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과 샹들리에
날씨가 따뜻해지고 꽃이 피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가기가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날이 좋으면 청계산에 들어가 있는 서울대공원부터 그 많은 시설들에 사람이 몰려들 것이 뻔하다. 어떤 책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들어가는 길에 길게 늘어선 차들이 한 시간째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풍경을 묘사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래서 날이 좋아지기 전에 서둘러 길을 나섰다. 3월은 어디나 할 것 없는 비수기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도 조용했다. 더군다나 오늘은 흐린 하늘에 비가 질금거렸다.
일요일 오전 아홉 시에 출발하자 미술관까지 사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미술관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수도권에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깨달았다. 전시는 대부분 서울과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고 우리 집에서 주요 미술관 어디를 가도 한 시간 이상 걸리지 않는다. 이렇게 또 청계산 꼭대기까지 올라가 만난 미술관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었다. MMCA 해외명작: 수련과 샹들리에 (2025.10.2~ 2027.1.3) 전을 보러 나섰다. 이번 전시는 보기 전에 예습을 많이 했다. 미리 팸플릿을 다운로드하여 읽었고 전시 해설도 들었다. 미술관측에서 돌린 보도자료가 실린 잡지도 읽었다.
복습과 예습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림을 먼저 보고 자료를 읽을 때는 자연스럽게 그림을 상기하며 채워나가는 느낌이다. 그런데 자료를 먼저 보고 그림을 볼 때는 일종에 확인을 한다. 내가 본 자료와 그림의 차이는 생각보다 커서 약간의 혼란이 생기고 그 갭에 당황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습이 조금 더 나은 듯싶다. 가령 아이 웨이웨이의 '검은 샹들리에'는 사진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디테일이 있다. 설명을 듣고 읽으며 샹들리에가 척추, 장기의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지만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눈앞에 '검은 샹들리에'를 직접 보는 순간 그로테스크한 모습에 입이 벌어졌다.
척추뼈와 해골, 장기, 그리고 알 수 없는 동물의 머리뼈로 이루어진 검은색 샹들리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밝은 빛을 내뿜는 화려한 샹들리에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샹들리에 하면 밝고 화려한 파티장의 천장을 장식하는 불빛을 떠올리는데 아이 웨이웨이는 반어적인 의미로 샹들리에를 사용했다. 밝은 이면은 어둠, 죽음을 연상시키는 해골과 뼈의 연결이 관람자들을 멈칫하게 한다.
아이 웨이웨이는 중국 출신의 현대 미술가로 사진, 설치, 영상, 건축, 회화, 공공미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작가들을 미술계에서는 개념 미술가라고 부른다.
"개념미술에서는 생각이나 관념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 된다. 예술가가 예술의 관념적 형식을 사용할 때, 그것은 모든 계획과 결정이 미리 만들어지고 실행은 요식행위임을 의미한다. 생각이 예술을 만드는 기계가 된다." - 개념미술 작가 솔 르윗
개념미술은 눈앞에 보이는 작품보다 작품 자체가 내포하는 의미가 중요하다. 현대미술의 많은 부분이 개념미술이고 그 시작을 마르셀 뒤샹(그 유명한 변기 '샘')으로 보고 있다. 사진이 발명되면서 회화가 설 자리를 잃게 되자 미술계에서는 실제 모습보다 의미를 담은 미술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 대부분의 미술 작품들은 직관적으로 해석해 내기 어려운 개념미술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런 정보 없이 예술 작품을 대하면 당황스러운 경우가 많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 '수련과 샹들리에'라는 것은 인상파의 상징인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과 개념미술 작품인 '검은 샹들리에'를 대치시켜 보여주면서 두 작품 사이의 100년이라는 시간성과 그에 따른 이질감을 통해 우리가 미술 작품을 관람함에 있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 돌아보게 만들어준다.
화가가 되지 않았다면 정원사가 되었을 거라고 말했던 클로드 모네는 지베르니에 집을 짓고 아름다운 정원을 일궜다. 연못이 있는 땅을 추가로 매입해 물의 정원을 만들 당시만 해도 모네는 수련을 그릴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저 수련이 좋았을 뿐이다. 모네는 물의 정원 구석에 있는 벤치에 앉아 명상을 즐기던 어느 날 수련을 통해 황홀경을 맛보고 급하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수련 연작이 250점 정도 된다고 한다. 모네의 수련하면 오랑주리 미술관에 있는 수련 대장식화를 떠올린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가로 폭이 6미터 최대 17미터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 오랑주리 미술관에 있는 수련을 생각했던 나는 이 조그만 그림을 보고 잠깐 실망했더랬다. 실망은 잠시 그림 앞에 놓인 벤치에 앉아 있으려니 모네의 붓질을 실제로 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압도적인 수련도 궁금하지만 모네의 수련을 이렇게 마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3,000원으로 5,000만 달러가 넘는 그림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은 감격스러운 일이다.
사진의 출현으로 단순한 풍경을 그리는 것이 의미 없음을 깨달은 화가들이 빛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인상파다. 이후 현대 미술로 넘어가면서 작품의 외형적인 완성도보다 의미에 더 초점을 두는 개념미술의 시대가 열렸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 이후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에서 시작해 '검은 샹들리에'까지 한자리에서 돌아볼 수 있는 전시는 꽤나 의미 있었다. 특히 나는 인상파의 대부라 불리는 카미유 피사로의 그림에 관심이 있었다. 세잔이 존경하는 화가였기도 하고 어디에나 그의 이름이 등장하지만 정작 카미유 피사로만을 다룬 글은 없다. 어쩐지 성실한 화가지만 이야깃거리는 부족한듯한 느낌이다. ' 퐁투아즈 곡물시장'을 보면서 그런 느낌이 조금 더 강하게 들었다.
뚱뚱한 모나리자로 유명한 페르난도 보테로, 바바라 크루거, 마르셀 뒤샹, 엔디 워홀,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마르크 샤갈 등 다양한 작가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지만 내 눈길을 가장 오래 붙잡은 것은 안젤름 키퍼의 '멜랑콜리아'였다. 안젤름 키퍼는 전후 독일 작가로 나치즘을 비판하고 홀로코스트 피해자를 애도하는 작품을 만들어왔다.
'멜랑콜리아'는 채도가 낮은 갈색과 회색, 푸른색의 물감을 배경에 두껍게 칠하고 그 위에 납을 부어 거칠고 우울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리고 가운데 다면체는 알프레히트 뒤러(1471~1528)의 '멜랑콜리아'에 등장하는 뒤러의 불완전한 정팔면체를 인용한 것이다.
우주의 어떤 황폐한 행성의 표면을 그린듯한 이 그림은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예습을 하고 갔기에 이런 알 수 없는 그림으로 실존적 우울, 시대의 우울을 표현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었음에도 막막했다. 어쩌면 그 막막함 자체로 멜랑콜리아가 완성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수련과 샹들리에 전은 이렇게 끝났다. 전시장을 나오자 피로감이 엄습했다. 나는 카페테리아로 가서 바닐라 라테를 마시며 생각했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은 미술품을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네 시간은 소요된다고 하는데 도저히 갈 수 없겠다 생각했다. (흠~ 비행기도 열 시간 이상 타야 하는 파리에 갈 수 없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인데 ) 아직 전시관을 두 군데 더 들려야 하는데 우선 쉬어야 할 것 같다.
명절 연휴에 아프고 나서 조금만 움직이면 쉽게 지치고 힘들다. 체력이 바닥이라 쉽지가 않다.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따라 돌아서면 엄청난 전시가 기다리고 있다. '신상호; 무한 전시'는 어떤 예술가의 작업 일생 60년을 부감으로 내려다보며 여행한 기분이었다. 그건 다음 편에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나누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