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해외여행

일상다반사

by 은예진

나는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다. 내가 해외에 나가보지 않았다고 하면 다들 뭐 하고 산거냐고 놀란다. 내 나이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임에서 패키지로 다닌다. 나는 모임이 없고 연차도 없는 직장을 다니다 보니 어쩌다 이렇게 됐다.


남편이 영업직에 있을 당시 인센티브로 부부동반 동남아 여행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딸이 갓난아기 때라 그냥 버리고 말았다. (반드시 남편이 포함되어야 하는 여행권이라 부모님을 드리지도 못했다.) 여행을 정말 좋아했다면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어도 무슨 수를 쓰든지 갈 방도를 마련했겠지만 나는 특별히 해외에 나가고 싶은 욕구도 없었다.


딸이 대학에 들어가서 홍콩을 시작으로 여기저기 여행 다니는 것을 보니 그건 참 좋았다. 딸이 내 몫까지 즐겁게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내가 해외여행을 가보지 못한 것에 대해 동생은 딸이 무신경한 거라고 하지만 나는 추호도 아이와 같이 여행 갈 마음을 먹어보지 않았다. 딸은 딸이 즐거운 사람들과 다니는 게 맞다.


올해 일본을 여섯 번 가기로 마음먹었다는 동생이 첫 번째로 일본에 교환학생을 다녀온 조카와 히로시마 여행을 기획했다. 골프광인 동생은 일본으로 골프를 치러 다닐 계획인데 양심상 한 번쯤은 가족과 관광을 다니고자 마음먹었단다.


그 소식을 알리다 보니 다른 동생의 아이가 올해 군대 가는데 엄마랑 여행 한 번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결국 어쩌다 보니 둘째 동생과 군대 갈 아이, 셋째 동생의 딸, 아들이 모두 가는 여행이 되었다. 그리고 덤으로 나를 끼워줘서 패키지에 가까운 인원수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해외여행이 계획되었다. 해외여행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었지만 막상 계획이 잡히자 신이 났다. 약사인 올케가 준 영양제 덕분인지 어지럼증도 좋아져서 컨디션도 회복이 되어 떠나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뭐든지 미리 준비하기 좋아하는 나는 샘플 화장품과 여행지에서 가지고 다닐 가방도 사고 온라인 면세점에서 맥 립스틱과 마리끌레르의 저렴한 귀걸이도 사놓고 기대감에 차 있었다. 27일에 출발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어제 아침 급작스러운 어지럼증이 다시 찾아왔다.


동생에게 비행기 취소 위약금을 묻자 8만 원 플러스알파라고 한다. 왕복 비행기표가 231,000이니 손해가 그리 큰 건 아니었다. 그런데 어제 수요일에 취소를 하나 금요일에 취소를 하나 똑같으니 좀 기다려보자고 한다. 나는 사실 비행기값은 그냥 날리더라도 좀 기다려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어지간해서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아닌데 이번 여행은 정말 꼭 가고 싶었다. 나이 들어서 가는 첫 해외여행을 할 생각에 두근거렸다. 비행기를 오래 타야 하는 동남아 쪽은 자신 없지만 일본은 제주도와 큰 차이도 없는 곳이니 마음에 부담도 없고 좋았다.


어제보다 덜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어지럽다. 이 어지러움은 하루 이틀에 좋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안다. 그럼에도 억지스럽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라고 생각하며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가고 싶다. 포기하면 슬플 거고 포기하지 않으면 힘들 거다. 무엇을 선택하든지 나는 좀 힘들 것이다. 그래서 이왕이면 가서 힘들기를 선택했다.


제발 무사히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민폐가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이렇게 변변찮은 몸으로 살아가는 게 많이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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