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립미술관

어차피 이정표대로 가도 거긴 안 나와

by 은예진


청주에는 국립현대미술관청주가 있어서 시립미술관의 존재가 자칫 묻힐 수 있다. 청주시립미술관은 서원구에 있는 본원을 제외하고도 대청호와 오창 전시관이 있으며 미술창작 스튜디오도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내가 청주에 살던 시절 청주가 교육 도시로 불리는 것에 대해 자조했지만 고향을 떠나보니 이해가 되었다. 타 지역에서 대학 진학률은 내가 청주에서 체감하던 것보다 훨씬 낮아서 깜짝 놀랐다. 청주는 교육 도시 맞았었고 이왕이면 교육과 함께 문화도시로 불릴 수 있으면 더 좋겠다.


현재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는 <어차피 이정표대로 가도 거긴 안 나와> 2025.11.27 ~ 2026.2.18 전시다. 명절연휴 마지막 날까지 전시가 진행되니 막바지에 이른 전시를 보고 왔다. 청주는 언제나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가는 곳이니 틈을 내서 다른 일을 하기가 쉽지 않다.


미술관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퍼블릭아트라는 미술 월간지를 구독신청했다. 온라인 전용으로 신청했는데 잘 보지 않게 된다. 그리고 1년 구독 신청 기념으로 보내준 종이책 과월호 한 권을 들고 다닌다. 나도 내가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미술책은 종이책인 것 같다. 아니 사실 모든 책은 종이책이다. 어쩔 수 없다. 종이책이 가진 물성을 포기할 수 없는 나이다. 똑같은 내용을 읽어도 종이책으로 읽어야 진짜 같다.


퍼블릭아트에서 청주시립미술관의 <어차피 이정표대로 가도 거긴 안 나와> 전시에 대한 안내글을 읽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 먼저 세워둔 이정표를 따라가며 삶의 방향을 가늠한다. 그 표식이 안전한 경로를 보장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불확실한 현재를 견디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정표가 정말 우리가 도착하고자 했던 장소로 안내하는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확신하기 어렵다.'


청주시립미술관에서는 80년대생 작가 여섯 명의 (강민규, 김남현, 김윤호, 류재성, 박한샘, 이혜선) 전시회를 기획하며 결과물로서의 작품이 아닌 예술가라는 길 위에 놓인 개인의 인터뷰로써 작품의 서사를 만들었다. 그래서 각 작가의 소개 영상을 설치하는 것뿐만 아니라 '작가에세이'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전시의 큐레이팅 방향이 과정을 중요시 여기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작품이 1층부터 3층까지 중구난방 전시된 것은 좀 파격적이다 못해 혼란스러웠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 저기 저기 뒤섞여 있는 전시는 지금까지 본 여타의 전시와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정말 어차피 이정표대로 가도 거긴 안 나온다고 삶은 예측할 수 없으므로 서로의 경험을 겹쳐 본다는 기획 의도인 것인지 궁금해지는 전시였다.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고개를 들어야 볼 수 있도록 높게 설치된 류재성의 회화 작품이다.



개별 그림으로서의 감상보다 그림이 배치된 위치와 구도가 더 눈에 들어오는 방식이다. 어차피 그림 내용은 이해가 불가능하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당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고 하니 그걸 관람자가 알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작가는 그리기와 지우기를 반복하며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 흔적으로써 작품을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흔이면 불혹이라며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던 세상은 저 멀리 흘러가버렸다. 80년대생 40대 작가들은 이제 그저 시작점을 조금 지났을 뿐이다. 작가는 행로에 있고 나는 그 행로에 잠시 멈춰 그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류재성의 회화에서 고개를 돌려보면 약간은 기괴한 김남현의 작품이 보인다.


김남현은 '사회 속 개인이 겪는 내적 긴장을 결박된 인체 형상으로 드러내며, 전체와 개인, 구속과 자유라는 오래된 질문을 현재형으로 환기한다, '고 설명한다. 억압과 고립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에는 나의 눈이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한샘은 여행하며 마주한 풍경을 수묵화로 그린다. 관람자는 그의 여행지에 초대받은 듯한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낯익은 풍경은 안도감을 주고 시선은 고요히 머무른다.


'토왕성 폭포'라는 제목의 그림이 천장에 매달려있다. 물줄기가 밑으로 쏟아져 내리듯 그림이 머리 위에서 맴돈다. 나는 반복적인 터치가 들어간 자연의 모습을 볼 때 명상할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그의 수묵화도 그렇게 반복되는 풍경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청풍호의 봄날이 박한샘의 캠퍼스 안으로 들어갔다. 호숫가를 흔드는 바람 소리가 스며 나오는 듯하다.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그림은 관람자를 잠시 쉴 수 있게 해 준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고래였다. 강민규의 고래는 아름다워서 계속 주변을 맴돌게 만든다.

모자가 헤엄치는 고래, 예쁜 분홍 고래등 다양한 고래가 있었지만 몸을 돌려 물속으로 들어가는 이 고래가 가장 아름다웠다. 작가에세이를 제일 길게 쓴 강민규는 3D모델링 툴을 이용해 이 작업을 하던 당시의 고충을 설명했다. 이후 조교를 하게 되면서 대형 작업실을 쓸 수 없게 되자 광섬유 작업으로 옮겨갔다.


광섬유로 만든 고래의 모습도 몹시 아름다웠지만 대체적으로 그의 작품은 약간 팬시한 느낌이 있다. 광섬유 작품 케이스에 소녀라든가 기구 같은 것들이 너무 예쁘게 보여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분 작가에세이에 작품 제작의 애로 사항을 너무 구구절절 써서 안타까워 보였다. 미술관 측에서 쓰라고 하는데 쓰긴 써야겠는데 하면서 술 한잔 마시고 시작한 듯한 느낌적 느낌. 작품 만들기보다 에세이 쓰기가 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1층 전시실을 나와 계단을 오르면 김윤호의 작품이 보인다.


김윤호는 자신의 일상 경험을 통해 영감을 얻고 그 영감을 발전시켜 오브제로 만든다. 여가를 위해 배드민턴을 치다 점점 빠져들며 그 경험을 통해 '경계와 자유' '관계와 생성' 이라는 사유의 틀을 만들었다. 누구나 자신이 열과 성을 바쳐하는 일에 인생이 담겨 있다고 공언한다. 골프를 열심히 치는 사람은 골프 안에 인생이 담겼다고 하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달리기에 인생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처럼 배드민턴을 치면서 그 안에서 사유를 발전시킨 작가의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면 그 안에서 도를 발견하게 될지어니.....


마지막 3층에서 마주한 풍경은 발렌시아가 패션쇼 같은 풍경이었다. 패션디자이너 이혜선의 폐텐트 천으로 아름다운 옷을 만들었다. 미적 욕망과 지속 가능한 생산을 꿈꾸는 디자이너의 실험이 눈여겨볼만했다.


페스트 패션이 대세가 되면서 빨래 대신 새 옷을 산다는 사람까지 봤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이런 세상을 마주하고 말았다. 이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들 중 옷 쇼핑을 끊겠다고 선언하던 이가 있었다. 사서 한 번도 입지 않고 버려지는 옷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 옷들은 저렇게 산처럼 쌓여 끔찍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이혜선은 이런 시대 패션 디자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는 중이다.


어떤 작품은 과도해 보이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고개를 갸웃거리게도 만들지만 우리가 미술관에 가는 이유는 그러한 흔들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안전하고 익숙한 인상파 그림이나 근대 화가의 작품만 보려고 하는 것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영역을 축소시킨다. 미술관에 갈 때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내 인식의 지평을 넓히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젊은 작가들의 과도기적 작품도 관람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정표대로 가도 거기는 나오지 않지만 어딘가에는 도착할 것이다. 그곳이 어디인 줄은 모르지만 말이다. 몰라서 흥미로운 것이 우리 인생이고 예술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이라는 작품을 완성해 가는 작가일지도 모르겠다. 그 작품의 완성도는 어느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어떤 인생은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신선하고 어떤 인생은 완성도는 높지만 진부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인생을 만들고 싶은가? 아차피 이정표대로 가도 거긴 안 나온다고 말하는 표지판 앞에서 나는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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