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하우스

by 은예진

<외관 사진을 찍지 못해 2020년에 작성된 the studio ARK 한나 리의 글에서 가져옴>


구 하우스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그저 서종에 이런 미술관이 있는데 좋다는 추천글을 보고 찜해두었다. 서종이라면 테라로사와 내추럴가든 때문에 익숙해서 가는 길이 편하다. 관련글을 읽어보니 우리나라 1세대 디자이너인 구정순 대표가 수집한 30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한 공간이라고 한다. 그런가 보다 하고 들어간 나는 작품의 규모에 깜짝 놀라고 만다. 이건희 컬렉션도 아니고 현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들이 꼼꼼하게 컬렉팅 되어 있었다. 지금 MMCA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으로 핫한 데미안 허스트로 시작해서 내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 작가들이 즐비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도대체 구정순 대표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어마어마한 수집이 가능했을까?


서도호 '문'

시작부터 눈길을 잡아끄는 서도호의 작품이다. 우리나라 동양화의 거장 산정 서세옥의 아들 서도호의 작품이다.

서도호 'tanglel man'


종이로 만든 문과 종이에 실로 박은 작품이다. 사진으로 보면 알 수 없지만 섬세하게 박음질한 선들이 엉켜있다. 그가 만든 환상적인 집들은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넋 놓고 본 적이 있다. 이름이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고대의 작명학을 연구한 그의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서도호의 동생은 서을호 건축가로 지금 성북구에서 아버지 서세옥의 미술관을 짓고 있다.


데미안 허스트' pain full memory', 'trust'


여기서 데미안 허스트를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MMCA서울에서 지금 열리고 있는 데미안 허스트전으로 더욱 핫한 컬러 스팟을 만났다. 이 알록달록한 점들은 알약이다. 그리고 군데군데 붙어 있는 것들은 약포장지와 메스 기타 등등 의료에 관한 것들. 현대 사회가 약으로 불안을 관리하는 시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알약 그림만 1,000점 이상 만들었다고 하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볼 수 있는 곳이 꽤 많겠다 싶다.


데이비드 호크니 'pictures at an exhibition'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이다. 크기가 273.1 X 873.8cm니까 이 작품을 위해 방을 하나 따로 마련해야 하는 수준이다. 사진 드로잉 기법이라고 하는데 다각도로 수백 장 사진을 찍어 합성해서 인물과 오브제를 만들었다고 한다. 등장인물들은 실제로 작가의 지인들로 아티스트, 소설가, 가수, 배우, 운동선수 등이라고 한다. 굉장한 작품이다.


스즈키 유이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말들이 자주 나온다. 주인공 도이치가 괴테 전문가인데 그가 마신 홍차 티백에 괴테의 어록이 쓰여 있는 것부터 연결은 끊임없이 그의 삶 주변에서 일어난다. 관심은 연결을 만든다. 최근에 방문했던 MMCA 과천에서 만난 '검은 나나'는 꽤 인상적이었다.

검은 나나

니키 드 생팔이라는 작가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그녀가 고전적인 여성상에 대해 도전하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만 읽고 넘어갔다.


Lady with handbag

구 하우스에서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어? 나 아는 작품 같은데? 그렇다 이건 '검은 나나'의 니키 드 생팔 작품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고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를 읽고 있는데 거기서 도이치가 니키 드 생팔의 타로 아트북을 읽다가 내려놓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타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계속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니키 드 생팔을 만났고 결국 그녀가 타로카드의 캐릭터를 모자이크 기법으로 조각한 타로 공원에 관한 글까지 찾아 읽게 되었다. 니키 드 생팔 생전에 이십 년에 걸쳐 많은 돈을 들여 만든 아름다운 공원이지만 유지보수 관리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미술 작품들이 작가 사후 국가에 기증되는 이유가 이러한 연유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피칼의 작품

개념 미술을 검색하면 나무 위키에 소피칼이 나온다. 개념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의미부여다. 뒤샹의 '샘'에서 시작된 현대 미술의 의미 부여는 수작업과 묘사의 비중을 줄이는 대신 작가의 해석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개념 미술에 대해 공부하다 알게된 소피칼의 작품을 구 하우스에서 만나다니 여기는 정말 현대 미술 교과서 같은 곳이구나 싶었다. 소소한 일상을 재발견하자는 모토답게 개념미술 작품은 정말 소소했다. 글로 표현된 미술은 전위 무용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나는 이제 이런 작품에서 맥락을 찾지 않는다.


제프 쿤스 '플라스틱 풍선 코끼리'

제프 쿤스도 보고 뮤지엄 산에서 못 본 제임스 터렐도 보고 여기 진짜 장난 아니다.

크리스토 자바체프 over the river, project for the arkansos river, state of colorado

설치미술의 대가 크리스토 자바체프의 작품은 사진으로 본 적이 몇 번 있다. 그가 천으로 뒤덮었던 '베를린, 국회 의사당', '파리, 퐁뇌프 다리', '뉴욕 센트럴파크, 더 게이트'등의 사진이 기억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실현되지 못했다고 한다. 구상에서 끝난 작품의 드로잉이다. 아칸소강을 67.5km 덮으려고 했다니 어마어마한 작품이 되었을 듯싶은데 법률적 문제로 중단된 모양이다.


2025년에 새로 구입한 작품도 있고 구석구석 엄청나게 많은 작품이 있지만 모두 기억하려 하는 것은 욕심일 것이다. 그래서 유명한 작품이라도 제대로 보기 위해 멈추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했다. 개인이 이 정도 작품을 보유하려면 어느 정도 재력이 있어야 하는 걸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나의 종지만 한 그릇으로는 계산이 되지 않지만 자꾸 궁금하다. 지금 오디오북으로 듣고 있는 헤밍웨이의 '파리 스케치'에서 스타인 여사는 옷값을 아껴 그림을 사라고 헤밍웨이에게 충고하는데 흠~ 건물값을 아껴 그림을 사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동생 친구가 팔백만 원짜리 그림을 샀다고 하기에 내가 샤넬백을 사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고 했었는데 스타인 여사가 말하는 그림은 이런 그림인가 보다. 세계적인 작가 그림만 그림은 아니니까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중 서종을 등지고 나아가는 길의 오른쪽에는 북한강의 윤슬의 반짝거렸다. 강 저편으로 겹겹이 자리 잡은 산의 색감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나는 그림 속을 향해 달리는 기분이었다. 귀한 그림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강했는데 돌아오는 길의 풍경까지 더해지니 더할 나위 없는 기분이었다. 구 하우스가 서종에 자리 잡은 연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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