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요즘 우리는 ‘나만을 위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소비자가 직접 여러 선택지 중에 고르는 일이 당연했다면, 이제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내가 필요한 시점에 최적의 맞춤 혜택이 제공되곤 합니다. 때로는 빅데이터가 나를 낱낱이 분석하고 나도 모르던 나의 취향을 규명해 주기도 하죠.
특히 콘텐츠 분야에서 맞춤 콘텐츠 서비스는 많이 다뤄져 왔기에, 알고리즘과 같은 생소했던 단어가 이제는 유행어가 될 만큼 우리와 가까워졌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날 여기로 인도했다’)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자주 보여준다거나, 고객의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마다 각기 다른 콘텐츠 환경을 조성해 주기도 합니다. 같은 플랫폼에 들어가도 고객 각각은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추천, 선별을 넘어 나만을 위한 상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CES 2020에서 첫 선을 보인 로레알사의 페르소는 나만을 위한 화장품을 바로 만들 수 있도록 합니다. 4단계의 과정을 거쳐 사용자의 피부 상태 등을 측정하고 나면 나의 피부에 맞는 스킨케어 제품이 즉석에서 만들어집니다. 한국의 아모레퍼시픽에서도 맞춤 마스크팩을 공개했습니다. 본인의 얼굴형과 피부 타입에 맞추어 5분 만에 나만을 위한 마스크팩을 만드는 기술을 선보인 것입니다. 이러한 제품들의 등장은 우리가 정말 개인 맞춤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기분을 들게 합니다.
그러나 맞춤이라는 개념 자체는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오히려 정말 옛날에는 기성복이 없고, 모든 의복이 다 맞춤형이었죠. 단순히 ‘나만을 위한’, ‘나에게 꼭 맞는’과 같은 개념으로 ‘맞춤’을 정의하면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는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요즘 시대의 완전한 맞춤은 무엇이 다를까요?
1:1 개인별 맞춤 제품이 많아질수록, 오프라인 매장의 성격은 달라질 것입니다. 매장에 기성 제품을 늘여 놓을 필요가 없게 되니 매장이 클 필요도 없게 되겠지요. 오히려 물류창고 비용이 줄어들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 만 가지의 제품을 고를 수 있어서 편리했던 온라인에 비해 제품의 개수로 열위를 가지고 있었던 오프라인은, 맞춤이라는 새로움을 입고 맞춤형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매장에서 당신만을 위한 체험을
나이키는 매장에서 다양한 체험형 경험을 제공합니다. 특히 ‘나이키 라이브’와 같은 체험형(이라 적고 실험형이라 한다) 직영 매장을 오픈하고, 자체 모바일 앱인 SKNRS를 더욱 키우기 위해 매장과 어플을 연결하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나이키의 여러 실험 매장들 중 가장 최근 오픈한 Long Beach Concept Store에서는 개인화된 경험을 오프라인이라는 성격에 맞게 잘 설계해 두었습니다. 스토어 안의 Sneaker Bar에는 100쌍 이상의 다양한 신발이 있으며, 고객들은 바 안에서 나이키 직원과의 1:1 상담을 통해 커스터마이징 옵션을 추가하여 나에게 맞는 신발을 겟-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롱비치 스토어 안에서는 그룹 운동 및 다양한 커뮤니티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그 안에서 나를 위한 개인 코칭과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이 매장의 큰 차별점입니다.
스포츠 브랜드, 퓨마가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퓨마는 스포츠와 패션, 기술을 결합하여 전혀 새로운 쇼핑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며 작년 가을 뉴욕에 최초로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습니다. 특히나 이 매장 안의 PUMA x YOU라는 완전히 개인 맞춤형 스튜디오를 통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신만의 신발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페인팅, 염료, 패치, 재료 업사이클링 등 여러 방식을 제안하고 있으며, 유명 아티스트(및 디자이너)들과 협약을 맺어 다양한 디자인 커스터마이즈도 가능합니다.
온라인에선 구입만, 오프라인에서 경험을 완성하세요
지금까지 다룬 맞춤 사례로 미루어보면, 제품도 특정 사람에 맞게 바뀌어야 하고 매장에서도 개인별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기술이 받쳐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이키처럼 돈이 많거나, 혹은 로레알처럼 고객 데이터가 많지도 않은 실정입니다. 하지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미국의 노드스트롬이 개인화 경험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냈으니까요.
노드스트롬의 새로운 상점, Nordstrom Local에는 상품이 없습니다. 물론 상품이 없는 쇼룸형 매장은 요즘 꽤나 많이 보이는 편이지만, 노드스트롬은 조금 다릅니다. 온라인에서 구매한 상품을 픽업할 수 있고, 그 무엇보다 그 자리에서 제품을 다시 수선하거나, 스타일 조언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로컬 상점에서 제공하는 ‘재봉’ 서비스는 특정 제품을 소비하는 데 있어, 소비 경험의 마지막에 위치합니다. 똑같은 옷을 구매하더라도 수선을 통해 나에게 꼭 맞는 상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니까요. 이후 스타일리스트의 조언이라든지 매장 안에서 제공하는 네일 뷰티 서비스 등으로 온라인에서 시작한 소비 경험을 오프라인에서 더욱 확장하여 완성시키도록 촘촘히 설계해 놓았습니다.
이 글의 가장 앞서 말한 로레알 페르소와 같은 맞춤형 제품은 정말 필요한 제품이고 신기한 기술이긴 하지만, 대중 소비자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입니다. 오히려 기성제품을 사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오히려 기술의 발전으로 맞춤 소비를 대중화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기존에 맞추려면 가격이 너무 높아 접근하기도 어려웠던 상품을 기술발전으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게, 가격도 나에게 맞추는 형태가 나오고 있습니다.
드레스를 제작한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한국이야 드레스를 입을 일이 자주 있지 않지만, 파티 문화가 일반적인 미국에서는 그 부담감이 더 클 것입니다. COUTURME는 이러한 가격에 대한 부담감을 오히려 맞춤형 솔루션을 통해 낮췄습니다. 고객은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AI스타일리스트에 따라 다양한 설문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선택적 맞춤과 다른 점은, 거의 무한한 디자인 옵션을 통해 3,200개가 넘는 선택 가능 범위를 가지고 온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스타일, 소재는 물론 나에게 맞는 목선, 소매 길이, 치마 길이, 허리 위치 등을 세세하게 조정할 수 있어 정말 나만을 위한 드레스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웹에서 선택한 내용에 맞추어 내 드레스 패턴이 만들어지고 이 패턴 정보는 공장으로 보내져 드레스로 완성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나를 위한 드레스는 199달러부터 시작합니다. 이렇게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이유는 웹사이트 안에서 디자인 프로세스를 최소화했기 때문입니다. 기존과는 다른 디자인 및 패턴 생성 방식으로 공정 과정의 비용을 내렸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소비자에게까지 닿는 비용도 합리적으로 변화한 것이죠.
20만 원으로 내 얼굴형에 꼭 맞는 안경을 제작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형은 모두 다르고, 사람은 누구나 비대칭 골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경은 천편일률적으로 제작됩니다. 물론 피팅을 본인의 얼굴에 맞게 하면 된다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BREEZM에서는 3D 스캐닝으로 고객의 얼굴 사이즈를 정확히 측정하고, 본인의 취향에 맞게 안경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맞춤 안경이라니, 덜컥 비쌀 것 같아 겁부터 나지만 브리즘의 안경은 저렴하기까지 합니다. 그 이유는 3D 프린터로 안경을 제작하기 때문이죠. 나를 위한 맞춤 제품이 첨단 제조 기술을 만나 가격까지 맞춰지게 된 셈입니다.
요즘 우리는 그야말로 ‘나를 위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에게 맞는 제품은 물론, 경험까지 나를 위한, 게다가 가격까지 합리적인 그런 맞춤 시대 말이죠.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말 ‘나’에게 꼭 맞는 맞춤이란 게 있는 걸까?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자면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를 위한 제품도 사실 알고리즘에 따라 나온 결과물일 뿐입니다. 고객은 본인에게 맞는 피부타입, 얼굴형, 혹은 사이즈와 같은 옵션들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브랜드는 고객이 선택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수 천 가지의 선택지 중 고객에게 가장 부합한 결과물을 내어주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소비자에게 더 높은 만족감을 제공할 수 있을까요.
이케아 효과라는 소비 심리 용어가 있습니다. 완제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직접 소비자가 제품을 조립할 때 높은 만족감을 얻게 되는 효과를 말합니다. UX에서도 고객들이 자신의 기호에 맞게 정보를 입력하거나, 설정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비슷한 매커니즘입니다. 어쩌면 지금 시대에 소비자에게 만족감을 안겨줄 진정한 맞춤이란 소비자를 참여시키는 과정이 될 수 있겠습니다. 소비자에게 진정한 맞춤을 제공하고 싶은 기업이라면 제품이 만들어지면서 최종 고객에게 도착하는 그 긴 여정 안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지점을 촘촘히 설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