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를 시작합니다. 쥬하 스터디!
기획. 여기저기 쓰이는 단어다. 대학에서는 광고 기획을 했다. 그리고 처음 일을 시작한 곳에서는 소셜 미디어를 기획했다. 이후엔 더 큰 단의 광고 캠페인을 기획했고, 패션회사에서는 시즌 캠페인을 기획했다. 그러고 보니 브랜드 회사에서도 기획을 했다. 정확히는 브랜드 매니저였지만, 이도 기획이다.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콘텐츠를 기획했고, 때로는 운영기획도 했다. 현재는 IT회사에서 기획일을 한다. 범주를 좁혀보자면 서비스기획이고, 어떻게 보면 사용자 경험 기획?
기획이라는 단어보다 더 두루뭉술한 건 없다. 내 방을 꾸미려고 인스타의 방꾸미기 사진을 북마크 하는 과정도 '마이룸기획'의 레퍼런스를 모으는 단계 아닌가. 그러나 하나 확실한 건, 기획은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획은 사고의 과정이다. 몸의 근육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운동을 일상화하는 것처럼, 기획을 잘하기 위해서는 '사고 근육'을 키워야 한다. 자주, 뇌를 자극해주어야 한다.
회사의 J가 몇 명을 모아 기획자 스터디를 하자고 제안했다. 격주에 한 번씩 하나의 제품(서비스)을 주제로 각자의 관점을 담아 글을 적는 것이다. 글을 서로 공유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사고가 확장될 수 있는 기회다.
경험은 당연히 중요하다. 특히나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러나 경험은 어딘가에 축적되어야만 빛을 발할 수 있다. 뭐 굳이 적지 않아도 뇌 속에 오래 남는 똑똑이 들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우리는 보통 인간 아닌가. 김영하 작가의 말을 빌리고 싶다. "초월의 경험은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야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 언어로 옮겨진 후에야 비로소 그것은 '생각'이 되어 유통된다."
말이 길었지만, 2주에 한 번씩 하나의 제품을 주제로 글을 쓸 거라고 선언하는 거다. (글은 거창하고 메모 수준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들이니 옳고, 틀린 건 없다. 그냥 느낀 대로 적고 일부러 이 공간에 잡아두는 것이다.
판교에서 시작한 중고거래 서비스가, 이제는 60대 울 엄마도 쓸 정도로 핫한 서비스가 됐다. 최근 1-2년 새 갑자기 J커브를 그리고 있으며 폭발적인 성장으로 여기저기 VC의 투자를 얻어내고 있다.
동네가 만들어 낸 신뢰라는 단어
당근마켓은 중고거래 플랫폼이다. 그리고 동네를 기반으로 시작한 서비스이다. 브랜드 네이밍만 봐도 그렇다, 당신 근처의 마켓.
그렇다면 당근마켓에서는 중고거래라는 키워드가 중요할까, 동네(지역) 키워드가 중요할까? 이건 아묻따 '동네'다. (온전한 내 생각) 동네라는 단어는 참 다양한 것들을 가능하게 한다. 한국에는 특이한 문화가 있다. "어디 출신이에요?", "ㅇㅇ지역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같은 고향 나온 아무개가 되는 순간 그 둘의 관계에서 일단 신뢰는 깔고 들어간다. 괜히 한번 더 챙겨주게 되고, 저놈이 나를 배신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조차 않는다.
그래서 당근마켓에서 동네는 300%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동네로 깔린 신뢰는 타 플랫폼에서 붉어지는 문제들을 단번에 해결해준다. 예를 들면 중고나라에서 우리가 거래할 때 늘 드는 불안감이 있다. "입금했는데 물건을 안 보내주면 어떡하지?" 중고사기에 대한 우려로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만일 당근마켓이 A도 챙기고 B도 챙기고 싶어서, [우리는 대한민국 1등 중고거래 앱]이야 라고 하면 큰일 난다. 기존의 동네로 생긴 서로 사용자 간의 신뢰가 불안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절대 동네 키워드는 놓쳐선 안된다.
동네와 신뢰를 적절히 잘 표현한 게 당근마켓의 '매너온도'다.
다른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안전함'을 강조한다. 판매자 프로필의 가장 가까운 곳에 사기 이력(?)을 파악할 수 있도록 번호를 조회할 수 있게 하거나, 안전거래 솔루션을 도입하여 거래 사기를 줄이고 있다.
당근마켓의 매너온도는 불안감을 줄여주는 요소라기보다, 이웃 간의 따뜻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매너온도가 올라갈수록 동네 간의 신뢰는 점점 더 끈끈해질 것이고 따뜻한 동네가 되는 것이다.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우리 동네 커뮤니티, 소속감을 위한 노력
계속 같은 얘기다. 당근마켓은 위와 같은 이유로 '동네'를 더 강조해야 하고 '커뮤니티화' 되어야 한다. 그 일환으로 최근 '우리동네'라는 탭이 생긴 것 같다.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올라온다. 동네 미용실 어디가 좋아요? 같은 일상 질문글로 시작해서, 본인들의 고민을 털어놓은 글들도 종종 보인다.
이러한 글들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비슷한 커뮤니티들을 본 것도 같다. 지역별 맘카페와 양상이 비슷하다. 그래서 그런 걸까, 당근마켓 사용자의 성별/연령대 비율을 보면 다른 앱들에 비해 굉장히 특이하다. 여성의 비율이 높고 특히나 3040 여성이 자주 이용한다는 것이다. 중고거래에 있어서 남녀노소가 어딨겠냐만, 당근마켓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이고 맘카페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특정층에서 열렬한 호응을 받고 있다.
아직 당근마켓의 우리동네는 느낌으로 따지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같다. 좋은 정보가 오가고 필요할 때 질문을 통해 답을 얻는 오픈채팅방. 그러나 당근마켓이 더 동네의 커뮤니티가 되려면 단톡방이 되어야 한다. 소속감을 심어주는 활동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관심 주제로 묶어보는 팔로우 기능도 결국엔 정보를 얻고자 하는 일방향적인 방법이다. 커뮤니티란 서로 소통이 일어나는 쌍방향적인 속성들로 가득해야 한다. 동네마다 여러 주제로 '장'을 뽑아 다양한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건 어떨까. 트레바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독서를 주제로 사람을 모았기 때문이라면, 당근마켓은 이를 더 지역적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오히려 동네생활과 지금은 1:1로 판매자와 하는 채팅 기능이 한데 섞이게 할 수도 있겠다. 동네/주제별 단톡방으로 커뮤니티로 한 발자국 나갈 수 있도록.
지역 비즈니스 독이야, 약이야
당근마켓이여 제발 들숨에 재력을, 날숨에 건강을 얻어 오래 지속하게 해주소서. 서비스를 유지하려면 돈을 버셔야죠. 몇 달 전 당근마켓에 사장님 메뉴가 생기고, 지역 비즈니스를 홍보할 수 있는 기능이 생긴 걸 보고 박수를 쳤다. 이거야 말로 지역 생활 플랫폼으로 도약하기 위한, 그러면서도 플랫폼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건수를 잡은 거 아녀!
회사에서 새로 런칭한 포에버라는 서비스를 당근마켓에 지역 비즈니스로 등록하고, 특히나 동네생활에서 강아지 주제를 팔로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포에버가 노출되면 너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업체를 등록하고 난 후에는 내 업체를 홍보할 수 있는 글도 올릴 수 있고, 노출이 더 잘 되게 광고를 돌릴 수 도 있다니. 세상에 딱이었다. 그렇게 몇 가지 사항을 작성하고, 며칠을 기다렸는데. 업체 등록이 반려됐다.
브랜드 입장에서야 마음이 쓰라렸지만, 당근마켓 사용자 입장에서는 당근마켓에 대한 무한신뢰가 생기는 지점으로 작용했다. 거절 이유인즉슨, 지역에 매장이 없는 전자상거래 서비스이기 때문에 동네 비즈니스 등록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오케이. 정말 지역 브랜드의 활성화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 마치 D&Department에서 지역을 테마로 다양한 시선을 소개해주는 Magazine D와 같은 순기능을 당근마켓에서도 제공하려는 시도로 보였다.
그런데 특이한 게시글을 발견하게 된다.
눈을 의심했다. 지역 비즈니스로 등록된 업체이고, 지역 광고를 통해 상단에 노출된 게시글이었다. 가격은 무려 4억 9백이었고, 클릭하여 보니 서초 지역의 오피스텔 분양 내용이었다. 당근마켓이라면 분양 홍보글이 아니라, 제가 살고 있는 이 집을 서브렛 내놔요 하는 글이 더 어울릴법하지 않은가.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해당 게시글에 사람들이 엄청난 반응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광고냄새가 나는 홍보글이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정보를 원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추가적으로 중고차 딜러들의 게시글도 간간히 보인다. 이 또한 너무 자주 보이면 어뷰징이겠지만, 중고차를 구입하려던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정보일 수 있다.
페이스북의 사례가 떠오른다. 피드 형식으로 시작된 플랫폼이 수익화를 위해 비즈니스 광고를 시작했다. 비즈니스 광고와 실제 사람들의 게시글의 비율이 적정 수준으로 유지되었었다. 그리고 게 중에는 광고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성 콘텐츠가 상당수 있었다. Sponsored라고 적혀 있지만 내가 찾던 내용이니까 볼거야!하는 사람들 덕분에 다양한 브랜드들이 본인들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슬슬 광고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페이스북이 광고판이 되어버렸다며 떠나기 시작했다. 아직 살아남은 브랜드는 쿠캣과 같은 정말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성 계정들 뿐이다.
아직까지 당근마켓의 지역 비즈니스는 페이스북과 같은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광고 비즈니스를 시작하면 언젠가 붉어질 문제다.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여 비즈니스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과 더불어 정말 해당 지역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가 내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포에버가 반려된 이유처럼 단순히 지역으로 가이드를 정하는 게 아니라, 올리는 콘텐츠로 등록 여부를 가려야 하지 않을까.
정말 지역 기반 플랫폼이 되고 싶다면
특히 이 부분은 정~~말 개인적인 소견일 뿐인지라 쓰루해도 좋다. 혹시 당근마켓 관계자 분이 보고 계시다면, 그냥 지나가는 1인의 의견이라고 묵살해도 좋습니다.
1) 동네의 명성을 올려줄 만한 무언가
동네로 시작해서 동네로 끝장냅시다.
'우리동네 자랑' 같은 내용으로 동네에 대한 자부심을 올려준다면, 더 자주 이용할 것 같다. Urbanplay처럼 동네 잡지를 만든다든지, 내가 살기 좋은 동네의 한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게 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나의 활동이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나간다는 일종의 선순환.
2) 개인적인 가계부보다 내 동네에 내가 기여한 정도가 보여지는게..
월마다 한 번씩 당근마켓에서는 ㅇ월 가계부를 보내준다.
내 거래 내역, 동네의 거래내역, 인증 지역 등에 대한 지표를 시각화해서 보여주고 있다. 일종의 영수증 같기도 하다. 내가 한 달 동안 활동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그러나 이러한 내역도 내 '개인'적인 내용이다. '내'가 얼만큼 벌었고, '내'가 얼마나 인증했는지.
이 가계부가 동네 가계부가 되면 어떨까?
저는 이만큼 동네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었고요
우리 동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은 ㅇㅇㅇ이네요!
서초3동 트렌드는 ㅇㅇㅇ입니다. 거래 품목을 보니까 다음 달에는 이게 뜰 것 같아요.
우리 동네의 매너온도가 ㅇㅇ도 올라갔습니다. 따뜻한 동네를 만드는 데 동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동네의 온도는 이렇습니다. ㅇㅇ동, 온도를 높이기 위해 조금만 더 힘써주세요!
쓰다 보니 일종의 서비스 이용 후기 같기도 하고 은근까글 같기도 하면서도, 충성충성 사랑해요 글 같기도 하다. 첫 시작이니까 이 정도로 마무리해본다. 이 게시글을 바탕으로 회사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받을 것이며, 거기에서 오는 피드백들이 있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받고 이 글에 피드백 의견을 추가할까? 아니면 새로운 피드백 글을 새로 팔까? 고민해보며 일단 주말을 마무리한다.
당근마켓 좋아요 사랑합니다.
(급히 끝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