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주리 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

by 은예진

한국 프랑스 수교 140주년 기념 오랑주리 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기간 2025년 9월 20일 ~ 2026년 1월 25일


건물입구.jpg

지난가을 시작된 전시를 막바지에 다녀왔다. 이렇게 특별한 전시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 머뭇거리는데 1월 1일 아침부터 움직이니 예술의 전당까지 삼십 분 걸렸고 전시 내내 한가하게 볼 수 있어 관람을 위해서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세잔의사과.jpg

세잔 하면 사과 아니겠는가. 전시를 관람하고 나서 집에 돌아온 나는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을 봤다. 영화 속에서 세잔은 모델을 서는 사람들에게 '너는 사과야, 사과는 움직이지 않아!'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사과가 세계를 움직인 삼대 사과라고 하니 이 사과는 특별한 사과되겠다.


3,000원에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하려고 했으나 h포인트에서 앱을 통해 2,000원에 가이드를 판매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전시장에 갈 때는 반드시 이어폰을 가져가야 한다. h포인트를 통해 구입한 오디오 가이드는 계속해서 들을 수 있으므로 작품 이해를 위해 돌아와서도 되풀이해서 듣고 있다.


전시는 총 여섯 가지 세션으로 나뉘어 있다.


section 1.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 거장, 르누아르와 세잔

르누아르와 세잔 모두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르누아르는 섬세함과 조화로움이 돋보이며 세잔의 작품에는 엄격함과 기하학적인 표현이 주를 이룬다.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보이는 소년은 어릿광대 옷을 입은 클로드 르누아르의 모습이다.


르어릿광대옷을입은클로드.jpg 어릿광대 옷을 입은 클로드 르누아르


코코라고 불렸던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막내아들인 클로드는 이 작품 외에도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도 등장한다.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던 르누아르는 전사작업이 등장하며 일자리를 잃고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보불전쟁으로 파리가 봉쇄된 시기 르누아르는 사람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당시 르누아르가 그린 무도회 풍경을 보고 샤르팡티 부인이 가족 초상화를 의뢰한다. 이때 르누아르가 그린 '샤르팡티에 부인과 자녀들' 그림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놓는다. 살롱전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이 작품 덕분에 이후 르누아르는 부유한 집안 자제들 그림을 그리며 어렵지 않은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샤르팡티에 부인과 자녀들' 그림을 보면 어린 두 소녀의 곱실거리는 금갈색 머리와 흰색 레이스가 달린 푸른색 원피스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그 옆에 누워있는 보더콜리까지 모든 게 완벽한 모습이다. 누구라도 이런 초상화를 갖고 싶었을 것이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와 불화하고 세상과는 더욱 담을 쌓고 살던 세잔과 다르게 르누아르의 붓질에는 다정함이 있다. 아마도 그는 그림 속 색채만큼이나 밝은 성격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다.


Screenshot_20260102_140915_NAVER.jpg 세잔 부인의 초상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에서 보면 액상프로방스 출신인 세잔은 중학교 교과 가정인 콜레주 부르봉에 다니며 그곳에서 에밀 졸라를 만난다. 둘의 우정은 파리 시절까지 이어졌고 에밀 졸라가 세잔의 살롱전 낙선에 대한 비난과 작품 옹호 글을 쓰며 더욱 친밀해졌다. 영화에서는 에밀 졸라가 세잔을 모델로 한 '작품'이라는 소설 때문에 두 사람이 결별하게 되는 과정을 극적인 충돌로 묘사했다.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충돌한 것 같지는 않고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시간이 흐르면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이므로 그런 과정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갈등이 과장되기는 했지만 영화는 세잔의 작품을 실사로 볼 수 있는 장면이 등장해서 눈 호강을 시켜준다. 현란한 색감과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전시실의 감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section 2. 야외에서

1874년 인상주의 전시 이후 두 화가는 변화하는 자연, 시시각각 바뀌는 빛의 효과를 포착하기 위해 야외에서 작업했다. 인상주의가 등장하게 된 것은 이동하기 간편한 야외용 이젤과 튜브 물감이 만들어지고 나서라고 하니 역시 문물의 발명이 앞서야 다음에 문화가 바뀌는 게 아닌가 싶다. 첼로도 엔드핀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다리 사이에 끼우고 연주했었는데 앤드핀이 생기고 나서 바닥에 첼로를 고정하면서 첼리스트들의 기량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올라갔다고 한다. 새로운 문물은 문화를 바꾼다.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에서 세잔이 튜브 물감에 반색하는 장면을 보고 약간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때 튜브 물감이 처음 나왔다는 것을 들으니 이해되었다.


르바다풍경건지섬.jpg

르누아르 바다 풍경, 건지섬


내가 좋아하는 소설 '건지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 보면 건지섬이 독일 점령지가 되었던 이야기가 나온다. 건지섬이 속한 채널제도는 영국과 프랑스 해협 사이에 있다.


건지섬위치.jpg

건지섬을 검색해 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항구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세계 제2치 대전 당시 영국 영토 중 유일하게 독일 치하로 넘어갔던 건지섬은 프랑스와 더 가깝다. 르누아르는 당시 인상주의 화법을 버리고 자신만의 길을 찾느라 고민하던 시기였다. 그는 세잔의 구도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잔붉은바위.jpg 세잔 붉은 바위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에서는 액상프로방스 지역의 채석장이었던 붉은 바위가 있는 길에서 에밀졸라와 세잔이 우정을 나누는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 속 붉은 바위는 황톳빛으로 붉게 빛났다. 세잔은 인상파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카미유 피사로에게 야외에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고 하늘과 붉은 바위, 초록 나무로 화면을 분할해 붓질한다.


section 3. 정물에 대한 탐구

르누아르의 정물은 풍부한 색채에 부드러운 붓놀림으로 생동감 넘치는 정물화를 그렸다. 반면 세잔은 여러 각도에서 정물을 관찰해서 다양한 각도를 하나의 화폭에 담아내는 불안정한 구성으로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했다. 이러한 세잔의 도전이 피카소를 비롯한 입체파를 출현에 모태가 되었다.


르누아르의 정물을 보기 편한데 그리는 르누아르도 마음 편하게 그렸다고 이야기한다. 인물을 그리는 것과 다르게 쉬고 싶을 때 가벼운 붓질로 그렸다는 정물들은 보는 이들도 쉴 수 있게 해 준다.


르누아르꽃다발.jpg 꽃다발

르누아르의 꽃다발에는 꽃병에 비치는 창문과 그 창문의 빛을 향해 활짝 핀 개양귀비 꽃이 아름답다.


세잔스푸단지가있는정물.jpg

세잔 수프 그릇이 있는 정물

세잔의 카미유 피사로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은 그림이다. 수프 단지 뒤에 있는 그림은 카미유 피사로가 그린 '지조르 거리'다. 이 그림으로 인해 세잔이 인상파에 합류했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르누아르복숭아.jpg

르누아르 복숭아


세잔사과와비스킷.jpg

세잔 사과와 비스킷


같이 있던 세잔의 사과는 다른 그림이었으나 세잔의 사과가 너무 많은 나머지 찾지를 못했다. 세잔이 사과를 매일 그려 썩을 때까지 그렸다는 이야기는 유명한데 '사과의 비스킷' 그림에도 노란빛 사과와 썩은 사과가 같이 있다. 르누아르의 복숭아가 보기 좋지만 세잔의 사과가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section 4. 인물을 향한 시선

르누아르의 인물이 아름다운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안다. 책받침부터 노트 표지까지 우리는 르누아르의 아름다운 여인들을 수도 없이 많이 봤다. 르누아르는 그림을 의뢰하는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만큼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다. 화가로서 명성을 얻고 평탄한 삶을 살았지만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고통받았으며 말년에는 손가락에 붓을 묶거나 입으로 물고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래서 후기 인물들은 붓터치가 투박하고 거칠어졌다. 그럼에도 르누아르는 고통은 지나가도 아름다움은 영원히 남는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르피아노치는소녀들.jpg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


이 그림은 조금씩 다른 여섯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의뢰인이 그만큼 특별했던 사람인 듯싶다.


르놀고있는클로드르누아루.jpg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클로드 루누아르


세잔화가의아들.jpg

세잔 화가의 아들


르누아르와 세잔이 각각 자신들의 아들을 그린 그림이다. 두 사람이 대상에 대해 그린 그림을 보면 모델에게 화가가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느껴지는 것 같다. 르누아르는 아들의 평소 모습을 여러 장 스케치해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을 잡아냈다. 하지만 세잔은 의자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등장시키지 않았고 아마 아들의 생활에는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세잔은 아내 오귀스탕과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아들의 신분 보장을 위해 결혼했고 그 아들 폴은 세잔의 그림을 관리하고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잔은 세상 사람들과 벽을 쌓고 살았으며 아내도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다. 그저 모델로 쓰기 좋아 관계가 유지되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세잔 곁을 지켰던 아내는 세잔이 죽고 나서 돈을 펑펑 쓰며 사치스러운 말년을 보냈다니 진정한 승자다.


section 5. 폴 기욤의 수집

Screenshot_20260103_110145_NAVER.jpg 케스 반 동언 폴 기욤

오랑주리 미술관은 오렌지 온실이라는 뜻으로 루브르 궁전의 오렌지 나무 보호용 온실이었다. 오랑주리 하면 모네의 수련 연작으로 유명하지만 폴 기욤의 수집품도 다수 전시하고 있다. 폴 기욤이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고 기념으로 그린 게스 반 동언의 그림 속에 푸른색 양복을 입은 남자는 누가 봐도 부유하다. 폴 기욤의 수집품으로 등장하는 그림들이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 세잔의 '사과와 비스킷' 등이다. 폴 기욤은 부유한 집안 출신이 아니라 자수성가한 부자라고 하는데 시인 아폴리네르의 도움으로 당대의 많은 화가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고 한다.


section 6. 피카소가 사랑한 두 거장

피카소천을두른누드.jpg

피카소 '천을 두른 누드'


마지막 세션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피카소의 나부가 등장한다. '천을 두른 누드'는 신체의 비틀린 움직임은 미켈란젤로로부터 왜곡된 형태는 장 오귀스트 앵그르로부터 목욕하는 여인의 자세는 르누아르로부터 영향받았다. 특히 르누아르의 인물 표현에 영향을 받은 그는 르누아르의 누드화를 다수 소유하고 있었다. 세잔의 입체주의와 르누아르의 섬세함은 피카소의 그림에 녹아들어 있다.


각 세션에 내가 등장시킨 그림들은 그 세션에 걸려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었던 그림들이 많다. '사과와 비스킷'은 피카소 세션에 있었고 '화가의 아들'은 폴 기욤의 세션에 걸려 있었다. 나는 편의를 위해 세션과 상관없이 그림을 올렸다.


전시장을 빠져나오며 르누아르와 세잔의 작품 중 가장 좋은 작품을 하나씩 고르라면 무얼 고를까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뻔한 답이 나왔다. 르누아르의 그림은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답을 좀 바꿨다. 르누아르는 인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졌으므로 인물화가 좋고 세잔은 엄격하게 화면을 분할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장면에 집중했으므로 자연 풍경을 그린 그림이 좋다고 생각했다.


특기는 잘하는 것이고 취미는 좋아하는 것이다. 나는 마땅한 취미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취미라고 할만한 것이 생겼다. 그림을 보고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다. 전시장에 가는 것은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가고 싶을 때 언제나 갈 수 있으며 혼자 하기에 부담이 없다. 시간과 돈에 구애받지 않고 같이 할 사람을 찾느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니 이건 정말 나한테 딱 맞는 취미다.


오디오 가이드를 다시 들으며 돌아오는 길에 맥도널드에 들려 슈슈버거 세트를 샀다. 한 해의 시작이 만족스러웠다.



매거진의 이전글수원시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