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차니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펴냄
책을 펼치면 책의 저자 사진이 먼저 보인다. 노아 차니는 단발 정도 되는 긴 머리에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지저분한 느낌은 아닌 수염을 기른 얼굴에 반팔 면 셔츠를 입고 있다.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댄 그의 사진을 보면 금방이라도 활달하게 이야기하며 다가올 것만 같은 격식을 차리지 않는 자유 분방함이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책의 첫머리에 자신이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강의하러 갈 때 자신을 그곳으로 부른 교수보다 그곳에 데려다준 택시 기사가 자신의 글을 더 잘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 말 한마디로 이 책이 어떤 지향점을 가졌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노아 차니는 쉽고 대중적인 미술 안내서를 만들기 위해 최대한 눈높이를 미술관 초보자와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미술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약간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미술관에서 발행하는 브로셔는 대부분 그들만의 언어로 작성되어 있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이 패션지에 실린 글을 보며 보그 병신체라고 비웃는 것처럼 미술관에서 발행하는 글은 전문적인 미학 언어로 점철되어 있다. 내용의 문제라기보다는 특유의 문체가 있다. 미술계 사람들끼리 보는 학술지라면 이해하겠는데 미술관 브로셔는 관람자용인데도 복잡한 미학적 문체로 작품 설명을 한다. 그런데 또 일반인용 미술 입문서는 대단히 쉬운 문체와 설명으로 출간된다. 최근에 읽은 '미술관에 간 할미' 같은 책을 보면 쉽다 못해 가볍다. 그 가벼움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 대중이 어떤 수준의 글을 원하는지 미술관에서도 알 텐데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노아 차니는 쉽지만 가볍지 않고 미술관 앞에서 괜히 주눅 드는 사람들에게 그럴 필요 없다며 손을 내밀고 있다. 전에 전자책으로 읽을 때는 가볍게 읽었는데 종이책으로 다시 읽자 조금 더 깊이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책을 두 번 읽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 이 책은 두 번 읽을 가치가 있을 만큼 좋은 책이다. 아니 시간 날 때마다 계속 읽는다면 한 학기 미학개론 강의를 듣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이 책을 읽은 이후 시험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에는 익혀두면 앞으로 미술을 이해하는데 쓸 수 있는 지식이 너무 많다.
유럽 박물관과 성당에 가서 보게 되는 숱한 성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그게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그냥 볼뿐이다. 그런데 노아 차니가 정리해 준 표 하나만 외우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열쇠 두 개와 거꾸로 뒤집힌 십자가가 등장하면 그 성인은 베드로다. 대머리에 검이 등장하면 바울이며 무수한 화살에 맞은 모습은 세바스찬이고 청금석과 푸른색 안료로 채색한 옷을 입고 있으면 성모 마리아다. 막달라마리아는 긴 금발에 향유병을 들고 있고 베일을 쓰고 있다. 이런 식으로 외워두면 쓸모가 많을 지식인데 문제는 내가 유럽에 가지도 않을 것이며 시험도 보지 않는 것이다. 유럽 미술 여행을 간다면 외워서 잘난 척할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성인의 상징은 외워서 쓸모가 없지만 미술 사조는 외워두는 것이 앞으로 다른 책을 보거나 그림을 보면서 도움이 될 텐데 이건 아직 헷갈린다. 동굴벽화 - 화병그림 - 로마 벽화 -로마네스크 - 고딕 - 플랑드르 - 초기 르네상스 - 전성기 르네상스 - 매너리즘 - 바로크 - 테네브리즘 - 로코코 - 낭만주의 - 신고전주의 - 사실주의 - 인상주의 - 후기 인상주의 - 야수주의 - 미래주의 - 입체주의 - 모더니즘 - 미니멀리즘 - 절대주의 - 다디이즘 - 초현실주의 - 추상표현주의 - 팝아트 - 포토리얼리즘 - 포스트모더니즘. 여기까지다. 아무래도 이 목록을 훑다 보니 내가 이 책을 두 번 읽은 게 맞나 싶게 생경하다. 아무래도 멀었나 보다.
회화가 끝나면 조각도 있다. 거기까지 여기서 거론하기에는 벅차다. 11장으로 구성된 책은 5장 조각의 역사까지는 미술사에 관해서 다루고 있고 6장부터는 노아 차니의 전문분야인 미술 범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전반부에 비해서 후반부는 흥미가 떨어진다. 미술 범죄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임에 틀림없는데 저자는 대단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어서 저급한 호기심을 보이는 나를 실망시킨다. 그로써 책은 조금 더 품위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미술 관력 서적은 결론적으로 마지막에 같은 질문 앞에 설 수밖에 없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현대 미술 앞에서 당신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이 정도 지식을 익혔다면 엉터리 같은 작품 앞에서 엉터리라고 말해도 된다고 저자는 시원하게 일갈한다. 이제 주눅 들지 않아도 되니까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느낀 대로 말해도 된다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까지 그렇게 엉터리 같은 작품은 본 적 없다. 초보 관람객은 대부분 검증을 거친 작품 전시를 보게 되기 때문 아닌가 싶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가다 보면 주관이 생길 거고 그러다 보면 이게 정말 좋은 작품일까?라는 의문이 드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미술관 여행의 목표는 엉터리 작품을 만나는 날까지라고 잡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