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대의 로열티에 관해
요즘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은지 너무 오래 되어서 경각심을 가지고 후닥 올려봅니다.
명품(名品). 국어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이라고 합니다. 제품의 퀄리티가 매우 뛰어나서 작품 같은 것이 명품이죠. 그러나 지금까지 명품은 럭셔리와 혼동되어 사용되어왔습니다. 상류층의 생활을 견고히 해주기 위해 호화스럽고, 겉이 화려한 물건들을 우리는 흔히 명품이라고 불렀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명품은 백화점의 블랙카드를 소지한 자들이 VIP 서비스를 받으며 구입하는 물건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인식은 아닙니다만, 그만큼 과거에 명품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물건이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훗날 제가 커서 구찌매장에 쉽게 들어가고 있을지 꿈에도 몰랐으니까요.
확실히 명품에 대한 개념은 변하고 있습니다. 비싸고 럭셔리한 물건만을 이제는 명품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자기만족이 중요해진 요즘, 나에게 가치를 가져다주는 물건이라면 그게 아무리 스몰 브랜드라도 개인에게는 명품이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자연을 생각하는 가치관을 담은 파타고니아가 명품일수도, 주전자 하나만을 열심히 파고들어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낸 소리야나기가 명품이 되기도 합니다. 소비자에게 명품이라는 선택지가 많아지니 기존의 명품업계(위 단락에 언급한 명품을 기존의 명품업계라고 부르겠습니다)는 전쟁에서 밀리게 되었습니다. 본인들의 자리를 확고히 구축하려다 오히려 사람들의 눈밖에 나게 된 것입니다.
기존 명품업계는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는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하는 데 공을 들였다면, 이제는 접점을 늘리는 방향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온 방식과 로열티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커뮤니케이션 채널 다각화는 물론, 콘텐츠를 녹여내는 방식 또한 새롭게 바꿨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발렌시아가 운동화를 직구로 쉽게 구입하고, 명품 매장에 손쉽게 드나듭니다. 어떻게 명품업계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새로운 로열티를 구축할 수 있었을까요?
그동안 명품업계에서는 오프라인 매장이 소비자와의 유일한 접점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매장을 고급스럽게 꾸며 특정층의 구매를 유도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판매 채널이 생겨난 지금, 오프라인은 오히려 새로운 시도들을 접목해보는 일종의 테스트 베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매장에서 제품이 아닌 명품의 ‘삶’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브랜드(제품)로 채워져있고, 내가 살고자하는 삶의 모습에 따라 나를 채우는 제품들이 달라집니다. 명품업계는 바로 이 지점을 공략하여, 오프라인 매장에서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 Lexus Meets…
이 시국에..라고 할 수 있지만 일본 도쿄의 미드타운 히비야 1층에는 한 카페가 있습니다. 카페인 줄 알고 들어섰다가 자세히 보니 여러 소품도 팔고 있는 걸 보니 편집샵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렉서스 자동차도 있는 이곳은, LEXUS MEETS Hibiya입니다. 이곳은 도요타가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공간입니다.
렉서스 차를 보유한 사람들은 어떤 삶의 형태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이미지를 떠올려본다면 쿨워터향이 나는 향수를 뿌리고, 메탈로 된 시계를 차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향초를 켤 것 같고, 화장실의 수건은 늘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며 포근할 것 같습니다. 네, LEXUS MEETS Hibiya는 렉서스가 의인화된 공간입니다. 바로 앞에 언급한 것처럼 렉서스가 사람이라면 이런 삶을 살지 않을까 생각해보고, 그 삶 안에 녹아든 제품과 브랜드들을 매장 안에 전시해놓았습니다. 만일 렉서스가 히비야 1층에서 차량만 판매했다면 이 정도로 화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렉서스라는 브랜드를 가장 잘 나타내줄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논했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히 건드린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MZ세대는 자신의 이야기를 SNS를 통해 전달하고, 다른 이들의 삶을 엿듭습니다. 이러한 판의 변화는 명품 소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들은 대부분의 명품 정보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얻고 본인들의 소비 생활도 온라인에 표출합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명품 업계 또한 SNS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MZ세대가 모인 공간에서 제품을 노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노는 방식 그대로 브랜드도 놀고 있습니다. MZ세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같이 놀아준다면 그들은 친구가 될 것이고,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있으니까요.
● 버버리와 틱톡
틱톡의 상승세가 가히 무섭습니다. 소위 인싸라면 15초가량 되는 짧은 영상을 올려본 경험이 있을 것이고, 매체의 영향력에 따라 다양한 브랜드가 틱톡 계정을 만들고 있습니다. 가파른 상승세로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매체에 명품 브랜드 버버리가 등장했습니다.
버버리의 새로운 모노그램인 TB를 손으로 표현하는 영상으로 사용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낸 것인데요. 이벤트를 시작한 지 1주일만에 약 3만개의 자발적 영상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따라하기 쉬워야 한다는 콘텐츠 공식은 이제 당연합니다. 또한 밀레니얼 세대는 주목받고 싶어하고, 트렌드는 따라하고 싶은 모방심리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TB 글자를 손으로 표현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캠페인 참여를 이끌어 냈습니다. 그리고 MZ세대의 인식속에 버버리는 여전이 명품 브랜드이고, 이 브랜드 캠페인 영상을 자발적으로 업로드 하는 것은 다른 친구들로부터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행위입니다. 한명, 두명 콘텐츠를 올리다보면 ‘나도 참여해야 하나?’하는 물타기 심리가 작동합니다. 버버리는 쉽고, 주목받고 싶고, 따라하고 싶은 콘텐츠로 어느정도 성공적인 캠페인을 완료했습니다. 동시에 실질적으로 그들이 원했던 목적인 새로운 모노그램의 인지도 각인시켰습니다.
그러나 조금 다른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이제 이 정도의 브랜드 캠페인으로는 더이상 새로움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브랜드 사이드에서의 콘텐츠는 일종의 만들어진 유행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브랜드는 친구들이 놀 수 있는 판만 깔아주고 그 안에서 자발적으로 놀게 만들어야 합니다. 명품은 아니지만 최근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는 이 지점을 잘 공략했습니다. 해당 챌린지의 성공공식을 살펴보고 이를 나에게 맞게 변형해보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 프라다의 가상 인플루언서
2019 트렌드Y 리포트에 따르면 20대는 주로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 인플루언서를 통해 명품 정보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너도나도 수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인플루언서를 내세워 본인들의 제품을 노출하고 홍보하며, 이제는 심지어 인플루언서가 제품도 판매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인플루언서 활용에는 양날의 검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인플루언서라는 ‘사람’을 믿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한 신뢰로 브랜드에 대한 인식을 형성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믿음을 져버리면 동시에 브랜드 이미지도 추락하게 됩니다. 가장 팬이었던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끼면 안티로 더 쉽게 돌아서기 때문에, 인플루언서와의 협업은 늘 조심해서 진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플루언서가 진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잘 만들어진 가상 인물을 통해 좋은 이미지만 간직한 채 틀어질 일 없는 관계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요. 프라다는 릴 미켈라를 통해 마치 실제 프라다의 쇼에 참석한 것처럼 이미지를 만들어 냈으며, 슈두는 이미 모두가 알만한 슈퍼모델로 많은 이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습니다.
쇼트 비디오, 짧은 콘텐츠, 별달줄(별걸다 줄인다)의 유행. 조금이라도 길면 금방 질려버려, 짧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사회 현상의 단면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은 이제 브랜드로까지 시선이 옮겨졌습니다. 명품 브랜드들은 또 다른 색다름을 선사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접점이 전혀 없을 것 같던 브랜드와 콜라보 상품을 낸다거나, 만날 수 없을 것 같던 산업과의 만남으로 끊임없이 소비자들에게 NEW함으로 어필하고 있는 것입니다.
● Fendi ways to Rome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인 Fendi와 중국의 메신저 WeChat이 손을 잡았습니다. 국가도, 산업 분야도 다른 두 브랜드가 같이 프로젝트를 도모한다니 시도 자체로 새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Fendi Ways to Rome은 펜디와 위챗이 같이 만든 위챗 게임으로, 중국의 싱어송라이터인 허위주와 함께 로마 여행을 할 수 있게 설계되었습니다. 게임 안에서 허위주와 여행하며 로마의 다양한 공간을 둘러볼 수 있고, 그 여정 안에는 펜디의 역사 또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게임을 만들었다니, 리소스가 많이 들어간 것 같은데요. 이런 게임이 실질적으로 제품 매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수치적으로는 가늠할 수 없지만, 이러한 활동 또한 위에 언급한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것과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채널이 오프라인 공간이냐 온라인 게임이냐의 차이 정도일 뿐 공식은 동일합니다. 게임 안에서 자연스럽게 로마 지역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펜디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바로 즉각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지속적으로 이러한 활동들이 명품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를 친근하게 만들고 삶 속에 파고들게 하는 장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작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모여 로열티를 구축하는 것이니까요.
지금까지 명품업계가 새로운 방식으로 로열티를 구축하는 방법을 확인해보았습니다. 확실히 그들의 새로운 행보를 통해 명품에 대한 벽은 많이 낮아졌고, 플렉스 문화가 확산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시도들로 명품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저변을 넓힐 수 있었고, 새로운 세대로부터의 로열티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젊은 세대들로부터 신선한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일까요? 기존 다른 오래된 브랜드들이 재활성화 전략을 써도 거들떠도 안 보던 친구들인데 말이죠.
여기서 바로 꼰대와 어른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정말 요즘 세대들은 나이 많은 사람들(혹은 브랜드)을 보면 다 꼰대라고 지칭하며 세대에 선을 그어 버리는 걸까요? 그런데 왜 오히려 요즘 떠오르는 시니어 모델을 응원하는 팬층은 20대입니다. 그들에게 모델 김칠두, 부산의 닉우스터 여용기 할아버지는 닮고 싶은 롤모델인 것이죠. 나이로만 따지면 그들도 꼰대 대열에 합류할 수 있지만, 두 할아버지는 꼰대라 불리지 않고 멋진 시니어라고 불립니다.
떠오르는 시니어 모델들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젊은이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려 하고, 열린 사고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합니다. 그 태도는 젊은 세대에게 귀감이 되기 마련입니다. 트렌디함에 연륜이 더해져 멋진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브랜드도 동일합니다. 꼰대가 아닌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식을 취하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에 본질이라는 가치를 유지하면서 관계를 맺는 방식에 변주를 준다면 금상첨화겠지요. 결국 로열티를 구축한다는 건 누군가의 마음을 열고, 좋아하는 감정을 지속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인과관계에 있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선행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