보가 뜬 날도 어김없이 나가는 나를 보며 다들 혀를 내두른다. 담배를 피우러 들락거리는 아래층 아저씨는 나를 볼 때마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 살고 싶어서 그렇게 열심히냐고 무례하게 묻는다. 나는 근육 운동이 아닌 걷기는 그다지 효과적인 운동도 아니라며 손을 내젓는다.


한 시간 동안 아파트 단지를 세 바퀴 반 정도 걸으면 등이 흠뻑 젖는다. 평지가 아니라 경사로인 우리 아파트 단지는 걷기에 그다지 편한 코스가 아니다. 덕분에 겨울에도 땀이 난다. 이렇게 걷는 동안에는 어지럼증도 두통도 어지간한 방광 통증도 잊어버린다. 그리고 잠들기가 훨씬 수월한 상태가 된다. 그 시간 동안 걷지 않으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리모컨을 들고 오락가락하는 일밖에 없다. 특정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도 않으면서 넷플릭스와 쿠팡 플레이를 전전하다 보면 한 시간은 쉽게 간다. 비가 많이 와서 그렇게 보낸 날은 잠이 쉽게 오지도 않고 잡생각만 꼬리에 꼬리를 문다.


걷기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씻고 나면 알로에 젤을 들고 거울 앞에 앉는다. 핸드폰으로 유튜브에서 뽀따TV 림프마사지 편을 재생시킨다. 이것도 스트레칭과 비슷하게 10분짜리다. 뽀따 언니는 김미경 강사의 동생인데 나랑 동갑이지만 훨씬 젊어 보인다. 물론 이 영상이 2019년에 제작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알로에 젤을 손끝에 묻히고 그녀의 손동작을 따라 한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채 귀뒤에서 목빗근을 따라 내려가 쇠골 안쪽을 마사지하기 시작하면 신기하게 트림이 올라오며 속이 편해진다. 손가락은 턱에서 시작해 이마까지 얼굴 전체에 림프관을 열어주고 노폐물을 쇄골 안쪽 처리장으로 모아준다. 림프마사지를 해서 뽀따 언니 말대로 맑고 환한 피부 톤과 부종 없는 브이라인, 부드러운 인상을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루의 마무리를 긍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하다.


어떤 날은 늦잠을 자서 십 분이라도 아껴야 하고 어떤 날은 정말 걷기 싫을 만큼 덥거나 추운 날도 있고 몸이 너무 힘들어서 얼굴 따위 살피기도 싫은 날이 있다. 그런 날도 꾸역꾸역 해야 할 일을 한다. 생각 따위 필요 없이 일단 시작하고 하면서 생각한다. 그리고 몸과 마음의 평온을 얻는다. 그러므로 나를 살리는 루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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