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립 아람미술관

by 은예진

사람은 목적 없이 움직이는 게 쉽지 않다. 출근길 고속도로 진입로를 스쳐가는 순간 핸들을 돌려 그곳으로 빠져나가는 상상을 해보지만 이후 갈 곳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상상 속에서도 목적지는 있어야 달릴 수 있다. 미술관은 그런 내게 목적지를 만들어주었다. 주말 오후 혼자 집을 나설 수 있는 목적, 갑자기 주어진 휴식의 순간 무얼 할지 고민이 필요 없게 만들어준 것이 미술관 여행이다. 나는 언제든 잠시 일상을 벗어나 떠나고 싶은 순간 갈 곳이 있다. 그건 이기적 이게도 내가 필요할 때만 찾아도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마음 넉넉한 연인 같은 존재다.


이번에 찾은 곳은 고양아람누리 시립 아람미술관이다. '크고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의미의 아람누리에는 오페라극장, 음악당, 미술관등의 시설이 자리 잡고 있어서 문화예술을 위한 복합단지다. 청주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는 문화제조창이 있고 대전에는 둔산대공원이 있어서 그곳에 한밭 수목원을 비롯해 시립 미술관, 예술의 전당, 미디어큐브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시립미술관이 있는 곳에 가보면 대략 그 도시의 규모와 문화 예술에 대한 지자체의 관심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땅값만 비싼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도 시립미술관이 빨리 생길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고양시립 아람 미술관에서는 20세기 그래픽아트의 거장 '마르크 샤갈전'(2025. 10. 29 ~ 2026. 02. 28)이 열리고 있었다. 이번 전시회는 유화나 드로잉도 한두 점 있으나 대부분 판화 작품으로 삽화로 쓰인 그림들이 주를 이룬다. 1887년, 러시아의 작은 유대인 마을 비테프스크에서 태어난 샤갈은 종교적 전통과 가족들의 유대감 안에서 성장했다. 샤갈이 평생 그리워한 비테프스크는 게토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의 활동을 제한하기 위해 만든 거주지역으로 그곳에서 샤갈의 생활이 그렇게 넉넉하거나 자유롭지 못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갈은 평생 공동체적인 삶을 살던 비테프스크를 그리워했다. 그의 대다수 그림에 고향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십 대 시절 나는 윤동주와 샤갈을 사랑했다. 윤동주의 결벽적인 자아성찰을 흠모했고 샤갈의 몽환적 색채와 사랑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흘렀고 이제 다 옛말이 되었다. 윤동주도 샤갈도 두터워진 내 감정의 굳은살을 뚫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번 예술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샤갈전도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놓치고 말았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정우철 도슨트의 1월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라는 동영상에서 고양시립 아람미술관에서 샤갈전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길을 나섰다.


이번 전시회는 총 여섯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다. 판화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에칭도 있지만 석판화가 많았다. 샤갈의 석판화는 보통 그림 하나를 제작하기 위해 스물다섯 장 정도의 판화를 제작해 각기 다른 색을 찍어낸다. 그는 평생 1000여 점의 판화 작업을 했는데 복수 제작이 가능한 이점으로 삽화로 쓰여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 사랑을 노래하다

첫 번째 섹션인 '사랑을 노래하다'에 들어서면 꽃다발이 관람자를 반긴다. 연인의 다정한 모습과 꽃을 그리기 즐겨한 그의 그림 속에 봄날의 햇살 같은 화사한 사랑이 보인다.


라넌클러스


이 그림은 라넌클러스라는 꽃이름이 제목으로 붙어있다. 다정한 연인과 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나는 어째서 남편이 꽃을 사 오면 그렇게 신경질이 날까 모르겠다. 그 꽃의 물을 갈아주고 물을 자주 갈지 않으면 줄기가 물러 썩은 내가 나고 시든 꽃은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하는데 나는 꽃을 받는 순간 그 모든 일을 생각한다. 더군다나 그 비싼 꽃 값인 카드값을 신경 써야 하는 사람도 나라는 사실은 어쩔 수 없다. 더는 윤동주와 샤갈에 심장이 떨리지 않는 사람인 거다. 그럼에도 샤갈의 꽃다발은 아름다웠다.


꽃다발 그림을 거쳐 나가면 '다프니스와 클로에' 속 샤갈의 그림이 보인다. 나는 전시를 보러 가기 전에 먼저 '샤갈의 다프니스와 클로에'를 읽어보았다.


기원전 2~3세기에 활동한 그리스의 작가 롱고스가 쓴 '다프니스와 클로에'는 레스보스 섬의 미틸레네라는 고장을 배경으로 부잣집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소년소녀가 양부모 아래 자라며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로미와와 줄리엣', '춘향전'등을 연상시키는 이 어린 연인의 풋사과 같은 사랑은 보는 사람을 웃음 짓게 하다가 그 에로틱함에 놀라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가 '춘향전'을 원작으로 읽으면 너무 노골적이라 당황하고 마는 것처럼 롱고스는 덜 자란 청춘이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성애에 눈뜨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서술하는데 샤갈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그림으로 보조를 맞추고 있다.


연인의 모습이라고 하면 샤갈만큼 사랑스럽게 표현할만한 화가가 없는데 사랑이야기의 원형을 그리는 소설이라니 너무나 적절한 조합이었다. 책을 읽어보면 염소 치기 다프니스와 양치기 클로에는 거의 만날 때마다 옷을 벗는다. 살색이 많이 등장하는데 너무 어려서 그다음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허둥거리는 것이 꽤 사실적이다. 서툴러서 더 아름다운 것이 첫사랑 아니겠는가. 서툴 수 있는 기회에는 마음껏 서툴어야 한다. 그 또한 미덕이다.


첫날밤


모든 역경을 헤치고 마침내 결혼한 다프니스와 클로에는 첫날밤을 맞이하고 자신들이 염소와 양을 치며 님프의 동굴에서 옷을 벗고 했던 일들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 환상의 세계에서

어린 시절 비테프스크에서 서커스에 매료되었던 샤갈은 어릿광대나 서커스 단원들의 모습을 자주 등장 시켰다.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의뢰를 받아 서커스 삽화 판화집을 기획했지만 그가 죽고 나서 중단되었다가 1962년 테리아즈가 다시 프로젝트를 되살렸다.


꿈과 상상력이 풍부한 세상을 그리던 샤갈에게 서커스는 대단히 매력적인 소재였을 것이다. 서커스는 화려한 볼거리가 넘치는 환상의 세상이지만 우리는 구경거리가 된 어릿광대나 목숨을 건 기예를 선보이는 곡예사에게서 찰나적인 슬픔을 느끼기도 한다. 샤갈은 환상의 세계에서 그런 서커스의 다층적인 면을 보여준다.


이 어릿광대의 모델은 마르크 샤갈 자신의 모습이다. 사진을 보고 그림을 보면 모델이 화가 자신이었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유대인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서 문득 그들의 코에 시선이 갔다. 대부분 유대인으로 등장하는 배우들의 코가 매부리코였는데 샤갈의 코도 눈에 띄는 매부리코였다. 그리고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유대인들이 매부리코가 많아서 그에 대한 콤플렉스를 없애기 위해 수술이 성행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를 보면 정말 주인공 라즐로의 얼굴에서 코만 보인다.


환상의 세계 섹션에는 '서커스' 이외에도 프랑스 작가인 장 폴랑의 '말썽꾸러기'라는 단편 소설 삽화도 전시되어 있다. 소년의 상상 속 세계를 화폭에 옮겨 놓은 장면을 보면 책 편집자가 샤갈을 섭외한 것은 신의 한 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 소년의 머릿속은 정말 기상천외한 상상으로 가득 찬 모양이다.



# 신에게 다가가다

이번 섹션은 고골의 소설 '죽은 혼'의 삽화다. 사기꾼 치치코프가 지주에게 죽은 농노의 신분을 사모아 사기 행각을 벌이는 이야기다. 고골이 소설을 완성하지 못한 채 불태우고 죽는 바람에 완결본이 출판되지는 못했지만 당시 러시아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치치코프가 벌이고 다니는 사기 행각이 샤갈의 손길을 통해 우리를 만난다.


옷 없이 도망치는 치치코프의 모습에서 이 소설의 결말이 상상된다.


#빛과 색채

1931년 봄, 팔레스타인으로 성지 순례를 떠난 샤갈은 구약성서의 배경을 직접 체험했다. 그 여정은 곧 '성경' 연작으로 발전한다.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의뢰로 시작된 '성경'은 25년에 걸쳐 완성되며 샤갈이 얼마나 예술과 신앙을 치열하게 탐구하였는지 보여준다.


"저에게 성경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들의 영감이 되는 원천입니다. 성경은 어린 시절부터 저에게 영혼의 시야를 채워 주었습니다."


성서 속 낙원


성서 속 천사


민족 공동체 이기도 하지만 종교 공동체이기도 한 마을에서 자란 샤갈에게 종교가 가지는 비중은 막대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얼마 전 셜록 홈스 시리즈 중 '진홍빛 연구'를 읽다 세상 평화스러워 보이는 몰몬교 집단의 폭력성에 대해 읽고 중교의 배타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공동체 안에서 그 종교의 규율을 거부한 자는 결국 죽음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역겨운 기분이 든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간절한 소망이 생기면 기도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그런 면에서 종교는 인간이 간절하게 필요해서 만든 발명품 아닌가 싶다.


# 파리, 파리, 파리

샤갈은 고향 비테프스크를 떠나 러시아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스크에서 미술 공부를 한다. 그곳에서 고갱, 마티스, 반 고흐 등 프랑스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접하고 파리를 꿈꾼다. 마침내 1911년 파리에 도착했다. 색과 리듬을 통해 회화를 음악처럼 표현한 오르피즘을 접한 샤갈은 입체파의 형태 실험, 야수파의 색채 실험을 거치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샤갈에게 프랑스는 곧 예술이었을 것이다. 그는 세계 2차 대전과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지만 1947년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정착한다.


파리는 곧 사랑이다. 제목은 파리의 꿈

비록 '에펠탑 앞의 신랑과 신부'처럼 화려한 그림은 아니지만 이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샤갈의 파리 사랑이 엿보인다. 사랑하는 아내 벨라에 대한 마음만큼이나 파리에 대한 애정도 깊은듯싶다.


#영원한 이방인, 고향을 그리다

이번에는 '오디세이'의 삽화다. '오디세이' 삽화집은 샤갈이 87세에 시작한 작품이다. 그는 97세까지 살았으며 죽을 때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오디세우스 하면 세이렌이 제일 먼저 떠오르지 않는가. 키르케가 알려준 대로 밀랍으로 귀를 막고 기둥에 몸을 묶어 살아남은 오디세우스가 무사히 고향으로 향한다.


'오디세이'의 마지막 삽화는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다. 오디세우스에 페넬로페가 보이지 않아 이거 뭔가 이상한데 하며 한참을 찾아 헤맸다. 내가 방향을 잘못 잡는 바람에 페넬로페의 그림을 찾지 못했다. 오디세우스는 고향에 돌아왔고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을 떨쳐낼 수 있었다.


전시관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나는 다시 첫 번째 '사랑을 노래하다' 섹션의 시작을 알리는 꽃다발 앞에 섰다.

역시 샤갈은 꽃다발과 연인이구나 싶다. 사이좋은 부부가 사별하면 재혼을 더 빨리 한다는 말처럼 사랑 많은 샤갈은 아내 벨라를 잃고 실의에 빠졌지만 새로운 사랑 바바를 만나 행복한 노년을 보낸다. 남프랑스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노년이라니 생각만 해도 바람과 햇살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다. 나는 모 도슨트의 그림 해설을 들을 때면 그가 화가의 삶을 극적으로 보이게 하느라 불행을 과장하는 게 영 거슬린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일을 화가 혼자 겪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걸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예술가가 불행해야 예술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건 우리 모두가 너무나 사랑하는 반 고흐 때문에 생긴 선입견 아닌가 싶다. 사연없는 사람없고 누구나 자신만의 책 한 권은 가지고 있듯 화가의 사연 또한 그 범주 안에 있다. 그들만 더 불행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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