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상담이 있는 날이다. 잠이 많은 아이를 겨우 깨운다. 그래도 좀 컸다고 시간 맞춰 갈 수 있으니 감사하다. 오늘은 모래상자를 앞에 두고, 지난주 서로에게 감사했던 것을 말하며 시작했다. 아이는 잘 때 내가 다리를 주물러 줬던 것을 고맙다고 말했다. 일주일 중 단 하루 했을 뿐인데 그걸 말하다니. 엄마의 관심과 애정을 그냥 넘기지 않고 받아주니 고맙다.
'되고 싶은 나'를 모래상자에 표현해 보는 것이었는데 나는 아이보다 내 모래 상자가 더 미해결 과제가 많은 것 같아 고민이 된다. 아이가 있는 자리에서 어디까지 말해도 되고 어디서부터는 말조심을 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숨길 것이 있는 사람이 이렇게 고심한다. 내 모래 상자 속 되고 싶은 나는 '무기력을 떨친 나'이다. 결실을 맺고, 하루를 몸과 마음을 골고루 쓰며, 잘 때는 뿌듯함으로 잘 수 있는 그런 나. 되고 싶다는 것은 지금은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늘 그럴 순 없지만 그래도 자녀에게 본이 되어야 할 엄마가 이런 무기력감에 젖어 있다는 것을 얼마나 노출해도 되는 걸까. 갈등과 고민 속에 얼버무리듯 시간을 보냈다. 나오는데 상담사가 내게 조언을 한다. 성당 안에서 나는 사랑받는 사람인지, 사랑하는 사람인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사랑을 주고받는 거지, 어떻게 둘 중 하나의 입장일 수가 있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곰곰이 마음속에 넣어둔다. 언젠가는 저 말 이해가 되는 순간이 있겠지. 이런 순간을 거칠 때면 아이가 성장하기 위해서 내가 반드시 지금과는 달라져야 하는 어떤 '포인트'가 되는 것 같아서, 내 모습이 긍정이나 수용되기보다는 부정되는 기분이라 불편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에게 인사하고 한 코스 먼저 버스에서 내렸다. 바로 성당으로 갈까, 김밥을 한 줄 사서 갈까 고민하다가 이 시간 이후에는 밥을 먹기 힘들 것 같아 김밥을 한 줄 샀다. 성당에 가서는 회의를 하고, 조금 기다려 교리를 했다. 그리고 미사를 보고, 다시 회의를 하고 교리교사로서의 일정이 끝이 났다. 그 사이 예전에는 아들과 친했던 아이가 초등부 교리와 미사 사이 시간에 교사실에 들어와 있는 것을 봤다. 올해는 아이들을 교사실 출입을 금하게 하기로 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등 아이들이 무람하게 들어와서 습관처럼 "나와라." 했다. 시력이 좋지 않아서 누구인지도 몰랐던 것도 사실이다. 말하고 보니 또 그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신경이 쓰였다. 어정쩡한 관계는 불편하다. 오해나 감정의 왜곡이 없길 바랄 뿐이다.
아이가 와서 미사 들어가는 것을 보고 지하로 내려와서 혼자 김밥 한 줄을 먹었다. 미사가 끝나자 오랜만에 중고등부 아이들을 보러 올라갔다. 수능 때 기도했던 아이도 왔다. 시험이 끝난 것을 축하하며 기도했다고 말해줬다. 예전 같으면 생색이다 생각했을 행동인데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했다는 것을 알 때와 모를 때의 마음이 다르던 경험을 해서 말했다. 그 아이가 누군가 자기를 위해 기도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그만큼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했다. 아이는 신부님이 고등 아이들과 돼지국밥을 먹으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해도 안 간단다. 교리 전부터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을 찾더니 상태가 좋지 않은가 보다.
아이는 자전거를 끌고, 나는 걸어, 나란히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