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진료실에 들어간 나는 왼쪽에 이석증이 왔었고 전정 신경염이 재발했으며 오늘 아침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자 천장과 바닥이 뒤집혀 버렸다고 말했다. 검사를 마친 의사가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몸이 이모양입니까? 이렇게 자주 이석증이 오는 건 백 퍼센트 과로입니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나왔다.
"그냥 숨 쉬고 사는 게 힘드네요."
"허허....."
"제가 오늘 비행기를 타야 했는데 여기와 있습니다. 비행기값을 고스란히 날렸지요."
나도 모르게 한탄이 새어 나옸다. 순간 의사가 너무 안 됐다는 표정으로 어휴 어쩌나를 연발한다.
그렇다, 나는 그렇게 가고 싶다고 했던 첫 번째 해외여행을 결국 떠나지 못하고 이비인후과 병원에서 이석 치환술이나 받고 있어야 했다.
의사는 전정신경염에 대해서 다리 한쪽이 잘려 나간 거라는 표현을 했다. 잘린 다리는 다시 회복할 수 없다. 당신이 적응해야 하는데 조금만 컨디션이 나빠지면 바로 올라오는 거다. 나도 알고 있던 바다. 전정신경염이 발발하기 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다리 한쪽이 잘려 나간 것 같다는 비유는 조금 슬펐다.
여행을 포기하면 나머지는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다. 어지럼증이 심하면 디아제팜과 보나링정을 더 자주 먹으며 조심하면 된다. 방광 통증이 오면 즉시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어지럼증은 그렇지 않다. 그런 면에서 방광 통증에 우울증 약을 처방하는 것이 필요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석치환술을 받고 병원 앞 오일장에서 귤과 가래떡을 사서 잠깐 동물병원에 들렀다. 월요일까지 휴무라고 써 놓았던 안내문을 떼어 박박 찢어 버리고 잠시 쉬었다. 이석 치환술을 받으면 더 어지럽기 때문에 좀 쉬어야 한다.
집에 돌아와 장에서 사 온 가래떡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먹고 리클라이너 소파에 기대앉아 졸았다. 어지럼증에 쓰는 약들은 모두 졸리다. 이제 너무 많이 먹어서 적응이 되어 심하게 졸리지는 않지만 눈꺼풀이 무겁기는 하다.
시계를 보니 동생들은 비행기에서 내릴 시간이 되었다. 지난번에 자매들과 엄마를 모시고 제주도를 갔을 때 참 좋았더랬다. 아마 그래서 이번 여행을 더 가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크리스마스 때부터 좋아져서 한 달간은 어지럽지 않고 편안했는데 하필 여행을 앞두고 이렇게 다시 망가지다니 참 아쉬웠다.
입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려는 자학적인 말들을 꾹꾹 눌러 참았다. 도움이 되지 않는 부정적인 말들을 함부로 내뱉지 말아야 한다는 것쯤은 아는 나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