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최근 몇 년간 엄마와 나 사이에는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곤 하네요. 무슨 일이었는지 내막은 기억나지 않지만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전화기 너머 엄마의 소리지름에 움찔할 수 있다는 것과 움찔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 싫었다는 것과 일방적인 끊어버림에 불안하고 초조해했던 것은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때 아이와 남편과 서울 여행 중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엄마도 알고 있었다는 것도요.
그리고 또 언젠가는..... 막내가 결혼하기 두 해, 세 해 전이었을까요? 잘 지내던 저와 막내의 갈등의 내용을 엄마는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동생을 두둔하고 옹호했지요. 그로 인해 상황은 더 나빠졌고, 저는 소리를 질렀고, 엄마는 형제간의 싸움을 크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작년 일의 시작은, 음 이건 기억이 나네요. 연말 정산에 오래도록 부모님을 동생에게 올렸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올리고 싶다고 했었죠. 엄마는 제부 눈치가 보인다고 했고요. 엄마가 사는 집이 동생의 집이기 때문에. 서운했습니다. 연말 정산을 그렇게 하던 초기에 미리 동생과 말을 했던 부분이었는데 말이죠.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연락을 끊었고, 그렇게 몇 주를 보내다 추석에 만났는데 엄마는 내가 엄마를 혐오하는 눈으로 보더라고 하셨지요. 혐오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서운함이 똘똘 뭉쳐져 미움이었던 것은 맞을 거예요. 난 그때 엄마와도 관계가 엉망이었지만 남편과도 매우 나쁜 상태였거든요. 북적거리는, 좁디좁은 친정 집에서 몸 둘 곳 없던 기분이었습니다. 엄마가 제 눈초리에 마음이 상해 눈의 혈관이 터져 눈이 빨갛게 되었던 것도 생각이 납니다. 엄마가 걱정되어 아빠가 보내온 문자에도 파르르 떨며 난리를 쳤었지요. 배운 것은 있었습니다. 엄마와는 속상한 일 있어도 그냥 또다시 전화하면 된다는 것을, 깍듯하게 사과하지 않아도 엄마는 받아 준다는 것과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보는 눈초리가 어떤지를요.
지난 시간을 이렇게 돌아보는 것은, 네. 그렇죠. 어제의 일 때문이지요.
엄마는 엄마의 경험을 저에게 투영합니다. 특정 존재에 대한 엄마의 부정적인 관념은 긍정적 인식 아래에도 수맥처럼 언제나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의 흔들림에도 올라오곤 하죠. 그만 얘기하고 싶다는 내 신호를 왜 듣지 못하시나요? 엄마의 두 마디는 결국 저를 폭발하게 했습니다.
맞아요. 엄마 말이 맞을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한들, 아니라고 한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요? 제가 뭘 어쩌길 바라세요. 눈을 치켜뜨고 드잡이질을 할까요? 사람을 사서 미행을 할까요? 이미 부풀고 있는 불안이라는 풍선에 굳이 바람을 더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쉬고 싶었어요. 엄마. 정말 고요하게. 몸도 마음도 쉬고 싶었어요. 왜 이런 저를, 제 상태를 알아주지 못하시는 걸까요. 엄마의 무엇이 저를 이렇게나 힘겹게 하는 걸까요. 성체 앞에 무릎 꿇고 그냥 울었어요. 새로 온 수녀님이 무심히 켜시던 성전의 불이 일어나라 하는 것 같아 도망치듯 환해진 성전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곧 웃으며 만나야 하는 주일학교 아이들이 그곳에 있었거든요.
엄마. 나는 이제 퍼즐을 맞춰가는 것 같아요. 외조부모님께 그렇게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부족한 게 없었다는 엄마인데 나는 왜 엄마가 힘들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엄마는 불안을 견디지 못해요. 나에게 또는 다른 자식들에게 어떤 일이 생기면 빨리 해결하고 넘어가길 바라요. 하지만 엄마는 외부의 조건을 바꿀 수 없죠. 외부의 상황에 개입하지도 않았죠. 쉬운 방법은 자식을 추궁하는 거였어요. "네가 어떻게 했길래."인 거죠.
엄마.
나는요.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게 대신 아파줄 수 없다는 것과 아이의 불안을 옆에서 그저 함께 견뎌내는 것이에요. 아이를 탓하지 않고 그냥 믿고 버티는 것. 평온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말하고 싶을 때 말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말할 때면 들어주는 것. 나와 있을 때만이라도 마음이 편하도록 해주고, 편안한 관계일 때 조언하는 것. 그게 내가 함께 견뎌내는 방법이에요. 힘든데 그래도 그렇게 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아마도 그건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의 방식이었겠죠. 이해받고 싶고, 공감받고 싶은 것. 좋을 때만이 아니라 나쁠 때도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
이해가 되지 않았던 엄마를 아프지만 조금은 더 안 것 같아요. 그리고 엄마의 상처가 생생하다는 것에 아픔을 느껴요. 그래도 엄마는 나의 엄마잖아요. 우리 조금만 더 각자의 불안을 견뎌봐요. '내 삶이 그랬으니 네 삶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는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이 아니에요. 나도 아프고서야 깨달은 거라서 엄마께 상처 주지 않고 알려주지 못해 미안해요.